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3대가 덕을 쌓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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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8  |  수정 2016-11-18 07:51  |  발행일 2016-11-18 제17면
[문화산책] 3대가 덕을 쌓으면
김원한 <커뮤니티와경제 팀장>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사회적’기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순전히 20세 무렵 읽은 책 한 권의 덕이다. 큰누이가 두고 간 녹색평론 잡지에서 처음 만난 장일순 선생님의 글씨와 그림을 담은 ‘좁쌀 한 알’이라는 글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설명하는 문구들은 참 많다. 협동조합의 메카 원주를 탄생시킨 산파,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진지가 된 원주캠프의 정신적 지주, 한살림선언을 통해 생명살림운동을 펼친 선구자, 그리고 한 없이 ‘밑으로 기어라’ 하셨던 한 시대의 스승.

스무살 청년의 생각은 단순했다. 원주땅의 변화도 장일순 선생님뿐만 아니라 3대가 덕을 쌓은 힘이 컸다고 하니, 나도 대구에서 3대째 덕을 쌓으면 지역변화에 보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선대의 덕은 그릇이 되어야 이을 수 있는 법이니 나의 그릇부터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무위당 선생님은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와의 연대를 통해 지역사회의 힘을 스스로 기르는 것을 강조하셨다. 1971년 주민 32명이 출자해 설립한 밝음신협은 1980년 구급차를 소방서에 기증해 전국 최초의 119구급대를 탄생시켰고, 2003년에는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설립을 지원해 지역 협동조합 운동이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우리 대구땅에도 수십 년의 역사는 아니지만 지역의 문제를 지역사회의 힘으로 해결해 가고자 애쓰는 사회적 경제기업들이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기업, 100여명의 사회적기업가들이 있다.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고 맛을 내어보겠다는 로컬푸드 도시락, 결혼이주여성이 운영하는 근대느낌 물씬 풍기는 동네점방, 북한이탈주민은 물론 다양한 문화가 공존·공감하는 게스트하우스, 문 닫은 나이트클럽을 개조해서 일군 청년예술가들의 시어터, 방정환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어린이의 참뜻을 오늘날 되새기는 인형극단, 한부모여성가장들의 애환으로 고이 빚어낸 천연화장품까지.

나의 다음 대, 첫아이가 태어난 지 반 년이다. 이 아이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3대를 잇겠다’는 생각은 바로 접었다. 누군가의 삶은 다른 누군가가 정할 수 없다. 정해서도 안 된다. 아이는 아마도 본인의 뜻을 좇아 살아갈 것이다. 그 뜻이 무엇이든 신나게 펼칠 수 있는 대구땅이면 좋겠다. 그런 세상으로 일구어 가는데 우리의 작은 영웅 사회적기업들이, 나의 활동이 작게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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