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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울리는 루이 암스트롱의 ‘멋진 세상’…국제재즈페스티벌 10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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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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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인 대구(JAZZ IN DAEGU)

1988년 문을 연 지역 첫 재즈클럽 ‘올드블루’(옛 올드뉴)를 30년간 이끌고 있는 박재수 사장. 매주 공연을 올리고 있다.
성기문(피아노)·강성민(콘트라베이스)과 호흡을 맞추는 김명환(드럼) 트리오. 가끔 보컬 박재홍 등이 가세한다.
색소폰 외길인생을 걷는 다운비트 재즈연주단장 김일수.
◆대구 재즈클럽 & 대구재즈협회

한국 첫 재즈클럽은 서울 신촌시장 내 허름한 2층 건물에서 태동했다. 국내 첫 여성 재즈보컬리스트로 불리는 박성연이 1978년에 차린 ‘야누스’다. 재즈인들끼리 놀자고 만든 것이다. 신관웅을 비롯해 이판근(베이시스트, 재즈 이론가), 조상국(드러머), 김수열(색소포니스트), 강대관(트럼피터) 등이 최초 멤버였다. 뒤에 유영수(드러머), 최선배(트럼피터) 등이 가세했다. 월 1회 재즈 정기 연주회를 가졌다. 현재 서울에는 인사동 ‘천년동안도’, 홍대 앞 ‘에반스’, 평창동 ‘김준재즈클럽’, 이태원 ‘올댓재즈’, 청담동의 ‘원스인어블루문’ 등이 있다.

재즈클럽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문에 빛을 본 셈이다. 김 전 대통령 임기 때 공연법이 개정된다. 카페에서도 복수의 연주자가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방의 경우 유독 대구·부산·창원 등 경상도권이 강세를 보인다.

대구 첫 재즈클럽은 동성로 해동라사 자리에 있었던 ‘올드뉴(Old new)’. 지역 건축인테리어의 신지평을 열어간 박재봉의 친동생인 박재수(63)가 차렸다. 온갖 풍파를 겪은 뒤 재장전한 삼덕동 2가 ‘올드블루(Old blue)’가 바로 그 후신이다. 올드뉴가 태어난 건 88년.

80년대와 90년대가 교차하는 시점에 전국 규모의 재즈협회가 생겨난다. 바로 84년에 재즈 보컬 김준을 회장으로 한 ‘한국재즈모임(KJC)’이다. 80년대 말에는 전국 회원만 1천명에 달했다. 이게 2009년 ‘한국재즈협회’로 확대 개편된다. 재즈클럽과 재즈협회는 동전의 양면 같다. 하나밖에 없으면 재즈문화도 존재할 수 없다. 싫든 좋든 둘은 윈윈라인을 짜야만 했다.

대구재즈모임은 89년 10월쯤 서울에 있는 한국재즈모임 측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태동됐다. 이 모임의 정기 재즈감상 모임 아지트가 바로 올드뉴였다. 당시 재즈음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곳은 마니아의 개인 감상실 아니면 재즈클럽 정도. 90년대로 넘어오면 재즈란 말이 남발된다. 나름 분위기를 갖추고 팝송류만 틀면 어김없이 ‘재즈카페’란 간판을 달았다.

올드뉴와 대구재즈모임의 공감대 위에서 90년 2월 대구에서 기념비적인 재즈공연이 성사된다. 그늘에 가려진 재즈를 양지로 끌어내준 ‘재즈대중화의 기수’로 불리는 재즈 1.5세대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이 동아쇼핑 비둘기홀에서 대구 첫 무대를 가졌는데 2회 모두 만석이었다.

