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조각으로 만나는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윤석남 대구서 첫 개인전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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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5   |  발행일 2017-04-25 제24면   |  수정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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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작가가 봉산문화회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나무 유기견’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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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작 ‘늘어나다’

윤석남 작가는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린다. 페미니스트 화가 1세대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한국미술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별칭이다.

봉산문화회관이 윤석남 작가를 초대했다. 기획무대인 기억공작소에 ‘사람과 사람없이’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전시를 마련했다. 지난 21일 오프닝 행사를 위해 대구를 찾은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대구에서 개인전은 처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작가는 대모라는 수식어에 대해 복잡한 심정을 나타냈다. “대모라는 말이 처음에는 거북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내 스스로 못 미친다는 생각도 들었죠. 또 여성미술이라는 카테고리에 한정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지금은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여성미술의 발전을 위해 ‘개인은 잊자’고 생각하게 됐죠. 한편으로는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40세인 1979년 처음 붓을 잡았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다. 평범한 주부로 지내던 작가는 자의식에 눈을 뜨면서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처음에는 서예를 했는데, 곧 ‘내 옷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


어머니를 쏙 빼닮은 나무 여인상
유기견 102마리와 이애신 할머니
“약자 배려하는 치유의 힘 담아내”

여성·인간·환경·생명…의식 확장
내달 13일 작품세계 연구 워크숍



작가는 어머니부터 그렸다. “나의 존재를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겁이 났다. 미술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드러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친정어머니를 그렸다. 엄마의 이타적 삶을 얘기하고 싶었다. 엄마를 그리면서 용기를 내게 됐고, 나의 얘기와 여성의 얘기로 자연스럽게 전환됐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작가는 그림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42세에 ‘어머니의 눈’이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회를 가졌다. 또 1996년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는 1990년대에 들면서 나무 조각에 손을 댔다. 역시 배우지 않은 분야였지만, 소통을 위해 힘든 작업을 자초했다. 또 여성주의에서 점점 인간과 환경, 생명의 문제로 의식을 확장했다.

봉산문화회관에 전시된 작품은 어머니를 은유하는 ‘늘어나다’ 나무 여인상 1점과 2008년에 선보인 1천25마리의 나무 유기견 가운데 102마리, 이애신 할머니 나무조각상, 드로잉 1점이다. 이애신 할머니는 1천25마리의 유기견을 돌본 주인공이다.

나무 유기견 가운데 일부는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다. 작가는 초기 작업시 몇 마리에만 구멍을 뚫었다고 밝혔다. “심장이 뚫린 것처럼 상실감이 클 것이라는 생각에 구멍을 뚫었는데, 너무 아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계속 구멍을 못 뚫겠더라고요.”

봉산문화회관 정종구 큐레이터는 “나무 유기견은 약자를 배려하는 작가의 감수성과 치유의 힘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최근 한국의 채색화인 민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민화가 버려진 보물 같은 생각이 든다. 서민 생활의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윤석남-사람과 사람없이展’은 오는 6월25일까지 진행된다. 5월13일 오후 3시 작가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워크숍도 열린다. (053)661-3500

글·사진=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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