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굴뒹굴’ 보고 먹고 노는 즐거움…쌈박한 ‘멀티 문화공간’

  • 이은경 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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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3   |  발행일 2016-09-23 제34면   |  수정 2016-09-23
■ 만화방의 진화

20160923
만화카페는 1만∼2만여권의 다양한 만화책을 구비하고 스낵코너, 보드게임, 도서검색대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어둡고 퀴퀴한 옛 만화방은 잊어라”
연인끼리, 친구끼리, 온가족 함께
카페 분위기서 다양한 식음료까지

유동인구 많은 대학가 ‘핫플레이스’
시간당 2천원대 이용료로 데이트
과제도 하고 온갖 보드게임도 즐겨


☞ 만화방 인기만화

◆원피스= 해적왕이라 불렸던 로저가 남긴 보물 중의 보물 원피스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대해적 시대, 악마의 열매를 먹어버린 소년 루피는 미래의 해적왕을 꿈꾸며 동지를 모으기 위해 위대한 항해를 시작한다.

◆나루토= 호카케를 뛰어넘는다는 당돌한 포부를 가지고 있는 말썽꾸러기 예비 닌자 나루토. 그러나 그의 몸속에는 나뭇잎 마을을 멸망시킬 뻔했던 구미호가 봉인되어 있는데….

◆겁쟁이페달= 극한의 스피드감을 선사하는 본격 자전거 만화. 애니메이션에 게임, 인형 뽑기, 피규어를 사랑하는 고교생 오노다 사카미치의 은륜 청춘 대작.

◆하이큐= 배구에 매료돼 중학생 시절 최초이자 마지막 공식전에 출전한 히나타 쇼요. 하지만 ‘코트 위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천재 선수 카게야마에게 처참히 패하고 만다. 복수를 맹세한 히나타는 카라스노고 배구부의 문을 두드린다.

◆사채꾼 우시지마= 불법적인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카우 카우 파이낸스를 중심으로 채무자들의 욕망과 추락을 리얼하게 그린 휴먼 드라마.


지난 11일 오후 대구 북구 동천동 만화방 ‘놀숲’. 문을 열고 들어선 만화방의 내부는 만화책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구석구석 흩어져, 엎드리거나 앉거나 누워서 널브러진 만화책을 뒹굴거리며 읽고 있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온 가족이 함께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1만5천여권에 이르는 만화를 검색할 수 있는 도서 검색대도 설치되어 있다.

만화방 입구에 자리잡은 음식료 코너에서는 웬만한 카페 못지않게 다양한 식음료도 팔고 있다. 3천~5천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라면, 떡볶이, 볶음밥 등을 먹을 수 있다. 만화책과 함께 할 군것질거리인 과자를 파는 코너도 따로 만들어두었다. 만화책이 지겨워질 때면 다양한 보드게임도 할 수 있다. 추억을 더듬어 책장 한쪽에서 발견한 ‘캔디’를 반갑게 꺼내 본다. 만화책 속의 테리우스는 여전히 멋있었다. 하지만 이곳 풍경은 기억 속의 만화방과는 너무 달랐다.

이승호 대표는 “세련되고 편안한 환경에서 만화책도 읽고 휴식도 취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곳”이라면서 “여름 휴가철이나 방학, 주말에는 자리가 없어 대기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이 대표는 “옛날 만화방을 생각하고 우연히 들렀다가 다시 찾는 손님들도 많다. 주말마다 거르지 않고 이곳을 찾는 열혈고객도 있다”고 했다.

만화방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이 대표는 “순정만화, 무협만화, 코믹만화 등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으며 고객 반응과 이용 빈도에 따라 만화책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데이트 장소로 만화카페를 찾는 20∼30대 연인과 예전 종이 만화책을 즐겨보던 중장년층은 물론 자녀와 함께 가족끼리 들르는 부모들도 많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로는 ‘만화방의 핫플레이스’. 경북대 북문 건너편 100m여의 거리에는 네댓개의 만화방이 빼곡히 몰려있다.

경북대 북문의 ‘콩툰’ 김신영 대표는 만화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애정이 만화방 창업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워낙 만화를 좋아해서 작은 도서관 같은 만화방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편안한 인테리어. 가장 인기있는 좌석은 경북대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자리에 놓인 1인용 대형 소파. 전망을 위해 전면을 통유리로 만들어두었다.

데이트 코스로 만화방을 찾았다는 김성열(27·대구 수성구 황금동)·김은지씨(28)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지만 예전 만화방은 담배 냄새도 많이 나고 어둡고 침침해서 중고등학교 시절 한번 가보고는 간 적이 없다. 편하게 쉬면서 만화를 볼 수 있는 카페같은 만화방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봤다. 적은 비용으로 휴식과 취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아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내가 쉬는 다락방’은 경북대 앞에서 올 3월 문을 연 만화방이다. SNS를 통해 고양이가 있는 만화카페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김채은 대표가 직접 발품을 팔고 설문조사를 해서 선정한 만화책 6천여권을 구비하고 있다.

만화방은 보통 시간당 이용료를 지불하는 형식이다. ‘내가 쉬는 다락방’의 이용료는 1시간에 2천원. 보통 2천400원선인 체인점 형태의 만화방보다 이용료가 저렴한 것이 장점. 커피 한잔 가격도 3천원. 커피를 마시면 1시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지난 12일 오후 이곳에서 만난 임지수·최보윤씨(경북대 불어불문 1년)는 공강 시간을 이용해 들렀다고 했다. 책꽂이에서 한아름 만화책을 빼들고 새우깡을 먹으며 쿠션을 베고 누워 만화책을 읽고 있던 이들은 “인터넷으로 웹툰도 많이 보지만 종이로 된 만화책을 보는 느낌은 또 다르다. 옛날 순정만화를 꺼내보는 느낌도 신기하고 완결된 웹툰을 만화책으로 다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만화책도 읽고 과제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지겨워지면 낮잠도 자고 일어나 배고프면 간식도 먹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03년 본격적으로 유통된 웹툰이 10여 년 동안 활성화되면서 만화산업 전반의 변화를 가져왔고 비행청소년의 온상처럼 인식되어온 만화방도 새로운 오락과 휴식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면서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화된 한국 만화의 원작과 웹툰 단행본 등을 보러 만화방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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