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계기로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를 합의하고 대북 원유 금수를 추진하는 등 다각도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 질주를 멈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들 대책이 북핵 저지에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어 결국에는 ‘전술핵 재배치론’에 힘이 실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간 한·미 양국은 북핵 대응책으로 ‘전쟁’과 ‘외교’ 두 측면에서 접근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 밤 통화에서 합의한 한국의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는 ‘전쟁 범주’에 들어간다. 미국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선제타격’ ‘예방전쟁’ 카드도 마찬가지다.
탄두 중량 제한 해제의 경우 ‘지하 깊숙이 포진한 북한의 군사시설과 북한군 지휘부 벙커까지 초토화할 수 있는 초강력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핵무기 앞에 재래식 무기는 ‘고양이 앞에 쥐’에 불과하다. ‘핵무기와 맞상대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위험천만한 현실 왜곡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北, 협상파트너 南 아닌 美 염두
文정부 ‘대화론’ 시선 끌지못해
안보리제재 통한 해결도 미지수
김정은 타격 ‘핵 보복’ 각오해야
美 ‘예방전쟁’도 수용 힘든 상황
전문가 “결단적 조치 필요” 지적
선제타격 차원에서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를 겨냥해 ‘외과수술적 타격’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차례 공격으로 북한의 반격 의도를 완전히 꺾지 못하면 대량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는 북한의 장사정포뿐 아니라 단거리 스커드미사일에 장착된 핵폭탄 공격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이라크 전쟁’ 같은 예방전쟁을 선택할 수도 있다. 북한의 보복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20만명이 넘는 미국인을 포함해 수도권 민간인을 미국 본토와 후방으로 소개(疏開)하고 3개 이상의 미 항모전단을 전개하는 등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전면전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순간 국가신용도가 급락하고 외국자본이 탈출하는 등 경제체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북한의 핵 선제공격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선 받기 힘든 카드다.
이에 반해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통과시키려는 대북 제재안은 ‘외교’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정부가 옹호하는 ‘대화론’도 같다. 성사만 된다면 평화적인 해결책이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문제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북한에 치명적인 원유 금수조치 등을 포함한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을 오는 11일 안보리 표결에 부칠 방침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일찌감치 선을 긋고 있다. 양국이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무장 폭주를 운전석 뒷좌석에 앉아 즐기고 있다는 비유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는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선 응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향후 미국 본토까지 핵탄두를 실어나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완성되면 그제서야 테이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북한이 염두에 둔 협상 파트너는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얻은 뒤에 미국과 핵 협상을 벌이겠다는 의도다.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통한 한반도 주도권 장악이 목표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정부의 대화론은 핵보유국 고지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 북한의 시선을 끌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외교와 전쟁 양 측면의 방책들이 모두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전술핵 배치론’은 제3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북핵 무력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10여 년간 6차례 핵실험을 거쳐 핵폭탄 위력을 TNT 50~70kt(킬로톤·100만㎏)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맞서 남한에 전술핵(TNT 100kt 이상)이 배치되면 비교적 단시일 내에 ‘공포의 균형’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재배치 주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처럼 미군이다. ‘남한 자체 핵개발’에 따른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과 국제사회의 제재도 피해갈 수 있다.
현재 전술핵 재배치론은 여야 정쟁에 갇혀 있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16일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당위성을 주장해왔다. 반면, 문재인정부와 여당은 “한반도 비핵화 요구를 무력화하는 조치”라며 반대하고 있다.
최근 정부 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전술핵 재배치 문제에 대해 “정부 정책과 다르지만, 북핵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견임을 전제로 ‘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술핵 필요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핵포럼 제6차 세미나에서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은 “북한에 의한 핵 독점은 남한이 북한 핵의 인질이 되었음을 의미한다”면서 “당면한 국가안보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한 사이에 ‘안정된 공포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의 결단적 조치가 필요하며, 동맹 차원에서 북핵 정책의 첫 단추는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혁식기자 kwonh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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