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에게 듣는다] 척추경막외내시경

  •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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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9 08:09  |  수정 2018-01-09 08:10  |  발행일 2018-01-09 제22면
척추경막외내시경, 국소 마취로 디스크·척추관협착증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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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경막외내시경을 이용한 시술은 척추 수술과 달리 전신 마취나 부위 마취가 전혀 필요 없이 국소 마취만으로 가능해 마취에 의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박준모 교수가 진료하고 있는 모습.

“뿌연 세상.”

안경을 끼고 계신 분은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을 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비 오는 날 안경을 끼고 버스를 타면 갑자기 눈 앞에 무슨 커튼이 쳐진 것처럼 뿌옇게 앞이 안 보이게 되는 일, 참 당황스럽고 짜증나는 일이다.

척추와 관련된 여러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과 기구들이 개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많은 기술과 기구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척추 관련 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의 수가 줄었다는 보고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척추경막외내시경이라는 기구가 처음으로 소개됐다.


터진 디스크 레이저로 줄이거나 좁아진 척추관 확대
수술치료와 달리 병변 외 정상조직에 손상 거의 없어
시술 후 일상생활 빠르게 복귀…흔적도 안 남아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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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박준모 교수

당시 척추경막외내시경이 처음 소개됐다는 말을 듣고 척추와 관절 치료를 주로 하고 있는 필자는 기대가 컸다. 사실 CT나 MRI처럼 고가의 검사를 하고도 진단을 정확하게 할 수 없는 척추 질환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척추 신경이 지나다니는 척추관 내부와 척추 신경 주위를 직접 보고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가 나왔다는 소식은 정말 나를 흥분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10여 년 전 전 세계에서 척추경막외내시경 시술 경험이 가장 많은 미국의 유명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척추경막외내시경으로 시연을 하는 것을 직접 봤을 때 무척이나 실망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비 오는 날 안경을 끼고 버스를 탄 것만큼이나 작고 뿌연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솔직히 어느 것이 신경이고 어느 것이 터진 디스크인지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속으로는 “유명하다지만 저분은 진짜 본인 말처럼 저 화면을 통해 척추 내부의 구조물들을 다 알아보고 시술을 하고 있는 걸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필자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믿고 그 뒤로 쭉 척추경막외내시경 시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시술을 해 왔다.

많은 분야에 엄청난 발전들이 있었던 것처럼 척추경막외내시경과 관련해서도 엄청나다고 할 만한 발전들이 그동안 있었다. 우선 첫째는 내시경의 발전이다. 훨씬 작고 가는 내시경이 더 밝고 선명한 화면을 제공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는 척추경막외내시경에 레이저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척추경막외내시경을 이용한 시술을 할 때 눈으로 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고 큰 화면에 레이저를 이용해 터진 디스크를 줄여주거나 좁아진 척추관을 넓혀줄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척추 치료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할 수 있는 셈이다.

최근 환자의 의식 수준 향상으로 수술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도 가능한 최소 침습적인 방법을 사용해 수술 받기를 원할뿐더러 이제는 비수술적인 치료로 자신의 병을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실 필자가 국내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척추경막외내시경을 배워 시술을 할 때만 해도 확신을 가지고 시술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시경의 발전과 레이저의 결합으로 인해 척추경막외내시경을 이용해 시술을 하는 것이 터진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는 수술적 치료와 크게 차이가 없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 드릴 수 있다.

척추경막외내시경을 이용한 시술은 척추 수술과 달리 전신 마취나 부위 마취가 전혀 필요 없이 국소 마취만으로 시술이 가능해 마취에 의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병변 부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몸의 정상적 조직에 손상을 줄 수밖에 없는 수술적 치료와는 달리 척추경막외내시경을 이용한 시술 방법은 병변과 관련이 없는 정상조직들에는 거의 아무런 손상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꼬리뼈 쪽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내고 척추경막외내시경을 삽입해 치료하는 시술이어서 굳이 장기간 입원할 필요가 없고, 시술 이후에도 무리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로의 빠른 복귀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몸에 전혀 시술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상으로 최근 들어 엄청난 발전을 한 척추경막외내시경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드렸다. 급격한 의료 기술의 발전과 많은 환자들의 요구에 따른 척추경막외내시경을 이용한 시술과 같은 이런 비수술적 치료 방법의 발달은 시대의 흐름이자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장래에는 또 어떤 새로운 비수술적 치료 방법이 개발돼 많은 환자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유명한 비틀스의 노래 제목 ‘Let it be’처럼 우리 몸에 가급적 손을 덜 대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언제나 진리일 것이라는 점이다.

정리=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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