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대통령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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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5   |  발행일 2017-02-15 제31면   |  수정 2017-02-15
[영남시론] 대통령의 조건
여상원 변호사

올 초에 별세한 박세일 명예교수는 유고가 된 글에서 “아무나 지도자 위치를 탐해선 안 된다. 치열한 고민·준비 없이 나서는 건 죄악”이라고 썼다.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태, 그 뒤를 이어 너도나도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을 보면서 위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는 ‘치열한 고민’이라는 말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고, 고민 중에서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나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냐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 시민도 애국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지키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가끔 언론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켜내는 모습을 보지만 이런 것을 모든 국민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신의 권리·의무에만 충실하면 애국이 되는 일반 시민과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다면 왜 우리가 그들을 지도자라 부르며 권한을 주고 그들이 만든 법률이나 명령에 따르겠는가. 결국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선공후사가 아닌 멸사봉공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가 공적인 일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사적인 일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으면 종국에는 공적인 권한을 사적인 이익 도모에 사용하게 된다.

지금 박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받고 있는 핵심 쟁점들도 최순실씨와의 사적인 관계에 대통령의 공적인 권한을 이용하였는지다. 또한 많은 전임 대통령 본인이나 친인척 등이 형사처벌을 받았던 것도 이들이 대통령의 권한을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사용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장·차관,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국가의 중요한 지도자다. 장·차관에 취임하거나 국회의원이 되면 온 집안에서 경사가 났다고 기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친인척들이 좋아하는 것이 그들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뭔가 얻어내려는 것이라면 분명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그런 자리에 오르는 것을 영예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지지 않아도 될 무한대의 책임에 힘들어해야 하고, 한편 내가 그럴 준비가 안 되었다고 고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인간에게 있어 자신과 가족의 안락함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기꺼이 그런 역할을 떠맡겠다고 맹세하고 나선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입으로만 공익을 앞세우고 뒤로는 이권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된다면 이야말로 정상배고 탐관오리가 아닌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장·차관에 임명된 순간 환호작약할 것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감에 침통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정말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지도자의 자세가 이와 같다면 지금 대선후보로 불리는 사람들이 이러한 자기희생을 하고서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엄중히 물어보고 대권 도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도 없이 전직이 화려하다느니 당신밖에 이 나라를 이끌 사람이 없다는 주위의 달콤한 말에 취해선 안된다. 처절한 고민도 없이 대권 운운하는 것은 스스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주위의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될 뿐이고 설사 당선되더라도 국가와 국민은 물론 자신도 망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한 지도자가 한 정파의 수장에 그치면 국민은 분열되고 정쟁에 날이 새는 국가가 될 것이다. 포용에 자신이 없다면 미리 지도자의 꿈을 내려놓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그저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친다면 국정혼란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는 것이 없다. 국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에 대하여 타산지석으로 삼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여상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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