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빼곤 다 바꾼 40여년 전통의 식당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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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5   |  발행일 2017-09-15 제41면   |  수정 2017-09-15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한식 레스토랑 ‘산중’ 김경환
10여차례 리모델링…메뉴·분위기 쇄신
가족 빼곤 다 바꾼 40여년 전통의 식당
아버지가 물려준 무채색의 식당 ‘산중’을 유채색 곤드레밥 전문 한식레스토랑으로 변주하는 데 성공한 김경환 대표. 아래 작은 사진은 곤드레밥(왼쪽)과 산중의 전채요리인 가오리무침, 보쌈김치, 돼지수육, 곤드레장아찌.

동화사 서쪽에 있는 팔공산 케이블카로 가는 초입. 거기에 ‘곤드레밥’으로 꽤 유명한 한식 레스토랑이 있다. 바로 ‘산중(山中)’이다. 한때 등산객이 많이 찾아 ‘팔공산 산꾼식당’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이 식당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잘 모른다. 우여곡절의 산중의 변천사. 변화무쌍한 한국 외식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77년 동화사 근처에서 문을 열어 지금의 포스를 갖기까지 산중은 무려 10여 차례의 크고 작은 리모델링을 감행했다. 여든의 초대 사장 김태락씨는 95년쯤 장남 경환씨(50)한테 가업을 넘겨주었다. 아버지는 평생 ‘산꾼의 맘’으로 살았다. 15세 때 고향 영천을 떠나 동화사 자락에 정착한다. 한때 동화사 입구에서 ‘석굴암’이라는 기념품가게, 76년에는 동화사 동화천 인근에서 중국집을 차렸다. 이 식당은 이후 산중이라는 상호를 단 한식당이 된다. 그때는 산채비빔밥, 산채정식, 버섯전골, 닭백숙 등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였다. 그러나 거기가 86년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현 부지로 확장 이전하게 된다.

장남은 아버지와 마인드가 너무 달랐다. 그는 식당장사에 만족하지 못했다. 최강의 외식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일반 사업과 달리 식당업은 종합예술이 아닌가. 요리는 기본. 요리를 둘러싼 수십 가지의 변수를 동시에 핸들링할 수 있는 종합적인 마인드를 가져야만 했다. 식재료에서부터 레스토랑 인테리어, 디자인, 음악, 심지어 세제학까지 학구적으로 파고들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곧이곧대로 구식 마인드’가 맘에 들 리 없었다. 툭하면 가게를 성형수술해댔다.

1977년 아버지 김태락씨가 연 한식당
86년 동화사 인근서 케이블카 초입으로
95년 장남 경환씨 家業 이으며 대혁신
10여차례 리모델링…메뉴·분위기 쇄신
최강의 외식사업가 되려 박사과정 공부
12년前부터 곤드레밥으로 웰빙식 특화
최고 재료에 맛은 기본…세팅 미학까지
세트 메뉴와 벽면 가족 캐리커처도 매력


◆20년간 산중은 연일 리모델링 중

지난 세월, 산중은 연일 공사 중이었다. 일단 민속식당 같은 산중을 전원카페식으로 왕창 바꿔버렸다. 급기야 2014년 대공사 때 아버지는 작정한 듯 공사장에 드러누워버렸다. 20일간 공사가 중단됐다. 간판, 유니폼 등 20여 항목에 걸쳐 이미지 개선작업을 완료했다. 지난 3년5개월간은 공사가 없다. 부모는 그게 신기하면서도 늘 ‘불안’한 모양이다.

그는 스스로를 ‘식당쟁이’라 부른다. 식당이 성공하기 위해선 음식 못지않게 그 외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

“5성급 호텔 특급 조리사가 독립해서 식당을 오픈하지만 거의 망하고 떠나온 자리로 다시 가는 이유가 뭔 줄 아세요? 바로 요리만 알기 때문이죠. 예전엔 요리만 알면 그만이었는데 이젠 요리 외적인 요소가 너무 중요합니다. 어느 순간 식당이 외식업소로 변했습니다. 조리사가 경영마인드를 가진 사업가적 오너셰프로 진화해간 거죠. 저도 그 흐름을 조금 타고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맞다. 식당이 어느 규모 이상 커지게 되고 종업원 수가 폭증하게 되면 셰프는 경영자로 변신해야 된다. 자연스럽게 주방에서 나와 식당을 지휘해야 된다. ‘외식 CEO’로 격상되는 것이다. 그는 식당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근육을 거의 다 갖고 있다.

“식당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오너셰프가 자기 좋아하는 메뉴만 고집하는 ‘작품형’, 그리고 손님의 입맛 변화를 반영하는 ‘상품형’이죠. 둘 다 장단점이 있어요. 저는 전자보다 후자의 흐름을 더 중시합니다. 물론 기본은 지켜야죠. 그 기본은 바로 친절과 청결, 그리고 쾌적함입니다.”

그런데 손님의 입맛을 안다는 것, 그게 너무 어려웠다. 입맛을 안다는 건 사람을 안다는 것, 사람을 알기 위해선 세상사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그걸 요리학원이 가르쳐주는 건 아니었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 경계를 알기 위해 그는 2000년부터 경북대,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경북과학대 등 지역 네 군데 대학교의 외식최고경영자과정을 다녔고 현재는 대구가톨릭대 외식산업학과 박사과정에 몸담고 있다.

