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교육계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 부정적 시각 많아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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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9  |  수정 2016-11-29 08:33  |  발행일 2016-11-29 제3면
역풍 맞는 국정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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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국정 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공개된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면무효’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 교과서 현장 검토본에 대해 대구권 대학 교수와 일선 중·고교 교사 상당수는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모두 문제가 많다”면서 즉각 폐기하는 게 옳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학계는 과거 일선학교에서 채택이 거부된 교학사 교과서를 기본으로 밀실에서 일부 학자만이 참여해 마련한 국정 교과서는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입을 주장했다.

◆국정화 시도는 시대역행적 발상

대구권 대학 교수와 교사들은 “교과서 내용을 왈가왈부하기 전에 북한·중국·러시아·베트남 등 일부 공산권 국가에서만 채택하고 있는 국정교과서를 만든다는 게 대한민국 민주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개탄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검인정을 채택하고 있고, 유럽의 다수 국가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A급 필진 아니고 밀실서 만들어 오류
고대사·대한민국 수립 등 곳곳 왜곡
다양한 사고 외면하고 한 방향만 강요”



나인호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노무현정부 때 궁극적으로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추구하되 급작스러운 발행체계 변화로 혼선이 예상되는 만큼 검인정제도 발전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이명박정부 때는 검인정 체제는 놔두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국사 교과서(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나 채택에 실패했으며, 현 정부는 아예 국정화를 시도해 시대흐름에 역행했다”고 말했다.

대구지역 일선 교사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논의 초기부터 원천적으로 반대해 왔다. 차경호 대구역사교사모임 회장(성산고)은 “역사는 다양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학문이다. 국가에서 학생들에게 한가지 방향으로 정한 역사를 배우도록다 밀어붙인다는 것은 정치적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필진구성도 문제

교과서 집필진 구성에 대한 공정성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교과서 집필 때마다 논란이 되는 현대사 파트의 경우 집필진에 정통 역사학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이 치명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회장은 “군사학자가 한명, 나머지는 정치, 경제, 법학자들”이라면서 “군사학자는 현대사 전공자로 볼 수 없는 만큼 이 같은 집필진 구성은 내용의 충실도나 정확성에서 오류가 생겨도 바로잡기 힘들 것이 뻔하다”고 우려했다.

지역 대학 사학과 교수도 공개된 집필진은 소위 A급 필진은 아니라면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 대부분의 학자들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집필을 거부한 상태에서 마련된 국정교과서라고 말했다.

◆고대사 미화 ‘여·야, 진보·보수의 합작품’

고대사 분야 기술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 지역 대학 사학과 교수들의 견해다. 고조선이 중국과 만주지역을 지배해 한민족 역사가 중국이 주무대인 것으로 기술돼 있고, 한사군은 한반도 바깥, 만주지역에 설치된 것으로 기술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고대사 기술은 여당·야당, 진보·보수학자의 합작품”이라면서 “현재의 중국 동북공정이나 미래에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지배한 적이 없다’고 해도 할말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근·현대사 왜곡

현장 검토본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 표현했지만 대한민국 역사 자체를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윤갑 계명대 교수는 “3·1운동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1919년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다만 국민투표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아 임시정부라고 했으며, 1948년 8월15일 정식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인데 국정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반공·친일 세력도 대한민국 수립의 주역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일제 강점기 친일부분에 대한 내용과 사회주의세력의 독립 운동 부분이 축소된 것은 민족정기를 바로세운다는 면에서 문제가 많은 기술”이라고 말했다.

강태원 호산고 역사교사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내용이 많이 늘어났다. 근현대사 파트에선 균형잡힌 시각보다는 경제발전 시각 위주로 기술한 점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지적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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