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보성선원 주지 한북스님 ‘속세’로 내려온 절집 “고깃국도 끓여냅니다”

  • 이은경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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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9   |  발행일 2016-08-19 제35면   |  수정 201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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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송현동 보성선원 주지 한북 스님. 한북 스님은 “도심사찰은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복지공간과 불교문화공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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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 스님이 보성선원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진전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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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선원에서 매주 화요일 열리는 무료급식행사. 노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보성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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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계속된 김장나누기 사업은 보성선원 신도들이 펼치는 한해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다.

2008년 취임 법회 쌀로 ‘나눔’ 첫 행보
이후 김장·반찬도시락·장학금 지원에
사찰음악회·영화관람 등 문화 행사로
이웃과 함께하는 ‘도심 자비도량’ 실천

“승려 수행에 무게 둔 산중사찰과 달리
도심사찰은 부처의 자비정신 적극 실천
복지·문화·교육·신행공간 역할이 중요
매주 지역 홀몸노인 위해 고깃국 급식”

10월까지 대구박물관 ‘삼존불 복장展’
보호각 올 하반기 착공해 2018년 완공
지역사회 문화·복지중심센터 입지 강화


대구박물관에서는 10월23일까지 ‘발원과 염원의 세계’라는 주제로 대구 보성선원 석가삼존불상 복장이 전시되고 있다.

불상에서 나온 발원문과 보물 1802호인 경전 4권, 그리고 후령통에 들어 있었던 5보(寶), 5곡(穀), 5약(藥), 5향(香) 등 128점이 일반인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선 후령통 중심으로 이뤄지고, 60여 책이나 되는 복장 전적은 다음 전시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복장이란 불상이나 불화 내부 공간에 넣는 여러 종류의 물목(物目)과 이것들을 넣을 때 행해지는 의식을 일컫는다. 복장유물의 발견과 보물 지정으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보성선원은 이전부터 도심 사찰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었다.

2008년 1월 주지 소임을 맡아 보성선원에 오게 된 한북 스님은 취임 법회 때 받은 쌀을 관내 저소득가정에 모두 지원하는 것으로 첫 ‘나눔의 인사’를 시작했다.

이후 겨울이면 신도들과 함께 김장을 해 지역의 소외된 계층에 나눠줬다. 동지엔 팥죽을 쒀 함께 나눴으며 혼자 사는 30여 명의 독거노인에게는 반찬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엔 지역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영정사진도 무료로 찍어주고 있다. 인근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저소득가정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중학생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교복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한북 스님과 나눔의 뜻을 함께하는 불자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희사하거나 사법시험학원에서 받은 장학금 전액을 쾌척하는 등 장학금 마련에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은 ‘저는 태어나서 장학금을 처음 받아봐서 지금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볼을 꼬집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버지께서 직장을 잃으셔서 집이 많이 어려운데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꼭 어려운 사람을 돕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형편이 어렵고 공부도 잘 못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꼭 저의 목표를 이루겠습니다’라고 쓴 감사 편지를 사찰로 보내오기도 했다.

문화체험의 기회가 적은 지역민을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북 스님이 선곡한 국악, 재즈, 대중가요,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상하는 ‘솔밭 사이로 흐르는 선율’이라는 제목의 사찰음악회다.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기도 하고 지역의 음악가들을 초청해 라이브 공연도 한다. ‘좋은 영화보기 행사’도 하고 있다. 시내 극장을 임차해 지역주민과 노인을 초청하여 진행하는 무료 영화관람 행사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모든 일은 “산속 절이 아니라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도심사찰은 마땅히 이웃과 함께해야 하며, 이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한북 보성선원 주지 스님의 오랜 믿음에서 시작된다.

한북 스님은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2008년 1월부터 <재>선학원 보성선원 주지를 맡고 있다. 원래는 전통강원에서 교육의 소임을 하고자 했으나 은사 스님의 추천으로 예정에 없던 주지 자리를 맡게 됐다는 한북 스님은 보성선원을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자비도량으로 가꿔가고 있다.

“산중사찰과 도심사찰은 그 역할을 달리해야 한다. 산중사찰은 승려들의 수행환경을 보존하면서 1천700년간 전승되어 온 불교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휴식의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귀의처, 피난처의 역할을 해야 한다.

