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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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7   |  발행일 2017-04-27 제30면   |  수정 2017-04-27
모래알 하나 씻겨나가도 육지는 작아진다고,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고 했듯 나와 타자 별개가 아니다
[여성칼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허창옥 (수필가)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제목을 따왔다. 어림도 없지만 이 보잘것없는 글에도 그들과 같은 제목을 붙여 보았다.

헤밍웨이의 이 소설을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읽었다. 존 던의 시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뒤에 처음 대했다. 하여 시가 소설의 제목을 차용한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시인은 17세기 사람이다. 시를 읽고 또 읽으며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중략)/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는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기에”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그만큼 땅이 작아진다니,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니, 시인의 통찰에 가슴이 떨렸다. 나는 나를 포함한 세계의 일부분이다. 내가 없어지면 세계는 감소하고, 나의 지인 심지어 지구 반대편의 한 사람이 사라져도 세계는 줄어든다. 언제 그런 유대감으로, 그런 절절함으로 타자와 세계를 인식한 적이 있었던가.

이따금 세계와 유리되어 아니 그건 범위가 너무 넓다. 가까운 지인과도 격리된 채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혼자 있기도 한다. 오로지 혼자인 것처럼, 홀로 있어서 더욱 충만한 듯 느끼기도 한다. 나는 혼자이며,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나는 직접 관련되지 않았다.

시인의 인식에 따르면 나는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세포다. 내가 세계를 이루는 한 개의 세포이면 모든 일은 나와 연관이 있다. 종은 그 누구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 울리는 종일지라도, 그것이 다함없는 기쁨이거나 깊이 모를 절망의 종일지라도, 그 소리는 내게 와닿아야 하는 것이다.

‘대구 중앙로역 화재사고’가 났을 때였다. 시민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갔다. 국화 한 송이를 놓고 깊은 절을 두 번 올렸다. 수많은 위패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왔다. 중앙로를 걷는데 비가 내렸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눈물이 났다. 펑펑 울었다. 울면서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떠올렸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 예비역 군인이 쓴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772함(艦)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의 어두움도 서해의 그 어떤 급류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후략)” 또 4월28일은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났던 날이다. 가슴 찢어지는 슬픔들이었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거듭 일어나는 것일까.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3년 만에, 유가족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졸인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배가 침몰하던 날 생중계를 보면서 속수무책, 망연자실, 탄식과 슬픔을 거쳐서 절망하던 때로부터 있었던 저간의 일들은 모두의 기억 속에 아직 뼈아프게 남아 있다. 뭍으로 나온 배는 그러나 대답을 해주고 있지 않다. 배는 녹슬고 부서지고 무너진 채로 펄을 잔뜩 품고 있다.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서 관계자들이 밤낮으로 노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사회적·정치적 갈등이 있었다. ‘이제 그 모든 걸 접고 함께 마지막 소망을 위해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는’생각이다.

다시 존 던의 시를 생각한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킨다고, 모래알 하나가 파도에 씻겨나가도 육지는 작아진다고 시인은 말했다. 타자와 내가 별개의 존재가 아니란 이야기다. 종은 나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허창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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