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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만나는 사람마다 ‘더워 죽겠다’는 말이 자연스레 오갔다. 내리쬐는 땡볕을 원망하고, 저녁에도 더위와의 전쟁은 이어졌다. 포항지역의 폭염특보 발효일수와 열대야일수는 21일과 20일간 지속됐다. 기온수치가 올여름 무더위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렇게 더운데 전기요금 누진제가 국민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했다. 국민은 에어컨을 켜고 싶어도 혹시라도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거실 한구석에 에어컨을 고이 모셨다. 그래도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비싼 전기요금을 감내해야만 했다. 전기요금 제도에 변화를 줄 생각이 없다던 정부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한시적 완화 방안을 발표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여론 달래기를 한 모양이다.
무더위는 불편한 진실도 재조명했다. 얼마 전 폭염 관련 취재 때 2명의 독거노인을 만났다. 월세방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89)는 다리가 불편했다. 약 9.9㎡(3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부채 바람에 의지해 무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그 흔한 선풍기도 없이 말이다. 도둑이 들까봐 무섭지만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을 청한다고 했다. 이어 방문한 할아버지(77). 그는 최근 위장수술을 받아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식사가 염려돼 문을 연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유를 묻자 전기요금이 무서워 냉장고 전원을 꺼버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는 한 달에 받는 50여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월세(10만~20만원)와 병원비, 부식비를 충당한다. 곧 닥쳐올 추위를 대비해 얼마 남지 않은 수급비를 쌈지에 넣는다고 했다. 선풍기(소비전력 60W·하루 6시간)와 냉장고(100W/24시간)의 1개월 전기요금은 1만6천원가량. 이들에게는 요금 폭탄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역 단체의 도움으로 2명의 독거노인에게 선풍기가 전달됐지만 작동될지는 미지수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전기요금을 두려워한다. 노인들의 쌈지에서 나가는 몇 천원 전기요금은 생명과 같은 돈이다. 최빈곤층의 노인이더라도 부모 봉양하지 않는 잘난(?) 자식의 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기초수급비도 받지 못한다”는 생활복지사의 말에 울컥했다.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의 여름나기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 게다. 최근 부산에서 홀로 살던 70대 남성이 숨졌다. 사망한 지 6시간 정도 지난 뒤 발견된 시신의 온도는 40℃에 육박할 정도로 집 안은 무더웠고, 선풍기 전원은 꺼진 상태였다고 한다. 국가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사회보장제도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올해 복지예산 규모는 123조여원으로 사상 최대다. 도움을 원하는 이들의 복지 체감도는 매우 낮아 보인다. 독거노인 등 최빈곤층에 전기요금 누진제는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더디게만 진행되는 정부 복지정책.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 폭염 취약계층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멀어질 게다. 추위가 닥치면 폭염 못지않은 어려움이 그들의 삶을 옥죌 것은 자명하다. 수조원을 쏟아붓는 복지정책보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주위 이웃의 관심이 그들을 구원하는 최고의 정책일 게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당장 전화기를 꺼내 들어 부모님께 ‘잘 계시죠?’ 안부 전화 한 통화 하기를 기대해 본다.김기태기자<경북부/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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