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 한국서도 뜨거웠다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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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8   |  발행일 2017-12-28 제21면   |  수정 2017-12-28
(‘나도 당했다’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국서 일어난 성폭력 고발 캠페인
올해 한국 여성계에도 큰 영향 줘
#여성의 자취방 #경찰이라니 등
해시태그 이용 공감대 형성 늘어나
20171228
‘이게 여성의 자취방이다’ 해시태그.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지난 6일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을 선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제치고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는 해시태그를 이용해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여성들이 있었다.

영화배우 앨리사 밀라노는 지난 10월 ‘당신이 성폭력 피해를 본 적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미투라고 써달라’며 성폭력 고발 캠페인을 제안했고, 1주일 만에 트위터에만 100만건이 넘는 ‘미투’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에 앞서 미국의 차량 공유업체 우버의 엔지니어였던 수전 파울러는 지난 2월 자신의 블로그에 ‘우버에서 성희롱을 당했고, 회사가 은폐하려고 했다’고 폭로했다. 이 여파로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CEO가 퇴출됐다. 이렇게 시작된 미투운동은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 정계, 언론계, 문화계로 확대됐다. 미투 운동의 여파로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났으며, 현역 최다선인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또 유명 앵커였던 찰리 로즈와 맷 라워 등이 성폭력에 연관된 혐의로 퇴직하거나 명예가 실추됐다. 타임은 미투 운동으로 최소 74명의 공인이 비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폭로와 사회적 공감 그리고 변화는 2017년 한국 여성계에도 큰 사건이었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으로 올해도 SNS 해시태그를 이용한 폭로와 공감대 형성이 잇따랐다. 미국의 미투운동과 마찬가지로 2017년 한국의 여성들도 ‘미투’를 외치며 고발하기도 했고, 공감하기도 했다.

◆#이게 여성의 자취방이다

올해 한국의 해시태그 여성운동은 여성의 생활 속 가까운 공간에서 시작됐다.‘#이게 여성의 자취방이다’가 대표적이다. 2015년 발간된 ‘자취방’이라는 사진집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등장했다. 이 운동은 여성의 방에 대한 편견을 깨자는 데서 시작해 자취방에서 겪은 무섭고 불쾌했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배달원의 음흉한 시선과 몰래카메라, 늦은 밤 귀가의 무서움 등 다양한 이야기가 공유됐으며, 또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받았다. ‘#이게 여성의 자취방이다’는 성범죄를 고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도어록 지문 지우기’ ‘창문 안전 방범클립’ 등 여성을 위한 안전 자료를 공유하는 공유의 장으로 발전하게 됐다.

◆#○○계_내_성폭력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졌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성폭력에 대한 고발도 이어졌다. 지난해 한 시인이 문단 내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폭로하자 SNS 해시태그를 통해 여성 문인 지망생들과 출판 관계자들의 성폭력 고발이 잇따랏다. ‘#문단_내_성폭력’을 이용해 그동안 침묵을 강요받았던 피해자들이 폭로를 시작한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침묵했던 피해자들도 함께 나섰다. 문단을 넘어 미술, 영화, 음악 등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가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타고 사회문제로 불거졌다. 한국판 ‘미투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 운동은 결국 가해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문단 내 성폭력 피의자로 지목된 한 시인은 위력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성희롱 혐의로 구속됐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 일부는 활동중단을 선언했다.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오히려 상처를 줬던 경찰을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난달 가정폭력·성폭력 상담 기관인 한국여성의전화가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캠페인을 제안했다. 경찰에 의해 2차 피해를 입은 사례를 고발하는 이 운동은 3일 만에 20만명이 참여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공개한 자료에서는 경찰에 의한 2차 피해의 구체적인 사례를 볼 수 있다. 가정폭력을 신고하자 ‘아빠가 화나서 그럴 수도 있지’라며 뒷짐을 지거나 강간당할 뻔한 피해자에게 ‘좋아서 그랬나보다’라고 말하며, 불법 촬영 피해자의 옷차림을 지적하는 경찰의 폭력이 담겨있다.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에 ‘경찰에 대한 가정폭력·성폭력 인식 재교육과 부적절한 대응의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변한것과_변하지않은것

여성들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해시태그 여성 운동을 스스로 되돌아보기도 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아 등장한 해시태그 ‘#변한것과_변하지않은것’을 보면 대다수 사람들은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게 됐다’를 ‘변한 것’으로 말했다. ‘변하지 않은 것’으로는 ‘여전히 나를 억울하게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세상’을 꼽았다. 이 밖에도 ‘바뀌지 않는 대중매체’ ‘여전히 위험한 여성’ 등이 나왔다. 한국판 ‘미투 운동’인 해시태그 여성운동이 많은 성과를 얻었지만 아직 높은 현실의 벽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0월 말 한국에서 발생한 한샘 성폭행 논란은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불법 촬영과 성폭행, 성폭행 미수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과 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는 점을 보면 ‘변한 것’은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과 공감대이며, 반대로 여전히 성폭력의 위험에 여성들이 놓여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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