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해받은 대학 자율성] 손광락 경북대 교수

  • 이은경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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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3   |  발행일 2016-12-23 제35면   |  수정 2016-12-23
[침해받은 대학 자율성] 손광락 경북대 교수
손광락 경북대 교수가 본관 1층에서 ‘경북대학교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내 책임입니다’라는 피켓을 세워놓고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손광락 교수 제공>
[침해받은 대학 자율성] 손광락 경북대 교수

교육부‘묻지마 퇴짜’ 2년여 총장 공석
8월 2순위 후보자 임용 제청으로 논란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틀간 잠 못자
내 삶부터 반성하는 의미서 단식 시작
동료 8명 바통 43일간 대학 使命 고민”
내년 자율성회복 위한 특위 구성 눈앞

지난 9일, 연구실을 찾았을 때 손광락 경북대 영문과 교수는 토마스 머튼의 ‘No man is an island’를 읽고 있었다. ‘삶이란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누구이며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행할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책이 말하는 이 두가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손 교수의 결론은 단식농성이었다. 그는 지난 10월24일 오후 3시 경북대 본관 로비에서 ‘경북대학교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내 책임입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2년여가량 총장 임명을 거부해온 교육부가 경북대 제18대 총장으로 2순위 후보인 김상동 수학과 교수를 임명한 직후였다.

경북대는 2014년 6월 투표로 김사열 교수를 1순위 후보로 선출해 교육부 장관에 추천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유를 밝히지 않고 같은 해 7월 후보 재추천 요청 공문을 대학에 보냈다. 같은 해 10월 재투표 결과 김사열 교수가 다시 1순위, 김상동 교수가 2순위로 뽑혔지만 이번에도 교육부는 제청을 거부했다. 김사열 교수는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1심서 승소,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올해 8월 대학은 교육부에 김사열, 김상동 교수를 총장 후보자로 재추천했고 교육부는 2순위자 김상동 교수를 임용제청했다.

손 교수는 단식에 들어가면서 경북대 구성원들에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로 시작되는 장문의 글을 보냈다.

“대학 총장 선출은 대학자율의 상징이다. 총장이 누가 되든 학교가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서야 되겠는가. 이틀 정도 잠을 못 잤다. 그사이 교수회는 2순위 총장을 받아들였고 보직자가 임명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딱 일주일만 단식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불의와 타협하고 용납하고 교육부가 돈으로 밀어붙이는 사업을 쳐 내느라 하루하루 바쁜 나 자신의 삶부터 반성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불의와 부정을 묵인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손 교수는 1인용 침구, 텐트, 옷가지를 곁에 두고 노트북을 챙겨와 논문을 쓰는가 하면 독서도 하고 동료 교수와 학생들의 응원도 받으면서 일주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단식 사흘째 혈압이 200까지 올라가면서 응급실에 실려갔고 며칠 뒤 또다시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 두번째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때 그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해 동료들이 단식을 이어갔으며, 손 교수의 단식이 끝난 뒤에도 8명의 교수가 바통을 이어가며 43일간의 단식을 계속했다.

그는 인문대 교수회 부의장, 교수회 평의원으로 이번 사태를 지켜봤다고 했다.

“경북대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내 책임이다. 가만히 보고 있고 행동하지 않은 것,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것에 유책 사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것도 내 책임이다. 박근혜 이전에 내 책임이다. 부정과 불의에 맞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총장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어떤 정권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나부터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참 잘못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단식은 그 후회의 메시지다. ”

손 교수의 단식을 계기로 뜻을 함께하는 교수들이 모이면서 대학 내에 행동하는 교수·연구자 모임도 구성됐다. 모임은 이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2017년 새해에는 이 모임이 주축이 되어 대학자율성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경북대 총장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와 대학자율성회복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총장직선제 폐지 이후 무너진 대학 자율화의 의미있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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