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행복하자]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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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08   |  발행일 2016-10-08 제16면   |  수정 2016-10-08
[詩로 행복하자] 호박
대구시인協·영남일보 선정 ‘이주의 詩人’

베란다에 방치된 채

겨우내 얼었다가 녹았다가

뼛속까지 허공이 된 몸

담장아래 내다 묻었을 뿐인데



미처 읽어내지 못한 세상사처럼

곁가지만 만들며가는 어리석은 내 방식까지 품어

다시 싹 내리고 꽃피워

칠팔월 땡볕에도 탯줄 맨 끝자리에

잔병치레 잦던 나를 앉혀 다스려 낸 당신



-호박은 늙으면 속이라도 달지만

다 늙은 어미 속은 소태맛이라, 아무쓸모 없구나.



당신의 애끓는 노동가 뒤에서 나는 날마다 푸르렀습니다



그랬습니다

마땅하듯 차지한 달디 단 이 꽃자리가

당신 애간장 다 녹여낸 깊은 속이란 것,



무서리 맞고 담장에 걸려있는

마른호박 줄기 걷어내면서

텅, 쓰디쓴 당신 속 그 소태맛의 배후에

단맛으로만 길들여진, 여태 생 속인 내가 있는 줄

아직 알지 못합니다



박경조 시인=군위 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밥 한 봉지’ ‘별자리’가 있다. ‘사람의 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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