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재불화가 남홍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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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8   |  발행일 2017-04-28 제39면   |  수정 2017-04-28
“어릴적 놀던 건들바위·앞산 담은 내 작품…가족 그리움도 고스란히”
[이사람] 재불화가 남홍
남홍 화가가 그의 작품으로 채워진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흔히 남홍을 재불화가라고 말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사는 것이 제일 좋고 앞으로도 여건만 된다면 한국에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는 1982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8대학 조형미술과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전시를 열었다. 프랑스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대작을, 프랑스에서는 40호 미만의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15~2016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예전보다 한국에 자주 오지를 못했는데 앞으로는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대구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그가 오랜만에 고향 대구를 찾았다. 꽤 오래 보지 못한 대구가 그래서 더 정겹고 좋다는 그에게 대구가 그렇게 매력적인 이유를 묻고 싶었다.

대보름 祖母의 한지 태우는 의식서 영감
소지후 남은 재를 작품에 콜라주·물감칠
장구춤 등 퍼포먼스로 한국문화도 알려
5월까지 두 달여 대구 머물며 大作 작업

“현재 영원한 보금자리 ‘둥지’시리즈 열심
이제 죽어도 여한 없단 생각들 만큼 행복
대구서 여생 보내고 부모 곁 묻히고 싶어”

▶남홍하면 ‘불’과 ‘재’를 많이 떠올리는데 작품경향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 작품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한국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바람이 녹아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집 부근에 있던 건들바위에 자주 갔는데 정월대보름에 할머니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소지(燒紙, 부정(不淨)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흰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올리는 일)하는 것을 자주 봐왔습니다. 이것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에 불에 태운 듯한 한지의 사용이 많은가 봅니다.

“맞습니다. 소지를 하고 남은 한지를 작품에 콜라주하고 여기에 물감을 칠합니다. 이런 형상이 작품에 입체감을 주고 생명력, 희망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제 작품에 나비가 많이 등장하는데 나비도 소지와 연관이 있지요. 불타오르면서 하늘을 향해 두둥실 떠가는 재를 보면서 자유로움과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끝없이 비상하는 나비의 날갯짓이 연상됐습니다. 한지를 태우고 기도하면서 복을 부르고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은 저에게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 또한 아름다운 나비의 형상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고향인 대구에 대한 사랑이 큰 것 같습니다.

“제 작품에는 나무, 산 등도 많이 등장합니다. 이것 역시 제가 어릴 때 봤던 건들바위 풍경과 건들바위 앞에서 놀면서 봤던 앞산의 모습 등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산의 형상이 앞산의 실제 모습과는 다른데 어릴 적 제게 느껴졌던 앞산의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지금 보면 그렇게 큰 산이 아니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아주 큰 산이었지요. 그 산에는 희망, 열정, 사랑, 행복 등이 가득차 움트고 있었지요.”

[이사람] 재불화가 남홍
남홍 작 ‘나비’

▶남홍 화가는 퍼포먼스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특히 제 퍼포먼스를 좋아합니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학생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퍼포먼스를 해서 예상 외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퍼포먼스를 하게 된 것은 2001년 KBS 프랑스 특파원이 제 개인전에 취재를 온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한지를 태우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때 전시장에서의 반응이 좋아서 이후 퍼포먼스 요청이 이어졌습니다. 퍼포먼스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해 한복을 입고 장구춤을 추었습니다. 이미자, 심수봉 등 한국가수들의 노래를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해서 한국문화를 다양하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가 있는지요.

“200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초대전에서 이미자의 노래 ‘여로’를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한 것이 가장 완벽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해외 한 언론에서 ‘남홍의 퍼포먼스도 큰 감동을 주었지만, 남홍 작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길이 더 큰 감동이었다’고 평했을 정도였습니다.”

▶퍼포먼스에서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자한 의도가 있는 듯합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보고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그만큼 약한 것이지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한국의 전통악기인 장구를 들고 한복을 입었습니다. 음악도 한국의 유명 대중가수들의 것을 사용했지요. 저의 장구춤이 어설프고 한국가수들의 노래를 처음 듣는데도 외국인들은 이런 것들이 주는 새로움에 감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도 의미합니다.”

▶한국여성의 위대함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하던데, 맞는지요.

“저의 할머니, 어머니를 보면서 한국여성의 강인함, 위대함을 가슴 깊이 깨달았지요. 세계에서 결혼을 해서도 성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압니다. 남존여비, 이런 말은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결혼했다고 성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예전부터 뛰어난 여성들의 능력을 인지했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 여성들이 한국을 넘어서 세계에서 큰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2년 여 동안 예전처럼 한국에 자주 오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서 대구에서 오랫동안 사셨습니다. 그런데 2014년 말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대구에만 오면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아파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뜸했지요. 그즈음 세계 여러나라에서 초대전 요청도 이어졌습니다. 작업하느라 바쁜 것도 한국에 잘 오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쁘게 보낸 시간이 아버지를 빨리 잊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대구에 왔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지 않습니다.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한지를 태우며 늘 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드렸던 것이 도움이 된 듯합니다.”

▶한국에 2개월 여 머물면서 최신작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제목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늘 한국, 대구에 대한 사랑을 소재로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영원한 내 보금자리를 의미하는 ‘둥지’라는 시리즈입니다. 요즘 거의 이 작업에 매달려 있습니다. 5월 중순까지 대구에 있는 동안 대작들을 하려 합니다. 작업실이 제 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데 자다가 깨서 잠이 안 오면 작업실에 가서 멍하니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떠오르고 그 분들이 저의 수호신이 되어서 제 곁에 있는 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그 순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지요. 제가 화가로서 해야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올해도 큰 전시가 몇개 있는 줄 압니다. 이 전시를 위한 신작인지요.

“2015~2016년 모나코초대전, 베니스비엔날레 초대전, 프랑스 파리 초대전 등 대형전시가 많아 체력적으로 탈진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올해 상반기는 조금 쉰다는 생각으로 둥지 시리즈와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여유를 좀 가지려 합니다. 도자기작업은 이천, 여주 등을 둘러보며 좋은 도예작품을 골라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늘 해보고 싶어서 간간이 시도를 했지만 본격적으로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이를 시도하려 합니다. 이후 9월에는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열리는 해외작가 교류전, 12월에는 미국 마이애미아트페어 등에 참여합니다. 둥지 시리즈는 마이애미아트페어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멀리 보면서 살지 않으려 합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오늘,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이 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합니다. 힘이 닿는 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사는 것이 앞으로의 제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무덤 옆에 묻히는 게 소원입니다. 그날까지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남홍 화가는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프랑스 국유의 오베르성 초대전, 한·불수교 120주년과 130주년 파리 16구청 초대전, 이탈리아 루카미술관 초대전 등을 열었다. 국내에서는 예술의전당, 조선일보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시안미술관 등에 초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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