올드뉴 초창기엔 이 업소가 어떤 공간인지 잘 몰라 들어왔다가 놀라 나가버리는 손님도 적잖았다. 당시에는 낯설기 이를데없는 노출콘크리트 공법을 사용해 상당히 모던했고 깔끔했다. 지금은 그 스타일이 익숙하지만 당시 일반 손님에겐 그런 심플함이 되레 부담으로 작용됐다. 대신 다운타운과 방송가, 나이트클럽 DJ, 유학파 등에겐 그들만의 양지였다. 통행금지가 없어서 오후 7시에 문을 열면 다음날 오전 7시에 문을 닫았다.

초창기 재즈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김종우가 매니저였다. 음악을 틀고 손님도 맞는 등 대외적으로는 사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김종우는 대구백화점 근처에서 ‘타임’이란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었다. 재즈감상 인프라는 풍부했지만 정작 라이브는 없었다. 재즈를 제대로 공연할 연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다. 올드뉴에서는 주1회 대구재즈모임 주관으로 재즈감상회를 가졌다. 회원들은 재즈음반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재즈 전문 매장은 서울 대학로에 있었던 바로크였다. 바로크 사장의 여동생이 대구점을 차렸다.

원래 재즈맨은 자기 주관이 드세다. 김종우도 올드뉴와 노선 차이로 독립을 한다. 그는 91년 예전 호프골목의 상징이었던 ‘불칸호프’(현재 토끼정) 자리에서 ‘올댓재즈(All that jazz)’를 오픈한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재즈 라이브를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재즈클럽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공연법상 클럽 내에서 공연은 불가. 강행하다가 적발돼 100만원 벌금을 물기도 했다. 이 무렵 시내 금융결제원 근처에 ‘에마뇽’이란 재즈클럽 스타일의 라이브 카페도 나타난다. 미군과 유학파, 그리고 감성파 언론인 등이 여길 들락거렸다.

김종우가 떠난 올드뉴는 허탈해진다. 나중엔 일반 영업장으로 변해버렸다. 박 사장은 ‘올레’란 일반 커피숍을 2년쯤 경영한다.

78년 서울 신촌 ‘야누스’ 韓 첫 재즈클럽
대구선 88년 동성로 ‘올드뉴’가 신호탄
90년대 접어들 무렵 전국 규모 협회 생겨
80년대 말엔 회원만도 1천명에 이르러

89년 ‘올드뉴’서 대구재즈모임도 태동
정기적으로 재즈감상과 재즈문화 공유
90년 이정식 공연 ‘재즈 대중화’에 족적
91년 ‘올댓재즈’재즈 라이브공연 메카

재즈모임 회장 등 마니아들 클럽 오픈도
이용욱 ‘버드’·이정회 ‘크리스’ 대표적
백진우 필두로 2000년대 유학파 맹활약
재즈밴드·국제재즈페스티벌 주도 눈길



◆올드뉴를 딛고 올드블루 등장

박 사장한테서 클럽에 대한 욕구가 다시 치솟았다. 95년 동인호텔 뒤편에 있었던 옛 청호호텔 2층에서 다시 올드뉴 시대를 잇기 위해 ‘올드블루’를 연다. 매장은 530여㎡(160여평). 연주에 치중을 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야누스 재즈클럽 사장 박성연, 여성 재즈 보컬 임희숙, 말로, 웅산 등을 불렀다. 이정식 밴드에 편승한 가수 신효범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언더 보컬 안혜경이 대타로 나와 판을 뒤집어놓았다. 1년에 7~8회 공연을 올렸다. 특히 유진박 공연 때 근처에 교통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입장료라는 게 따로 없었다. 단골이 매상을 많이 올려줘야 개런티도 맞출 수 있었다. 초창기엔 정식 출연료라는 게 있었지만 나중엔 서로 안면도 있고 해서 거마비 정도만 받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재즈 뮤지션들은 재즈클럽이 항상 폐업 직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올드블루는 록과 재즈존으로 나눠졌다. 홀마다 스피커도 달랐다. 재즈존 스피커는 주로 JBL 4344가 선호됐다. 대구국제포크페스티벌 전 음악감독인 오규철이 공연 당일 음향시스템을 챙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엔 괜찮던 흐름이 갈수록 처지기 시작한다. 지하철 공사와 음주단속 등으로 인해 동성로 단골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고, 그게 영업 지장을 초래했다. 2007년 7월 잠정 휴업에 들어간다.

