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미스테리어스 스킨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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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4   |  발행일 2017-11-24 제42면   |  수정 2017-11-24
하나 그리고 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러닝타임 237분…인간·삶·사회를 통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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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만 59세를 일기로 타계한 에드워드 양(楊德昌)은 많은 연출작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적 감독으로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종종 최고작으로 거론되는 영화로, 그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23일 국내에 최초로 개봉되었다.

영화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1961년에 발생했던 대만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이야기의 중심에는 ‘샤오쓰’(장 첸)의 가족이 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상하이 지식인이던 샤오쓰의 부모는 아이들을 데리고 대만으로 이주한다. 공부도 잘하고 예쁜 큰누나와 독실한 기독교인인 둘째누나, 엄마의 시계를 저당 잡혀 내기 당구를 치러 다니는 형, 자주 징징대는 여동생 사이에서 야간중학교에 다니는 샤오쓰의 자리는 비좁기만 하다. 또한 춤을 추다가 서로에게 반했던 상하이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대만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인 부모와 달리 샤오쓰는 학생 갱단 조직 사이에 끼어 방황한다.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아버지 세대를 억누르는 동안 그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자신의 좌표를 찾지 못해 고독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샤오쓰를 둘러싼 많은 또래들도 마찬가지다. 빈부에 관계없이 그들은 대부분 부모와 소통하지 못한 채 그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학업이나 진로 문제보다는 오늘 벌어질 패싸움과 연애사가 그들에게는 훨씬 중요하다. 한 가족을 중심으로 주변인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면서 개인의 성장통을 묘사하고 세대차를 드러내며, 다시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연결시키는 에드워드 양 특유의 화법이 이 영화에도 잘 드러난다.


대만 뉴웨이브 거장 故 에드워드 양 연출…실화 영화
1960년대 배경 한 소년의 성장담과 대만 역사 겹쳐내



형식적으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인물과 사건을 관조하는 시선이다. 실내에서 카메라는 기둥이나 벽 뒤에 있을 때가 많고 야외에서도 대개 피사체와 몇 발짝 떨어져 있다. 말다툼이나 싸움, 음모가 벌어질 때 인물 대신 일부러 공간만 비춘다든가 사운드로만 상황을 제시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특정 인물에 감정을 이입시키기보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이러한 장치들은 때로 담담함을 넘어 냉소적으로 느껴진다. 작은누나가 교회에서 샤오쓰를 기다리는 사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살인을 웨이스트 샷으로 포착한 후 바로 뒤로 물러나 풀 샷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비극성이 극대화된다. 이 시절에 대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기억은 이렇듯 비정하고 암담하다. 그는 긍정적인 척하는 대신 솔직함을 택했다.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분위기를 돋워주었던 샤오쓰의 친구 ‘캣’(왕계찬)의 노래 테이프마저 샤오쓰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쓰레기통에 들어가면서 그들의 청소년기도 저물어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학 합격자 명단으로부터 ‘다음 세대’라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감상하는 모든 이에게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블록버스터라도 237분의 러닝타임은 영화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다. 그러나 인간과 삶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인생의 한나절 정도는 할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237분)


미스테리어스 스킨
청년이 되어…사라진 기억의 끝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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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느낌의 음악이 깔리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알록달록한 무엇인가가 화면 아래로 떨어진다. 오프닝 크레디트가 사라지고 음악의 리듬이 빨라지면서 피사체에 초점이 맞춰지면 (우유에 넣어 먹는) 시리얼이 소년의 얼굴로 떨어지고 있다. 눈을 꼭 감은 채 미소 짓고 있는 소년과 함박눈처럼 낙하하는 시리얼들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는 다른 방향에서 이 장면을 곱씹게 된다. 그 이후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의 실체가 영화 중반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관객들이 처음부터 영상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면 장면을 첫인상과 다르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미스테리어스 스킨’(감독 그렉 아라키)의 서사 전략이기도 하다.


민감한 이슈를 미학적으로 풀어낸 그렉 아라키 감독
조셉 고든 레빗의 10여년 前 앳된 모습 보는 즐거움


영화는 ‘브라이언’(브래디 코베)과 ‘닐’(조셉 고든 레빗) 두 소년의 성장기를 영화의 종반부까지 따로 보여준다. 단 한 번, 두 소년이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특별하게 묘사하면서 둘이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브라이언은 어릴 적 기억의 일부를 잃은 후 쓰러지는 일이 잦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잃어버린 5시간의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자신이 외계인들에게 납치당해서 기억상실증이 생겼다고 믿기 시작한다. 한편, 유년시절 가깝게 지내던 야구부 코치 때문에 성적 트라우마가 생긴 닐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남성들을 상대하는 일을 한다. 이렇듯 두 소년의 서로 다른 인생을 교차시키는 방식은 후반부로 갈수록 궁금증을 가중시키고 영화에 흡인력을 더한다.

청년이 된 두 인물이 기억 속 깊은 곳으로부터 공유된 경험을 꺼내 전시하는 마지막 신은 ‘자비에 돌란’의 표현처럼 ‘영화 사상 가장 슬픈 결말’일지 모르지만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충격과 흐느낌, 절망도 있지만 살을 맞댄 위로와 캐럴도 있다. 두 사람을 직부감으로 비추던 카메라는 서서히 떠오르며 그들과 멀어진다. 닐의 마지막 내레이션처럼 과거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소년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현실을 온전히 직시하게 된 브라이언과 닐은 이제 함께 있다. 그렇게 먹먹하면서도 배려가 느껴지는 마지막 장면 또한 오프닝만큼 강렬하다. 민감한 이슈를 미학적으로 풀어낸 그렉 아라키 감독의 연출력과 더불어 십수 년 전 앳된 모습의 ‘조셉 고든 레빗’을 만나는 즐거움도 쏠쏠한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05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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