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원신연 감독의 ‘살인자의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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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2   |  발행일 2017-09-22 제43면   |  수정 2017-09-22
김영하(소설가) 문장에 원신연(감독)·설경구(배우)가 魂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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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 문학평론가 심진경이 그를 “2004년 한 해에만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학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예외적인 작가’”라 평할 만큼 한국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다. 그는 문학동네작가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SBS ‘힐링캠프’와 TED 메인 강연으로 문학 독자가 아닌 폭넓은 대중과 소통한 바 있는 그는 최근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유시민, 황교익, 정재승과 함께 출연해 확실한 셀러브리티가 되었다. 그는 영화와도 인연이 깊다.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를 연출한 전수일 감독이 영화로 옮겼다. 단편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과 ‘사진관 살인사건’은 배우 이은주의 유작이기도 한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 원작이었다.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은 영화(감독 노진수)뿐 아니라 연극으로 각색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 프로젝트’로 선보인 ‘소설, 영화를 만나다’는 그가 쓴 세 편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옴니버스물이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 ‘인천상륙작전’을 연출한 이재한 감독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선 각색을 맡아 제42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각색상을 수상하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2015년 펴낸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것이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소설서 가장 가깝고도 먼 작품 만들겠다”
원신연 감독 의도대로 영화적 변주 일품
같은 듯 다른, 원작소설 vs 영화의 묘미

영화와 인연 깊은 김영하 원작 기본 바탕
스턴트맨 출신 원 감독의 탁월한 연출
이름값 제대로 한 설경구 연기로 시너지



원신연 감독. 스턴트맨으로 시작해 무술감독으로 영화 이력을 시작한 그는 일찍부터 독립영화계에서는 주목받는 연출자였다. ‘적’ ‘세탁기’ ‘자장가’ 같은 인상적인 작품들로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오던 그의 출세작은 2003년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단편영화 ‘빵과 우유’다. 힘겹게 삶을 꾸려온 우리 시대 노동자의 초상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담아낸 이 영화의 시나리오도 원 감독의 솜씨였다. 2005년 배우 채민서와 함께 작업한 장편 호러물 ‘가발’로 충무로에 입성한 원 감독이 직접 쓴 ‘구타유발자들’은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작으로 당선된 바 있는 작품으로 날것의 생생함을 담은 ‘악랄한 마당극’(오정연 ‘씨네21’ 기자)으로 완성되어 2006년 개봉했다. 단순히 액션물에 능한 연출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의 면모를 선보인 작품이었지만 다소 불친절하고 불편한 전개로 흥행은 실패하고 만다. 이후 2007년 대타로 투입된 ‘세븐 데이즈’를 배우 김윤진과 함께 미드를 연상케 하는 빠른 전개가 인상적인 액션스릴러물로 만들어 기사회생한다. 2013년엔 배우 공유와 함께 작업한 ‘용의자’로 “액션도 드라마”라며 몸과 액션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세븐 데이즈’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류승완-류승범, 엄태화-엄태구와 함께 형제 영화인(배우 원풍연이 친동생이다)이기도 한 그가 올 가을 새롭게 선보인 영화가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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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자의기억법’ 포스터

배우 설경구.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한양레퍼토리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우연히 같은 과 동기 소개로 1996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에서 실종된 소녀(배우 이정현)를 찾는 ‘우리들’ 무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데뷔한다. 이후 몇몇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다 1999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말 그대로 광기 어린 연기를 선보이며 당시 “한국영화가 발견한 최고의 수확”이라는 극찬을 이끌어낸다. 이후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같은 대중영화에 어울리는 코믹연기도 펼쳤던 그는 한때 배우 송강호, 최민식과 함께 ‘충무로 3대 배우’로 통하며 흥행배우의 입지를 굳힌 바 있다. 천만 영화 ‘실미도’와 ‘해운대’는 이 시기 관객들과 굳건히 호흡하며 나온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2009년 이후로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된 작품들을 만들지 못하며 슬럼프도 길어졌다. 그러다 2016년 배우 임시완과 작업한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으로 20~30대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환호를 이끌어내며 ‘지천명 아이돌’이란 애칭이 붙을 정도로 전성기를 회복했다. 그런 그가 ‘불한당’보다 먼저 촬영을 마쳤다고 알려진 영화가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영화는 “소설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작품을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도대로 원작의 장점을 살리면서 영화적인 변주를 통해 원작과 닮아있으면서도 다른 구석이 있는 작품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했던 김영하의 원작은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과 돌발적인 유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소설이라 사실 매력적인 소재임에도 스크린에 옮기기엔 어려움이 많은 작품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 연출의 변이랄까.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곤 얘기할 수 없는 영화다. 특히 설경구는 촬영 전부터 노인 캐릭터가 되기 위해 특수분장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늙기로 결정하고 극한의 체중 감량을 했다. 극중 캐릭터가 치매로 기억을 잃을 때마다 눈을 떠는 근육 떨림까지 연기해내는 장면들은 설경구가 어떤 배우인지 잊고 있던 관객들을 단숨에 깨운다. 전작 ‘오아시스’ ‘역도산’ ‘사랑을 놓치다’ ‘공공의 적’ 같은 작품들 역시 극중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한 체중 변화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이에 맞선 배우 김남길의 사이코패스 연기도 만만찮다. 우려했던 배우 설현도 이 무시무시한 두 배우 사이에서 이 정도 연기를 선보인 것은 충분히 박수를 보낼 만했다. 이런 장점에도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안일함은 기록해두고 싶다. 특히 배우 황석정 같은 이를 이런 스테레오 타입화된 연기로 소비해 버리다니. 언제쯤이나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한국영화를 만날 수 있으려나.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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