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伊 ‘요람에서 무덤까지’전 한복연구가 서덕순씨

  • 이춘호 손동욱
  • |
  • 입력 2017-05-26   |  발행일 2017-05-26 제35면   |  수정 2017-05-26
“배냇저고리부터 수의까지…伊서 한복으로 韓문화 알렸어요”
20170526
지난 5월초 이탈리아에서 한복 알리기 행사를 끝내고 귀국한 한복연구가 서덕순씨. 그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전통혼례 때 신부가 치마저고리 위에 걸쳐 입는 대례복의 하나인 활옷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20170526
우디네시 한국의 날 행사장에서 만난 방문객과 대화 중인 서덕순씨.
20170526
서덕순씨가 카 포스카리대학 세종학당 두르소 학장의 통역으로 한국 전통혼례 특강을 하고 있다.
20170526
서덕순씨가 카 포스카리대학 특강후 장재복 주밀라노 총영사, 전통혼례 시연 모델 등과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 19일 오후 대구 중구 대봉동 웨딩타운 한구석에 있는 한복연구가 서덕순씨(56)의 작업실을 찾았다. 서씨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한복전(5월3~15일)을 하고 며칠전에 귀국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주제로 전통혼례복 등 주요 한복을 전시하고 특강과 한복 체험행사까지 진두지휘했다. 지난 6일 우디네시 ‘한국의 날’ 행사 때는 천연염색한 비단과 혼례복 등 200여점의 한복류를 전시했다. 9일은 밀라노대학에서 특별초청강연, 11일은 베네치아 카 포스카리대학 세종학당의 빈첸차 두르소 학장 초청으로 특강도 했다. 이때 13명의 현지 대학생을 모델로 차출해 ‘함진아비 시연’도 했고 신분별 비녀, 혼례용 나무기러기, 노리개, 복주머니 등 각종 소품도 선보였다.

주밀라노 총영사 초청으로 2주간
우리옷 전시·특강·체험행사 진행
세계 최고 패션도시서 ‘한복 외교’

큰 상자 27개에 담아간 1천여 품목
고증 거친 한복스토리텔링방식 적용
관혼상제 문화로 쉽고 재밌게 소개

“기녀복 입은 혼주 등 황당한 현실”
이런 안타까움에 본질 파고든 공부
20여년 전부터 한복 지으며 전시 등


◆이탈리아…한복을 만났을 때

2주일간의 행사를 위해 대형상자 27개에 담긴 1천여 점의 품목을 일일이 분류했다. 용잠, 봉황잠, 해녀용 나무비녀 등 비녀만 30개가 넘었다. 세계 최고 패션도시에서 한복의 진정한 가치를 선보인다는 것. 또 다른 ‘국위선양’이라 여겼다. 한복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복에 얽힌 문화를 한복스토리텔링방식으로 전해주고 싶었다. 특강할 내용도 한국전례원, 대구향교 등을 통해 체크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에서 호텔업을 하고 있는 여성 사업가 정하지 교민의 도움이 컸다. 정씨는 지난해 서씨의 숍을 방문했고 거기서 “당신은 한복장사꾼이 아니고 한복문화를 파는 사람인 것 같다. 이탈리아로 와서 한복의 모든 것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그녀의 적극적 관심을 알게 된 장재복 주밀라노 총영사의 초청으로 이번 행사가 성사됐다.

“K-pop은 많이 알고 있지만 한국의 전통미가 살아있는 한복의 본질은 현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더군요.”

그간 이런저런 한복 시연행사는 있었지만 그건 단순히 한복만 보여주는 행사에 그쳤다.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한복을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입었는지를 현지인에게 직접 시연까지 보이면서 설명한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디네시 한국의 날 행사 때는 다들 천연염색된 한국 비단에 관심을 쏟았다.

“패션 관계자들이 구체적으로 반응하더군요. 한복은 봤어도 비단 원단을 본 건 처음이라고. 비단의 은은한 색과 질감에 대해 큰 궁금증을 보였습니다.”

특히 모 호텔 관계자는 내년에 한국 염색전을 별도로 열고 싶다는 반응도 보였다.

9일에는 밀라노대학으로 갔다. 거기 대강당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한복전을 했다. 이탈리아 현지인한테 특히 호기심을 많이 유발시킨 재밌는 옷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입는 옷인 ‘배냇저고리’다. 이건 수의처럼 단추가 없다. 생애 처음 엄마로부터 받는 옷인데 염색하지 않은 흰 비단으로 만든다. 땋은 명주끈을 ‘동심결(同心結)’로 묶어 옷을 금줄처럼 한 번 둘러준다. 일반 매듭보다 훨씬 잘 풀리는 동심결은 전통 상례와 혼례 때 많이 사용되는 매듭 방식이다. 배냇저고리에 따라붙는 바지는 ‘풍차바지’다.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영아용 바지인데 오방색 쪽천을 덧대 조각보자기 문양으로 만든 게 특징이다.

