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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연이어 개봉한 세 편의 한국영화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세 영화 모두 소재나 방식, 장르가 달라 관객들은 어느 영화를 먼저 봐야 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이들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기는 스코어를 기록하며 여전히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가히 대격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역시 관객들이 오랫동안 차기작을 기다리게 한 이들이라 이런 동반 흥행을 가능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장준환 감독의 신작을 오래 기다리지 않아 기뻤다. 관객을 열광시킬 줄 아는 스토리텔러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왔을까.
▶강철비(양우석 연출, 2017년 12월14일 개봉)
“북한 쿠데타 발생, 북한 1호가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말하는 포스터의 카피가 강렬하다. 영화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은 첫 연출작인 ‘변호인’으로 1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이미 동원한 바 있다. 당연히 차기작을 기다린 이들이 많았던 만큼 부담감도 컸으리라 짐작되는데, 이렇게 논쟁적이며 도발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만한 이야기를 상상해 내다니 놀랍다. 가히 할리우드서나 가능한 정치 스릴러의 한국형이라 부를 만하다. 영화는 웹툰 작가로 활동한 양 감독의 2011년작 ‘스틸 레인’이 원작이다. 당시 북한 김정일의 사망을 예측해 네티즌 사이에 화제를 불러 모으며 조회수 1천만을 돌파한 바 있다. 양 감독이 10여 년에 걸쳐 조사한 자료와 축적한 정치·군사적 배경지식은 놀라운 수준이다. 영화의 군사 관련 조언을 한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양욱 수석연구위원은 “영화에 북한의 현재 상황을 많이 반영했다. 군사작전이라든가 북한군의 모습, 북핵의 운용 등 디테일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리서치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우석 감독의 첩보 액션 대작 ‘강철비’
대구국립과학관 장면 등 낯익은 반가움
저승세계를 스크린에 구현 ‘신과 함께’
웹툰 원작으로 韓 최초 2부작 제작 눈길
목숨 걸고 진실을 알린 사람들의 ‘1987’
촛불혁명 경험한 관객들에 남다른 울림
소재·방식·장르 각기 다른 매력 어필
중형영화 全無·女캐릭터 부재는 아쉬워
대구 관객들에겐 대구국립과학관이 주요 촬영지 가운데 하나로 나오는 장면이 반가웠을지 모르겠다. 개성공단 장소는 실제로 대한민국 기업들이 지은 공간이라 한국의 공장지대와 비슷할 것이라 예상한 제작진의 선택이었다. 양 감독의 전작 ‘변호인’의 <주>NEW가 배급했다.
▶신과 함께: 죄와 벌(김용화 연출, 12월20일 개봉)
인간은 누구나 이승에서 살다 죽으면 저승에서 각기 다른 지옥을 경험한다는 한국적 사후 세계관을 기초로 사후 49일 동안 7번의 지옥 재판을 무사히 거쳐야 환생할 수 있다는 게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의 핵심 설정이다. 영화는 판타지물이 마땅히 지녀야 할 시각적 쾌감에 용서와 효라는 지극히 근원적인 정서를 더해 관객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김용화 감독은 전작인 ‘오! 브라더스’ ‘미녀는 과로워’ ‘국가대표’ ‘미스터 고’를 통해 이미 이런 ‘가족’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변주해왔으며, 흥행은 다소 아쉬웠지만 ‘미스터 고’를 통해 시각특수효과(VFX)를 충분히 활용한 바 있다. 허영만 작가의 ‘제7구단’을 원작으로 제작한 ‘미스터 고’를 통해 이미 만화를 영화로 옮겨온 전례까지 있으니 이만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겠다. 네티즌 사이에선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최고의 웹툰’으로 꼽혔던 원작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의 대표작으로 연재 당시 내내 조회수 1위를 기록하고, 이후 단행본으로 발간되었을 때는 45만 권 이상이 판매된 바 있어 영화화될 거란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지옥을 묘사한 시각적 효과에 대한 기대치나 유독 판타지보다 리얼리티 장르를 선호하는 관객들의 기호가 고민이었다. 전작 ‘미스터 고’가 보여준 시각적 성취에 비해 다소 아쉬운 드라마에 대한 지적은 이번엔 감정을 끝까지 밀고 가는 제작진의 뚝심으로 관객들과 소통한다.
한국영화로는 이례적으로 2부작으로 나뉘어 제작되었는데 후편은 올 여름 개봉한다. 지난해 ‘청년경찰’과 ‘아이 캔 스피크’를 흥행시킨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했다.
▶1987(장준환 연출, 12월27일 개봉)
1987년 1월14일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며 시위하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조사받던 22세 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 사망한다. 이 무고한 젊은이의 죽음을 접한 이들이 모두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충실했던 이들의 행동이 연쇄적으로 사슬처럼 맞물리면서 그해 6월 거대한 파동을 만들어냈다.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주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는 박 처장(김윤석) 외에는 중심인물이 계속적으로 바뀐다. 마치 계주 같다. 그렇게 기꺼이 몸을 날리는 이들이 모여 6월10일 민주항쟁이라는 큰 자장이 완성되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진폭이 크다. 영화가 개봉한 2017년은 6월 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촛불 혁명’을 경험한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며 공명한 크기도 남달랐을 것이다. 충분히 캐릭터들을 궁지에 몰아 잔혹하게 묘사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장준환 감독의 성정도 좋았다. 충분히 다른 영화에서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배우들이 작은 배역도 마다하지 않고 나온 것은 이 영화가 가진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군함도’와 ‘남한산성’을 배급한 CJ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했다.
어느 영화를 선택해도 관객들은 후회하지 않을 완성도와 재미를 가진 작품들임이 틀림없다. 모두 한국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작품이다. 다만 그럼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이런 훌륭한 영화들이 관객을 만나고 있음에도 한국영화계는 여전히 위기라는 점이다. 까닭은 상당수의 관객을 불러 모으지 않으면 안 되는 대형영화와 그렇지 않은 소형영화만 존재하고 중형 영화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머리와 꼬리만 있고 허리는 없는 모양새다. 건강하지 못하다. 그리고 여전한 여성 캐릭터의 부재다. 이 세 작품에서도 ‘신과 함께: 죄와 벌’의 배우 김향기나 ‘1987’의 배우 김태리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마저도 주요 캐릭터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비중이 크지 않다. 새해 영화를 제작하거나 배급을 앞둔 이들이 여러 각도로 고민을 해봤으면 싶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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