도심사찰은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적극 실천하는 복지공간으로서의 역할, 불교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 민족의 발전에 기여해 온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서의 역할, 불자 혹은 국민들이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신행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2008년 보성선원에 첫발을 들일 때 한북 스님이 가졌던 생각이었다. 보성선원에 온 지 이제 곧 10년.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결같이 지역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어온 한북 스님은 이를 부처님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대승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인격을 보살이라고 하는데, 보살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상구보리라고 하는 것은 불교의 궁극의 목적인 완전한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것이고, 하화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널리 자비를 실천하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보살행’이라고 하는데, 보살행은 주체와 객체가 없다. 보살행을 하는 사람과 보살행의 대상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이웃돕기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돕는다는 것은 돕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주객이 나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모두 한 몸이다. 그러므로 도운 사람도 도움을 받은 사람도, 도왔다는 생각도 없는 것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이 두 가지는 출가자든 재가자든 마땅히 실천해야 하는 불자로서의 ‘의무’다.”

보성선원이 위치한 송현1동에만 65세 이상 노인은 2천600명이 넘는다. 10명 중 1명이 노인이다. 이들 넷 중 하나는 혼자 산다. 이들은 모두 가난하거나 외롭다. 매주 화요일 무료급식을 하는 날이면 200여 명이 아침 일찍부터 보성선원을 찾는다. 함께 어울려 이야기하고 밥 먹는 그 시간이 그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한북 스님은 절집에서 고깃국도 끓여낸다.

물론 어려운 점도 없진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사람’이다.

“보성선원에서 하고 있는 사업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큰돈이 들어가는 것들은 아니다. 돈보다는 마음과 노력이 더 중요한 일들이다. 불교의 가르침 중 하나인 공덕사상은 선행과 공덕을 쌓으면 내게 좋은 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모두들 돈이 생기는 곳으로만 몰려간다. 봉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이다. 게다가 불자 인구도 점점 줄고 노령화되고 있다. 봉사란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사람의 마음이 하는 일이다.”

요즘 핫이슈인 하버드대 출신의 현각 스님에 대한 한북 스님의 생각도 궁금했다.

“현각 스님은 한국의 대학에서 외국인 교수들이 떠나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절집에서 외국인 승려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외국인 스님들을 위한 교육체제도 없고, 외국인 스님들을 위한 수행도량인 화계사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돼 있는 점 등이다. 한국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현각 스님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현각 스님의 지적 중에는 한국불교가 가진 기복성이 있다. 종교의 기복성은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복은 인간의 속성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 않은 종교가 무엇인지 살펴본다면, 유교(儒敎) 정도를 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불교는 시작 자체가 기복과는 거리가 멀다. 깨달음을 통해 번뇌의 불길을 꺼뜨리고 열반을 얻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열반을 얻는다는 것이 일반인으로서는 어려운 일이었고, 위대한 성인인 붓다가 가진 특별한 능력에 의지하여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생긴 것이 대승불교 탄생의 주요 이유이다. 따라서 기복성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고, 삼아서도 안 된다. 세계적으로 불교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한국불교가 회생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승려들의 신뢰 회복과 출가자의 감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물론 그가 ‘하버드를 나온 백인’이 아니었다면 문제가 이렇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리 없이 진실되게 도심사찰의 이상을 구현해가고 있는 한북 스님은 이제 보성선원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보성선원 대웅전의 불상과 복장유물 등은 2013년 4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성선원 목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및 복장 유물은 보물 1801호로, 대구 보성선원 목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복장 전적은 보물 1802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은 17세기 불상 연구의 기준이 된다고 후한 평가를 했다.

보성선원의 목조 석가삼존불상은 원래 거창 견암사에서 조성되었으나 6·25전쟁 시기에 현재의 보성선원으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개금불사 과정에서 본존인 석가불상과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의 몸 안에서 발원문, 후령통, 경전 등 복장물이 다량 발견되었다.

문화재청에서는 삼존불의 영구보존을 위해 올해 보호각 건립 예산 20억원을 배정했다. 보호각은 올 하반기에 시작해 2018년 건립될 예정이다. 도량이 일신될 것이고, 지역사회에 있어서 문화와 복지의 중심 센터로서 보성선원의 역할도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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