“이 옷은 임신했을 때 임부가 태교 수단으로 누비 바느질로 미리 만들어놓는 겁니다.”

◆요즘 혼례 너무 가벼워

그녀는 특강 때 전통혼례에 담긴 정신에 대해 강조했다.

“예전 어른들은 결혼을 ‘이성지합(二姓之合) 만복지원(萬福之源)’이라 했습니다. 결혼하는 초례상에도 그 글귀를 적어놓죠. 사람은 두 번 태어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한 번, 두 번째는 결혼 때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대례(大禮)라 한 겁니다.”

그녀는 현대결혼이 직선이라면 전통혼례는 ‘곡선’이라고 규정한다. 속도와 간결함을 우선시하는 현대와 달리 전통혼례는 엄숙함과 진중함에 뿌리가 있다고 본다.

“현대혼례가 너와 나의 결합이라면 전통혼례는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죠. 그래서 더 엄격했고 더 격식에 치중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혼주보다 예비부부의 의견만 반영되니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그녀는 기녀 스타일의 무개념 개량 한복을 입은 혼주한테 실망해 직접 그 옷을 만든 한복집에 항의전화를 걸기도 했다. 또한 폐백 때 한복 차림의 시어머니와 양복 차림의 시아버지, 이 황당한 미스매치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요즘 웨딩드레스와 웨딩사진에 너무 많이 진을 빼는 것 같습니다. 가문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전통의 의미도 한 번쯤 되짚어 봤으면 싶네요.”

한복집이지만 혼서지, 사성, 청혼서, 허혼서, 연길 등에 관련된 글도 무료로 적어준다. 그 몫은 현재 서예가 취미인 남편이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요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복인문학’이란 프로그램도 진행해보고 싶어한다.

◆20년 전부터 한복전시에 올인

1994년 한복집을 오픈했다. 그때 개념 없는 한 신부가 “은색치마, 분홍저고리에 쪽색 옷고름을 하고 싶다”고 고집했다. 예법이 아니라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니 대끔 “왜 안 되냐”고 반문했다. 그냥 “신부는 그렇게 입어서는 안 된다”면서 원칙만 얘기했다. 대답이 궁색했다. 그때부터 전통한복과 전통문화의 본질에 대해 파고들었다.

한복장이로 가장 많이 배웠고 가장 많이 감동한 순간은 1995~2000년. 유희경 한국복식연구소장, 예법에 조예가 깊은 서예가 이봉호씨의 자문으로 전통혼례복과 혼례절차를 고증한 끝에 ‘아시아전통혼례교류대회’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95년은 일본 도쿄 그랜드 프린스 신다카나와호텔, 96년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사히도자야호텔, 97년은 서울 힐튼호텔 등에서 동아시아 6개국 순회전을 했다. 이때 화려하기 그지없는 한 벌에 3천만원짜리 활옷, 원삼 등 대례복을 마련했다. 거기에 맞는 족두리, 화관 등도 선보였다. 그 복식전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2002 한·일월드컵 때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특별전, 2009년에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특별초대전을 열었다. 전시 이후 상자 속에 잠자고 있던 소품을 다시 깨워 이탈리아로 데려갔다. 제2의 도전이었다.

◆서덕순의 함 이야기

‘함’에도 숱한 얘기가 숨어 있다. 안에 넣는 ‘혼서지(혼인 허락에 대한 신랑댁의 감사의 편지)’는 신부가 평생 지녔다가 관 속에 들어간다. ‘오곡주머니’도 들어간다. 검정색 주머니에는 검정콩, 붉은색에는 팥, 흰색은 찹쌀, 푸른색은 수수, 황색에는 조를 넣는다. 이 밖에 향·차씨·목화씨가 들어간 ‘삼낭주머니’, 붉은고추와 호두도 7개씩 넣는다. ‘다산다복(多産多福)’의 의미다.

함 싸는 별도 시각이 있다. 양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정오 어름에 싸서 낮과 밤이 교차하는 일몰 때 함진아비를 앞세워 신부집으로 보낸다. 함을 질 때 사용하는 끈은 폭이 15인치 정도인 긴 백포를 사용한다. 이걸 네번 접어 댕기머리처럼 끈으로 엮어내는데 ‘부부일심’을 의미한다. 이 백포는 함 받을 때 까는 바닥포, 초례청에서는 신부가 밟고 가는 ‘레드카펫’, 신랑 다룰 때는 발목 묶는 용, 마지막엔 ‘기저귀’로 사용되며 생을 마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