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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시인으로서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우기로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추악한 현실이라도 직시하고, 자신의 피를 잉크 삼아 써야 하는 시인의 고통스러운 첫 걸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정직한 시인 김수영은 생활 때문일까요,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이 되지 못함을 자책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숨길 수 없는 ‘기침’처럼 그 ‘생활’마저 더없이 정직하게 쓴 그가 말입니다.
수많은 글이 도처에 넘쳐납니다. 비례하여 읽어내기가 인공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한 입 먹다가 수저를 탁 놓아버릴 때처럼 거북한 글도 늘어납니다. 이렇게 어쭙잖은 제 눈에도 ‘보는 것’과 ‘아는 것’ 그리고 ‘생활’과 ‘존재’가 짧은 한 편의 글에조차 아귀가 맞지 않아 덜그럭거리는 것이 보이는 까닭입니다. 글쓰기는 인생의 액세서리가 아님을 김수영을 통해 저 스스로도 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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