2011년 9월 세번째 재즈클럽 복원에 나선다. 삼덕동 2가 닥터홍 지하에 자리한 올드블루는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

◆기타 재즈클럽과 마니아

대구재즈모임 초대회장인 이용욱(60). 그는 여전히 회장으로 있다. 예전과 달리 20명이 안되는 회원이지만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재즈피아’를 꿈꾼다. 현재 경북대병원 근처에서 미래약국을 경영하는 그는 밤에는 시내 통신골목 어귀에서 8개의 테이블을 갖고 일본 스타일 창고형 재즈클럽 ‘버드(Bird)’를 운영하고 있다. 벌써 15번 공연을 올렸다. 그는 88년 한국재즈모임이 한강에서 재즈1세대를 모두 불러내 재즈페스티벌을 펼쳤을 때 지원사격을 위해 자주 서울로 갔다. 그래서 대구와 서울 간에 재즈와 관련해 긴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그가 2006년 늦깎이로 대구 프린스호텔에서 결혼할 때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이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즈 마니아인 이정회(58)도 2년 여 전에 수성구 중동 옛 대동은행 바로 옆에 ‘크리스’란 재즈클럽을 열었다. 내보내는 음악 중 80~90%가 재즈다. 현재 사업가 임대원을 주축으로 박영옥(보컬), 김대엽(드럼), 김종만(기타), 장진호(베이스) 등 중년 뮤지션이 모여 만든 ‘더 펠로우즈(The fellows)’ 조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해외파 재즈 뮤지션 시대 개막

2000년으로 접어들면서 국제급 연주자가 폭증한다. 재즈 하모니카로 유명한 전제덕,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여성 재즈 보컬 말로와 웅산, 그리고 프랑스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은 나윤선 등으로 인해 한국 재즈뮤지션의 스펙트럼은 일본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고만고만한 밴드까지 포함하면 국내엔 무려 300개 이상의 밴드가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99년 2월 미국 버클리음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졸업한 백진우가 대구로 온다. 비브라포니스트인 그는 그해 3월 대구예술대 겸임교수가 된다. 2002년 4년제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실용음악과에서 재즈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고 즉흥연주, 화성악 등 재즈이론을 가르친다.

백진우는 99년 ‘애플재즈빅밴드’를 창단하고 2006년 ‘애플재즈오케스트라’로 재편한다. 재즈 문화 대중화를 위해 2000년 앞산순환도로변에 있는 한 건물 지하에 ‘바이브(VIVE)’란 재즈클럽을 열었다. 적잖은 사비를 투입해 매일 재즈 연주를 강행했다. 하지만 열정뿐 현실은 너무나 냉담했다. 결국 1년도 안돼 망해버렸다.

그는 올해 10년 역사의 대구국제재즈페스티벌 산파역할도 했다. 초창기엔 지원이 전혀 없어 사비가 적잖게 들어갔다. 현재 강주열 조직위원장과 함께 대구 재즈 뮤지션을 국제화시키기 위한 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밖에 색소포니스트 이상직, 라틴 퍼커셔니스트 김남훈, 콘트라베이시스트 윤태원, 비브라포니스트 정상원, 피아니스트 남경윤, 기타리스트 김정식, 피아니스트 조별휘 등 지역에도 20여명의 유학파 뮤지션이 포진해 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재즈밴드는 김명환 트리오와 홍정수 퀄텟, 브로큰타임 등. 드러머 김명환과 호흡이 잘 맞는 성기문은 대구예술대 출신의 국내 정상급 하몬드 피아노 연주자로 평가받는다. 여자 보컬로는 영남대 음대 성악과 출신인 정은주가 가스펠톤 재즈 보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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