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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역사연구가 박갑로씨는 충무공 이순신 마니아다. 그가 난중일기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순신 장군의 여인은 정실인 상주방씨 외에도 해주오씨, 최귀지(광주목사의 딸), 여진, 부안댁(윤씨 부인), 내산월(기생으로 추정) 정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만 순생과 덕이도 있습니다. 난중일기에 덕이는 네 차례나 언급돼요. 또 경아 엄마도 나오는데 그가 덕이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충무공은 방씨와의 사이에 3남1녀를 낳고 측실 해주오씨와는 2남2녀를 낳지요. 오씨 소생인 훈과 신은 병자호란에 참전해 순국했습니다. 그런데 조선 정조 때 이 충무공 전서를 출간하면서 측실 이야기는 다 뺐습니다.”
이순신 마니아…임란의병 공부
난중일기 등장인물만 1500여명
여유 있을때마다 활 쐈다고 기록
광화문 동상 활 쏘는 모습 돼야
박갑로 백두대간 의병전쟁 답사회 대표(57)는 충무공 이순신 마니아다. 그는 의병정신선양회 회원이자 아마추어 역사연구가들의 인터넷 모임인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http://cafe.daum.net/jjmkssm1545-1598)’ 회원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5년째 예천에서 살고 있는 박씨는 임란의병 공부에 천착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알기 위해 난중일기를 여러 번 독파했다. 그것도 건성으로 읽는 게 아니라 정독하면서 밑줄을 긋고 따로 주석을 달았다. 같은 단어가 몇 번 나오는지, 누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지도 꼼꼼하게 조사했다.
“하루에 두 페이지 이상 읽지 못하겠더라고요. 등장인물과 지역만 해도 얼마나 많습니까. 난중일기에 나오는 인물만 1천500명이 넘습니다.”
그는 일기에 나오는 각 지역을 탐방하고 등장인물의 집성촌을 찾아 그 후손들을 만나기도 했다.
“대부분 자신들의 조상과 이순신과의 관계를 잘 모르더군요. 관계를 잘 활용하면 마을이 관광지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이순신을 모함한 인물도 있지만 조방장 어영담, 순천부사 권준, 무의공 이순신, 녹도만호 정운, 흥양현감 배흥립 같이 도움을 준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권준은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아산 현충사에 이순신에게 도움을 준 인물들의 기념관을 지으면 좋겠어요.”
그는 경남도와 전남도가 각각 추진한 백의종군로(路)와 수군재건로(路)의 오류도 밝혀냈다.
“충무공이 백의종군 당시 남해에 가지 않았다고 알려졌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난중일기엔 남해현령 박대남을 문병하기 위해 사천~곤양~하동~노량을 거쳐 남해로 갔다고 나옵니다. 또 이순신 장군이 하룻밤 유숙한 장소도 산청 박호원의 재실이 아니라 노비의 헛간입니다. 경남도가 이를 수정해야 합니다. 또 벌교역 앞에 있는 보성 조양창(군량창고) 이정표도 낙성초등학교 앞에 설치해야 하는데 전남도가 잘못 알고 있어요.”
박씨는 충무공이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간직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와 잤다’ ‘오늘은 하루 종일 술에 취했다’ ‘어머니 뵙기가 송구스러워 흰 머리카락 올을 뽑았다’라는 내용이 그래요. 전쟁의 긴장감 속에 꿈도 많이 꾸었습니다. 꿈 이야기가 무려 50회 이상 나옵니다.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서애 류성룡도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그는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의 동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칼을 잡고 서있는 모습인데 충무공이 칼을 쓴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환도를 선물로 받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충무공은 여유가 있을 때마다 활을 쏘았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쏜 활도 장전, 편전, 철전 등 다양합니다. 활을 쏘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초등학교 등에 있는 충무공 동상이 다 칼을 옆에 차고 있는 모습인데 눈에 거슬립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도 ‘활의 노래’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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