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제라고 인정하기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3-08 07:50  |  수정 2017-03-08 07:50  |  발행일 2017-03-08 제22면
[문화산책] 문제라고 인정하기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최근 할리우드 내 성평등과 관련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두 개의 기사를 봤다. 한 기사는 지난해 할리우드 상위 100편의 영화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역대 최고치인 29%로 2015년에 비해 7% 상승했다며, 할리우드 내 성평등 문제가 아주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기사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동안 할리우드 흥행영화를 연출한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여성감독의 80%가 그 기간 동안 단 한 편의 영화만 연출한 것에 비해 남성은 그 비율이 54.8%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차별 문제가 미국이라고, 할리우드라고 해서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지난해 여러 분야에서 크게 확산된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운동이 영화계에서도 ‘영화계_내_성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전개됐다. 영화 현장의 여성 스태프들이 그동안 받아온 차별과 성폭력 사례들을 고발하고 공론화하기 위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펼친 운동이었다. 한 잡지는 영화현장에서 벌어지는 피해사례를 제보받기도 했다. 쏟아진 제보에 따르면 현장에서 여성 스태프들에게 가해지는 성희롱과 언어폭력은 이미 일상화된 일이었다. 또 피해를 당한 여성 스태프들은 남성 중심으로 위계화된 영화현장의 구조 때문에 그 피해를 말하기조차 힘들었고, 행여 말을 하더라도 ‘영화의 완성’이라는 대의 앞에 문제는 묻혀버렸다. 결국 피해를 받은 여성 스태프들이 잘못된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영화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된 보고서 속 숫자가 더 평등하게 바뀌어야 하고, 어디에서건 성차별에 따른 폭력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수많은 성차별 문제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걸 먼저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성차별 문제는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는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을 겪고도 ‘여성혐오’가 아닌 ‘남성혐오’와 싸워야 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공고한 그들만의 공동체 속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성공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은 고립되고 내쫓겨 버린다. 이런 현상은 정말 문제가 아닌 것인가. 그렇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의 해결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100여 년 전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과 참정권에서 오는 성차별 ‘문제’에 대항하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