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나라를 죽이는 입시지옥, 대학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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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1   |  발행일 2017-12-01 제22면   |  수정 2017-12-01
복잡한 입시제도는 결국
학생 줄세우기 위한 수단
4차산업혁명시대 대학은
선발제도를 단순화하고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을
[경제와 세상] 나라를 죽이는 입시지옥, 대학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또다시 입시의 계절이 왔다. 지난주 수능이 있었고 지금은 논술, 심층면접, 특별전형 등 다양한 형태의 실질적 본고사가 시행되고 있다. 입시는 1월 말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때까지 수십만 수험생과 가족들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것이다. 논술이나 심층면접을 실시하는 날은 수만 명의 지원자와 가족들이 한꺼번에 몰려 새벽부터 저녁까지 대학 주변은 교통이 마비되고 고사장에 제때 도착하지 못한 수험생들이 공포에 질려 차에서 내려 뛰는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태어나서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학생과 가족들의 피폐한 삶이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온갖 사교육이 시작되고, 중학교에 진학하면 본격적 대입 준비로 돌입하면서 정상적인 삶은 아예 없어진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잠 잘 시간도 없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입시 준비에 매달린다. 사춘기와 청소년기에 필요한 폭넓은 독서와 신체단련 등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녀교육비 부담 때문에 아예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부부들이 속출할 정도다.

만일 입시를 위한 공부가 학생들의 미래 경쟁력에 기여한다면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입시 관련 서적들을 버리는 장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 책에 담겨 있는 지혜가 더 이상 필요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배우는 정보와 지식의 대부분은 평생 더 이상 사용할 일이 없는 것들이다. 우리나라 초·중·고생들의 삶을 망치고 있는 공부의 상당 부분은 순전히 대학 입시를 위한 것들이다. 입시만을 위한 공부 때문에 우리 청소년들의 삶이 망가지고 있고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위기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입시 지옥이 지속되는 데는 수시로 바뀌는 교육부의 근시안적 정책, 기업들의 명문대생 선호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학이 가장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무수한 선발도구들을 총동원해 학생들을 줄 세운 다음 대학의 서열에 따라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차지하는 구조다. 대학들은 온갖 선발도구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기 때문에 입시제도가 너무나 복잡해서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학생들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그 복잡한 입시제도들은 결국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대학의 패배주의를 그대로 드러낸다. 우수한 학생들을 뽑았더니 졸업할 때도 여전히 우수하고 그 결과 명문대가 된다는 사고다. 그렇다면 대학의 기여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수한 학생을 뽑았더니 계속 우수하더라는 식이면 대학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수한 대학이라면 대부분이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학생들을 뽑아서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선도 대학들부터 합의해서 학생들을 정밀하게 줄 세우지 못하더라도 내신과 수능 정도만으로 느슨하게 선발해 잘 가르치는데 주력하고, 또 수능도 토플이나 미국 SAT처럼 매달 실시하면 수능 날 하루 컨디션이 나빠 일년을 재수해야 하는 것과 같은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해결책을 말하면 교육부와 대학 보직자들은 온갖 실무적 제약조건들을 늘어놓는데 그야말로 비겁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사고의 전환만 있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언론도 대학별 수능점수 공개나 어설픈 줄 세우기식 대학평가를 당장 그만둬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은 그야말로 위기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근면한 인재들을 양성해 국가 발전에 기여했던 우리 대학은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창조적이고 자율적이며 도전적인 인재를 전혀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대학이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가장 중요한 공공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적 위기다. 대학은 자기희생적으로 사회 발전을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공동체의 일원이지 결코 특권 집단이 아니다. 파행적 입시제도로 청소년들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 기존의 대학 모델은 죽고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은 학생 선발에 열을 올리기보다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대학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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