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미사일 디바이드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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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0   |  발행일 2017-08-10 제31면   |  수정 2017-08-10

신분사회가 봉건시대의 전유물은 아니다. 겉으론 신분사회의 틀을 벗어난 듯 보이지만 현대에도 신분과 계급은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신분을 결정짓는 잣대가 더 다양해졌을 뿐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단박에 신분을 수직 상승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로스쿨이 생기기 전엔 사법시험 합격도 신분 이동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오랜 기간 고시 패스는 ‘개룡남’의 통과의례였다.

요즘은 영어로도 등급이 갈린다. 소위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다. 실제 소득·학력과 영어 구사능력은 정비례한다. 영어 문맹자는 대체로 저소득층이거나 저학력층이다. 우리나라의 한 해 영어 사교육비는 15조원에 달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연봉이 5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영어학원 심화반에서 초등학교 6년생들이 영자신문을 보며 영어로 토론하는 광경은 잉글리시 디바이드를 단적으로 웅변한다. ‘디지털 디바이드’의 골도 깊다. ‘얼리 어댑터’나 ‘디지털 네이티브’ 같은 말은 디지털 디바이드 사회를 상징적으로 노정한다.

‘미사일 디바이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모양새가 꼭 그렇다. 북한은 지난달 4일에 이어 28일에도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인 화성-14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에 대한 논란은 있을지언정 북한이 ICBM을 거의 손에 넣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게 됐다. 북한의 주장대로 ICBM이 미국 동부의 뉴욕이나 보스턴을 겨냥한다면 사정거리 1만㎞를 너끈히 넘는다.

한미미사일지침에 의해 손발이 묶여 있는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탄두 중량 1t짜리는 500㎞로 사거리가 제한돼 있고 탄두 중량 500㎏ 미사일은 800㎞를 넘지 못한다. 2012년 한미미사일지침 협상을 통해 개선된 게 이렇다. 그 전엔 사정거리가 고작 300㎞였다. 그러면서도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가관이다. 현대 군사력의 정점은 핵과 미사일이다. 궁극적으론 우리의 핵미사일이 일본은 물론 중국 전역을 사정권에 넣을 수 있어야 한다.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마저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자못 비감하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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