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의료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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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9   |  발행일 2017-11-29 제31면   |  수정 2017-11-29
[영남시론] 의료와 인권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남측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의 건강상태를 둘러싸고 담당 주치의 이국종 교수와 정의당 김종대 의원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그 병사가 “여러 곳의 총상에다 기생충 감염에 의한 장기손상까지 있어 건강회복이 더딜 수도 있다”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대해 김종대 의원은 이 교수가 총상과 관계없는 ‘기생충 감염’이란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북한병사에게 ‘인격테러’를 자행하는 한편, 정보유출을 금지한 의료법까지 위반했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김종대 의원은 몇 해 전 DMZ에서 지뢰를 밟아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은 한국군 병사를 위해 ‘곽중사법’을 입법할 정도로 평소 병영 내 인권 문제와 군의료체계 혁신에 관심이 많은 의원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엉뚱한 곳에다 대고 삿대질을 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김종대 의원의 비판에 대해 이국종 교수는 북한병사의 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를 살리는 것”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이 교수의 발빠른 대처와 탁월한 시술 덕분에 북한병사의 건강상태는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휴전 중의 적병이기에 이곳 남쪽에는 그 어떤 보호자도 후견인도 없는 혈혈단신의 처지일 것이다. 하지만 억대가 훌쩍 넘어갈 것으로 짐작되는 진료비는 그의 부담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고, 김종대 의원의 우려와는 달리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건강뿐만 아니라 정치적 인권도 최대한 보호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사례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일반적인 사례는 결코 아니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예방가능 사망률’은 35.2%다. 세 명 중 한 명이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죽는다는 뜻이다.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의 3배가량 된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응급의료기관 평가를 보면 전국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중증환자가 대기하는 시간은 거의 12시간이 넘는다. 명성이 있고 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대기시간은 더 길어진다. 서울대병원은 무려 19시간이다. 응급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칠세라 허겁지겁 병원에 달려가 봤자 허사라는 뜻이다. 반면에 그 시간 중소병원의 응급실은 텅텅 비어있고, 견디다 못한 병원 경영진은 하나 둘 응급실을 폐쇄하는, 양극화 현상이 너무나 선명하게 벌어지고 있다.

몇 해 전 우리 지역에서 중병이랄 것도 없는 장중첩증 소아환자가 대학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즉각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당법)을 개정해 모든 응급실에 전문의들이 상주하도록 강제했다. 그 결과 법이 시행된 지 1년 만에 30%의 의료기관에서 응급실을 폐쇄했고, 대학병원 중심으로 응급환자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의료서비스를 시장경제원리에 방임해놓고 있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규제와 처벌만 남발하는 정부 정책이 빚어낸 참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응급환자를 포함한 모든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자고 하는 것은 의료를 더 이상 시장원리나 경제논리에 내맡기지 말자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특히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고 자기선택의 여지가 없는 응급환자에 대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언론 또한 슈퍼스타 한 사람 만들어내는 것으로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난맥상이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보도경향은 슈퍼스타를 향한 쏠림현상만 더 부추길 뿐이다.

환자의 인권을 앞세우기 전에 무엇보다 의료기관의 인권의식이 혁신되어야 한다. 교육을 명분으로 전공의에게 폭언·폭행을 일삼는 교수들이 대학병원에서 활개를 치고, 병원 경영진이 젊은 간호사들을 극장식 카바레의 무희로 취급하는 곳에서 인권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가당찮은 일이다. 그런 곳에다 누가 인권을 위한 예산과 정책 지원을 하라고 선뜻 나서겠는가.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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