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김부겸과 유승민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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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4   |  발행일 2017-05-04 제31면   |  수정 2017-05-04
[영남타워] 김부겸과 유승민
박진관 기획취재부장 사람&뉴스전문기자

TK는 이번 대선이 별 재미가 없다고 한다. 이는 한 후보에게만 몰표를 줬던 ‘묻지마 투표’에 길들여진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전자 입장에선 TK지역에서 이번만큼 흥미로운 대선은 없는 것 같다. ‘TK삼분지계’를 구축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문재인·안철수·홍준표 후보 중 누가 TK에서 1위를 하는가는 또다른 관심 대상이다.

그런 가운데 김부겸과 유승민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총선 직후 차기 대선주자를 묻는 한 여론조사에서 전국적으로 각각 야권 3위, 여권 1위에 오른 바 있다. 또한 대구·경북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TK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두 사람을 꼽고 있다. 유승민이 현재 본선에 출전했지만 ‘장미대선’이 아닌 ‘겨울대선’이었다면 두 정치인의 운명은 지금과 달랐으리라.

김부겸은 지난 2월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약 한달간 침잠했다. 당내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상주-군위-의성-청송 재선거에 투신해 자기 선거처럼 당 후보를 지원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대선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대구·경북과 광주를 오가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최근 유세 중 두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유튜브를 통해 포털사이트 에서 실검 1위를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나는 대구 달서구에서 유세를 하려 하자 “여~ 와가 떠들지마라, 이 새끼들아. 너~가 (박근혜 전 대통령) 독주사 줘가 직일라꼬 그러는 거 아이가”라며 한 할머니가 그에게 대들며 삿대질을 하는 장면이다. 김부겸은 이에 대응하려는 운동원을 말리며 할머니를 달랬다. 이후 그는 페이스북에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자 문 후보가 “동지”라고 부르겠다고 화답하며 그를 위로했다.

또 다른 하나는 칠성시장에서다. 이번엔 한 상인이 차량을 못 대게 하며 계속해 유세를 방해하자 “다른 당이 와도 그렇게 하느냐. 대구가 20년째 경제 꼴찌다. 정신 차리세요. 제발 새끼들 좀 생각하이소. 대형마트가 칠성시장에 들어오려 할 때 반대한 건 우리당”이라며 사자후로 ‘격정유세’를 이어갔다. 이 연설은 서울대 재학시절 아크로폴리스의 ‘열정연설’을 떠올리게 할 만큼 반향이 컸다. 지난 6년간 대구에서 정치를 하며 숨죽였던 그의 야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김부겸의 진정성 담긴 연설을 보고 팬이 됐다는 시민도 급격히 늘어났다. 그가 와신상담 차기 대권을 꿈꾼다면 TK정서에 의탁해 따라갈 것이 아니라 최전선에서 담대하게 뚫고 헤쳐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유승민은 여섯 차례 TV토론 중 줄곧 1~2위를 다퉜다. 그의 질문은 날카로웠으며 대답은 냉철했다. 특히 전공인 경제분야에선 다른 후보를 압도했다. 그가 지금의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던 건 지난해 총선파동과 박 전 대통령 탄핵 때 보여준 올곧고 바른 이미지에 따뜻한 보수를 주창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분열을 끝내고 미래로 가자면서 국방백서에도 없는 ‘주적’논란으로 해묵은 색깔론을 들먹이는 바람에 진보에 ‘유·홍상종’이란 이미지를 안겨버렸다. 유승민은 같은 보수였지만 북방외교를 비롯한 노태우정부의 유연한 통일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했다. 그는 평화통일에 대한 포용의 리더십과 비전 제시가 부족했다. 결국 홍준표의 ‘배신자 프레임’에 갇힘으로써 지지율 답보로 함께했던 국회의원마저 13명이나 탈당하는 바람에 고립무원이 돼버렸다.

이제 유승민에게 남은 시간은 5일이다. 그는 ‘절벽정신’으로 끝까지 간다고 선언하며 풍찬노숙의 길을 택했다. 앞서 열린우리당이 진보의 실험으로 끝난 것처럼 바른정당이 붕괴된다면 한국정치에서 합리적 보수의 싹이 사라질 수 있다.

선거는 이번 대선만 있는 게 아니다. 1년 뒤 지방선거, 3년 뒤 총선, 또다시 대선이 있다. 유승민은 대선 후 출발선에 다시 서서 조직을 추스르고 외연을 넓힌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열린 보수, 성찰하는 진보가 함께 경쟁하고 협력할 때 발전이 있다. 김부겸과 유승민이 여전히 TK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인 이유이기도 하다.
박진관 기획취재부장 사람&뉴스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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