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디지털 세상서 ‘천천히’ 아날로그적 삶…건강한 불편을 즐기다

  • 김수영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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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7   |  발행일 2017-02-17 제34면   |  수정 2017-02-17
■ ‘적당한 불편’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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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점점 손글씨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때 손글씨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글씨가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대백문화센터의 한글캘리그래피 강좌에서 수강생들이 붓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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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아트스트리트에서 열리는 범어아트마켓. <대구문화재단 제공>

느리지만 손맛 담은 핸드메이드 열풍
문화센터‘세상 하나뿐인 것 만들기’붐
캘리그래피·공예·홈패션 등 강좌 다채

핸드메이드제품 거래 아트마켓도 활기
예술인 창작품 전시판매‘범어아트마켓’
거리공연과 연계한 ‘대명동마켓’ 주목

식품업계는 ‘주문시 바로 조리’시스템
환경보전·타인에 대한 배려·건강 이유
약간의 불편 감수하는 채식주의도 급증


◆느리지만 손맛 느껴지는 핸드메이드 인기

빠름, 대량생산이 미덕이었던 우리 사회 일각에서 느리지만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핸드메이드 바람이 불고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직접 옷과 장신구를 만들고 음식을 요리하는 등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을 만들기 위한 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핸드메이드 바람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영국 BBC에서는 수제버거 매장 등이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수제 혁명(Handmade Revolution)’이라고 소개할 정도이다.

핸드메이드 열풍은 백화점의 문화강좌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대백프라자 대백문화센터에서는 가죽공예, 셀프 인테리어, 힐링도자기, 도자기 핸드페인팅, 양재·옷수선·홈패션, 한글캘리그래피, 꽃액자 만들기 등 다채로운 핸드메이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대백문화센터 관계자는 “예전에는 도자기, 홈패션 강좌 등으로 포괄적 강좌를 열었지만 최근 핸드메이드 강좌가 인기를 끌면서 강좌가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계절, 연령대 등을 고려한 강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지역 곳곳에서 핸드메이드제품을 판매하는 아트마켓도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아트마켓은 범어아트스트리트(지하철 2호선 범어역)에서 펼쳐지는 범어아트마켓과 대명공연문화거리(남구 대명동 계명대 정문 앞)에서 열리는 대명동마켓이다. 두 개 모두 대구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범어아트마켓은 범어아트스트리트에 입주해 있는 예술인과 지역예술인들이 직접 만든 예술창작품, 공예소품 등을 전시하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아트마켓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올해는 지난 1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에 열리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같은 시간대에 범어아트마켓데이도 연다. 범어아트마켓데이에서는 매월 주제(계절, 연휴, 기념일 등)를 가지고 이에 맞춰 제작한 핸드메이드 작품 전시는 물론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아트마켓은 12월까지 계속된다.

대명동마켓은 ‘대구의 명동을 만들자’라는 목표 아래 대명공연문화거리에서 2016년부터 열리고 있다. 5~10월 매주 금요일 오후 2~4시에 펼쳐진다. 대명동마켓에서는 계명대 미술대 학생들의 그림·도자기·금속공예, 대구지역의 공방에서 생산되는 핸드메이드소품·은세공품·패션소품 등을 판매한다. 대명동의 공연예술단체와 협력해 다양한 거리공연, 연극티켓판매이벤트 등도 진행하고 있다.

대구문화재단 차세대예술팀 전성찬 담당은 “범어아트마켓과 대명동마켓 모두 차세대예술인들을 지원하고 예술에 대한 친근감을 심어주고자 기획됐다. 단순히 핸드메이드작품을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예술인들과 연계해 공연을 펼침으로써 시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범어아트스트리트와 대명공연문화거리를 활성화시키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핸드메이드 바람은 감지된다. 서울에서는 일찌감치 수제바람이 불었다. 2004년 말 인사동에 들어선 공예품전문 쇼핑몰 ‘쌈지길’은 이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수제공예품과 디자인상품들을 판매한다.

부산에서는 손재주가 뛰어난 청년들이 모여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지난해 11월 핸드메이드 축제를 열었다. ‘3355핸즈온페어’라는 타이틀로 펼쳐진 이 축제에서는 낮에는 작가들의 핸드메이드작품을 보여주고 밤에는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만이 아니다. 식음료업계에서도 프리미엄 수제, 일명 핸드메이드 메뉴 출시 붐이 일고 있다. 최근 웰빙제품을 선호하는 소비트렌드에 부응하고 프리미엄 가치를 한 단계 높여 주문 시 바로 조리하는 수제시스템을 도입하고 관련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할리스커피는 최근 주문 즉시 크림을 매장에서 수제로 만들어 제공하는 겨울시즌 프리미엄 디저트를 내놨다. 한국 피자헛은 고급 수제버거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이색 프리미엄 피자 ‘수제버거 바이트’를 출시했다.

◆세미 베지테리언의 증가

11월1일은 채식주의자들의 날인 ‘월드 비건 데이(World Vegan Day)’다. 1944년 영국 런던에서 출범한 세계 최초의 채식주의자 모임인 비건 소사이어트가 제정한 날이다. 채식주의자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정보를 나누고 채식주의자로서 덜 불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하자는 취지로 제정했다. 각자 채식으로 요리한 음식을 공개된 장소에 가져와 나눠 먹고, 비채식인에게도 맛볼 기회를 준다.

그렇다면 채식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채식의 가치는 무엇일까.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 불교의 살생금지주의 등 종교적 가치와 연관돼 있다. 동물 사육과 도살 과정의 비윤리성, 동물 사육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배설물 메탄가스가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고 수질 악화에도 영향을 주는 것 등도 육식을 금하는 요인이 된다.

미국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육류 소비에 대한 문화 인류학적 고찰을 담은 저서 ‘육식의 종말’에서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로 인간의 식생활을 꼽았다. 특히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됐다. 그는 소 12억8천만 마리를 기르는데 전 지구의 토지 24%가 소요되고 미국 곡물의 70%가 가축의 먹이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굶주리고 있는 인간 수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다. 또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상당 부분이 가축에게서 배출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육류 소비의 문제점에 대한 관심이 채식주의 바람을 일으켰다. 조금 불편하지만 건강을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채식 위주지만 생선, 유제품, 달걀 등 약간의 육식을 하는 세미 베지테리언이 많다. 채식주의에 동조하는 이들은 완전한 채식주의자로 가기 전 단계의 사람들이 많다.

건강상의 이유로 25년 전부터 채식을 하고 있다는 차음식연구가 이화순씨(유빈차문화원 원장)는 채식예찬론자다. 이 원장은 “몸이 안 좋아 채식을 시작했는데 병원에 오랫동안 다녀도 잘 낫지 않던 병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건강을 되찾으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식, 약초음식 등에 관심을 갖고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명상에도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완전한 채식주의를 원하지만 사회활동이 많아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니 아주 가끔 육식을 한다고 한다. 계명몸과마음상담교육원 원장, 채식전문식당 연빈재 지도교수 등으로 활동하면서 채식식단 확산에 노력하고 있는 그는 채식의 좋은 점에 대해서 한참 설명한다. 우선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이는 채식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일수록 더욱 확실히 느낀다. 채식을 하면 기름이 많은 육식을 먹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다이어트 효과도 볼 수 있다. 이 원장에 따르면 1년만 채식을 하면 3~5㎏은 감량된다. 몸의 부기가 빠지고 피부가 맑아지는 것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채식의 맛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무리하게 채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선 육식을 찾아 먹는 습관부터 줄이면 자연스럽게 육식 섭취가 줄고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느끼면 점점 더 완전한 채식주의에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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