◆유채색 산중으로 변신시키기

“일단 초창기 산중은 너무 우중충했어요. 세상은 밝고 발랄하게 변해가는데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과감하게 리모델링을 시작합니다.”

판박이 관광지형 음식과 작별하기 시작한다. 메뉴 수를 팍 줄였다. 그리고 주메뉴를 버섯차돌박이, 오리훈제, 들깨수제비, 오리정식 등으로 끊임없이 바꾼다. 현재는 곤드레밥 전문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학창시절 돈만 쓰고 다니는 사고뭉치였다. 그런데 한 지인의 도움으로 외식업을 공부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엔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강사가 던진 말에 몸이 움찔했다.

‘외식도 잘만 하면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 큰 부를 쌓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식업이 사회변화에 일조할 것’이란 요지의 강의였다. 외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아버지는 일단 변화를 두려워했다. 메뉴와 시설변경은 무조건 반대였다. 그가 설득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꾸지람. 하지만 그의 고집도 아버지 이상이었다. 부자의 관계는 마주 보며 달려오는 폭주기관차 같았다. 하지만 그는 강행했다.

기존 20여 가지의 메뉴를 5가지로 팍 줄였다. 반찬도 20~30가지에서 5~6가지 정도로 줄였다.

“아버지는 ‘관광지는 다양한 메뉴를 내놔야 한다’고 고집하셨습니다. 물론 그분 나름대로 직감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직감에 도전한 거죠. 결국 제 뜻대로 되었습니다.”

급격하게 메뉴를 바꾸는 바람에 극심한 매출하락도 경험했다. 재정까지 바닥났다.

한때는 산채 전문식당이었다. 팔공산과 비슬산 자락의 산골마을 주민들이 채취한 산나물을 수집했다. 울릉도 부지깽이나물은 배로, 제주도산 나물은 비행기로 공수해 왔다. 어느날부터 산중식당은 산나물로 널리 알려진다. 90년대 후반까지 국내 TV는 물론 일본 교토신문에서도 취재해갔다.

하지만 팔공산 주변 식당은 투자 여력 부족 등으로 인해 변신을 부담스럽게 여긴다.

“아직까지는 닭, 오리, 산채비빔밥이 주력입니다. 일부업소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과감한 결단 없이 조금씩 변화 주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제가 6년 전 번영회장을 맡아 국비를 따내어 외식교육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대다수 생계형 상인들이라 동참을 이끌어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케팅 성공 포인트

산중은 한때 과도한 공사로 인해 도산 직전에 달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김 대표는 전통주 개발 등 여러 식품사업에 손을 댔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다. 회심의 일격은 ‘곤드레밥정식’이었다. 12년 전부터 곤드레밥을 냈다. 맛보다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세상을 감지한 것이다. 일단 매일 직접 만든 묵으로 ‘묵사발’을 여느 한정식 죽처럼 냈다. 판박이 밀가루전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메밀과 도토리가루를 주재료로 한 웰빙전을 전채 요리로 깔았다.

담는 모양새도 중요했다. 접시 대신 대나무접시 같은 용기에 가오리무침, 보쌈김치, 돼지수육, 곤드레장아찌를 세트로 묶었다. 담을 때도 과일처럼 봉긋하게 모양을 냈다.

“일반 한식당의 차림새를 보면 푸짐하긴 하지만 접시의 배열은 한 마디로 중구난방이죠. 저는 집중과 분산, 그리고 테이블세팅 미학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정말 먹기도 좋은 세상입니다. 덜 차리고도 더 많이 차린 밥상보다 더 주목받는 세상이 된 겁니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맛은 기본이고 비법보다는 조합, 즉 구성력이 관건인지도 모른다.

메뉴 이름도 맛있게 짰다.

도토리보쌈세트는 ‘사랑담다’, 수제비보쌈세트는 ‘아름담다’, 불주꾸미세트는 ‘불맛담다’, 패밀리메뉴는 ‘가득담다’로 작명했다. 그는 사이드 메뉴를 반찬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요리로 간주한다. 게다가 세트 메뉴에는 커피와 차를 포함시켜 식사를 마친 손님은 매장 한쪽 카페 공간에서 후식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이게 요즘 핫한 한식 레스토랑의 트렌드다.

곤드레는 강원도 정선의 조합에서 1년 단위로 계약해 받아 쓰고 있다. 특히 조리에 쓰는 물은 주방에 설치한 조리용 정수 필터로 거른 후 사용한다. 음악도 중시한다. 월 2만원을 투자해 음악 서비스 전문 웹 사이트에서 낮과 저녁, 기후별로 앤티크, 세미클래식, 뉴에이지 등 장르를 선정해 틀고 있다.

직원의 쾌적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 주방에 ‘인덕션레인지’를 설치했다. 가스로 인한 유독 물질 발생을 줄이고 주방 전체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또 직원이 서서 근무하는 포인트 위쪽 천장에 에어컨을 설치해 틀어주고 있다.

김 대표는 아버지의 맘을 헤아려 가게 입구에 태극기를 게양했고 무궁화도 많이 심었다. 아내는 회계업무쪽으로 치중하면서 주말에는 카운터를 도와준다.

솔직히 음식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다. 1층에서 2층 올라가는 계단 벽에 걸려 있는 가족의 캐리커처 액자였다. 이 액자의 울림은 크다. 업소의 이야깃거리, 즉 스토리텔링의 접목이 식당업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암시하고 있다. 동구 팔공산로 185길 55. (053)982-007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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