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벽화로 만나는 1300년 전 고구려사람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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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0   |  발행일 2016-08-20 제11면   |  수정 2016-08-20
고구려 벽화고분의 권위자 30여년 연구 결과물
고분 10기 세밀하게 관찰…생활상·세계관 분석
고분 벽화로 만나는 1300년 전 고구려사람
진파리 1호분 널방 서벽 벽화에 그려진 백호의 모사화. <돌베개 제공>
고분 벽화로 만나는 1300년 전 고구려사람
안악3호분 앞방 서쪽 곁방에 그려진 무덤 주인의 벽화.
고분 벽화로 만나는 1300년 전 고구려사람
쌍영총 널방 동벽에 공양 행렬을 그린 벽화의 모사도.
고분 벽화로 만나는 1300년 전 고구려사람
고구려 벽화고분//전호태 지음/ 돌베개/ 448쪽/ 3만5천원

동굴에 그려진 벽화는 인류 최초의 예술로 꼽힌다. 무덤에도 벽화는 그려져 있다. 고분 벽화는 무덤 칸의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로 미술의 한 장르였다. 고구려는 새로운 무덤 양식인 널을 두는 방을 돌로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올리는 돌방무덤이 유행하면서 고분 벽화가 등장했다. 고구려인에게는 고분 벽화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고구려 벽화 고분은 고구려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그 밖 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특히 수·당·신라 등과 장기간의 전쟁을 했고, 폐허가 된 옛 고구려 중심 지역이 방치됐던 것을 고려하면, 고구려 고분은 우리가 고구려 시대에 대해 알 수 있는 소중한 방법이었다.

이 책은 고구려 벽화 고분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가 30여년 동안 연구한 결과물이다. 10여년간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서와 대중서를 발간한 저자는 벽화 고분에 중점을 두고 이 책을 썼다. 저자는 고구려 초·중·후기의 무덤과 벽화 양식을 대표하는 10기의 벽화 고분을 세밀히 관찰해 고구려인의 생활 세계와 그 안에 담긴 세계상을 보여준다.

고구려의 왕릉, 귀족의 무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이래 고구려의 왕릉과 귀족의 무덤은 방치됐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일본 제국주의가 세력을 확장할 때쯤, 도굴꾼 외에는 잘 알지 못했던 고구려 고분 속 그림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이때 알려진 것이 강서대묘 벽화다. 완성도가 매우 높고 보존 상태가 좋아 당시 일본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유럽 학계에서도 이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이 시기다.

이후 확인된 고구려의 고분 벽화는 1945년 광복 이후 북한 학자들이 조사·보고한 평양과 안악 일대 고구려 유적이다. 각각 1949년, 1976년 발견된 안악 3호분과 덕흥리벽화분이 대표적이다. 이때 고분의 무덤방은 생활 풍속을 주제로 한 벽화로 장식됐다. 방앗간, 마구간, 외양간, 차고, 고깃간, 부엌 등의 시설과 남녀 시종들의 모습, 무덤 주인의 화려한 행차 장면이 그려졌다. 뿐만 아니라 ‘산해경’에 등장하는 신이한 짐승들 같은 기이한 존재, 독특한 신앙·신화의 세계도 표현하고 있다.

평양 천도 후 고구려 전성기에도 많은 고분 벽화들이 그려졌다. 평양과 국내성을 중심으로 불교 신앙이 유행하고 불교 문화가 고구려의 새로운 문화의 한 흐름이 되면서 당시 고분 벽화에서는 그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한 사신도(四神圖)와 신선 사상 등 고구려 문화의 특성과 동아시아의 보편적 문화 요소인 불교 신앙이 같이 담겼다. 비천(飛天)과 연꽃문(紋)으로 불교적 낙원을 표현한 안악 2호분에서는 안악 지역에서 고구려 불교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장천 1호분과 삼실총은 당시 고구려의 서울인 국내성 지역이 동서 교류의 길목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491년 장수왕이 서거한 이후 고구려는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귀족들끼리 권력 투쟁이 있었고, 왕권도 크게 위축됐다. 불안한 사회 분위기와는 반대로 당시 벽화 고분의 규모는 이전에 비해 커졌다. 왕과 왕족, 상류층 귀족 일부로 무덤 칸 내부를 벽화로 장식했지만, 사신이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개마총, 진파리 1호분, 통구사신총의 벽화에는 무덤 주인의 세계를 지켜주는 사신(四神)이 등장한다.

이처럼 우리 역사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고구려 벽화 고분이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은 21세기 들어서였다. 고구려 벽화 고분을 중심 연구 주제로 삼는 연구자는 여전히 손에 꼽을 정도다. 저자는 “현재까지 121기 이상의 벽화 고분이 발견됐지만 대부분 벽화 일부만 남거나 그 흔적만 남아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 유적에 대한 학술정보 수집과 정리, DB화 작업, 벽화 및 고분에 대한 보존 조치는 시급한 현안”이라고 지적한다. 분야별 연구자 양성, 벽화 보존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 DB화 작업 등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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