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의 별난집 별난맛] 아귀요리 잘하는 집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2-02   |  발행일 2018-02-02 제40면   |  수정 2018-02-02
아귀 7味…“등지느러미·이빨·쓸개 빼곤 다 먹는다”
20180202
꽃잔디식당의 아귀찜.
20180202
다복식당의 아귀수육.
20180202
영덕횟집의 매운 스타일 아귀탕.

못생겨서 미안하다는 아귀. 툭 불거진 눈알, 가마솥 뚜껑 같은 대가리, 몸의 절반인 몸통에 바로 붙은 입, 산더미만큼 큰 배….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럽고 지지리도 못난 생선이다. 겨울이 제철인 아귀. 예전엔 어부가 잡자마자 재수없다며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래서 ‘물텀벙’으로도 불렸다. 부드러운 살점 못지않게 묘한 식감을 주는 쫄깃한 지느러미가 인상적인 아귀. 영양과 맛이 풍부하다. 한때 어물전 좌판 제일 뒷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귀가 요즘에는 앞줄에 자리를 잡고 있을 정도로 제법 비싼 고급 생선으로 신분 상승했다. ‘어생역전(魚生逆轉)’이 된 셈이다. 서양에서는 아귀소금구이가 바닷가재보다 더 비싸게 대접받는다. 아귀는 우리나라의 서해 남부~남해~동해 남부에 걸쳐 폭넓게 많이 잡힌다.

요리로서 아귀는 6·25전쟁 후 인천항 부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저렴한 생선이었고 얼큰한 탕으로 끓여 노동자들의 막걸리 안주로 사랑받았다. 1980년대부터 다른 지역까지도 소문이 나 인천에서는 물텀벙 거리가 조성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1970년대부터 식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한 마산의 아귀찜.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철 이외에는 생아귀를 쓰질 않는다. 겨울철 찬바람에 고들고들 말린 건아귀로 찜요리를 만든다. 된장으로 간을 해서 비린내를 없애고 토속적인 맛을 강조한다. 또한 전분을 넣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오랜기간 어물전서 환영 못받던 생김새
6·25 후 인천항 인근서 요리로 태어나
70년대부터 ‘마산 아귀찜’ 식문화 형성

부위별 맛 퍼즐 맞추듯 먹는 재미 쏠쏠
간은 푸아그라와 비교되는 절정의 맛
찜·수육·탕·튀김 등 조리법 따라 별미


아귀는 등지느러미와 입속에 박힌 이빨, 그리고 쓸개 이외에는 버릴 게 없다. 살점·껍질·간 등 7개 부위별로 각기 다른 맛을 낸다. 보들보들한 살은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맛이다. 껍질은 밋밋한 것 같지만 찐득한 맛이 있다. 특히 잇몸 주변 껍질 부위는 찰기 때문에 유달리 탄력이 있다. 볼테기살은 뼈째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느러미 맛은 쫀득하다. 아가미에 뼈째 붙은 살은 매끈한 질감이다. 난소는 차지고 약간의 단맛이 감돈다. 위 주머니인 배포는 질겅질겅 씹힌다. 모양이나 씹는 느낌이 소막창과 흡사하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맛의 절정은 간에서 만나게 된다. 탱탱한 듯하지만 입안에서 퍼지는 순간 맑은 물에 먹물 번지듯 흐른다. 부드럽고 고소하다. 거위 간인 푸아그라와 비교되기도 한다.

일본사람의 아귀 사랑은 유별나다. ‘서쪽은 복어 동쪽은 아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관동지방, 특히 이바라키현에서는 더 귀한 생선으로 대접받는다. ‘동짓달 아귀는 그림을 그려서도 맛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겨울철 최고음식으로 평가받는다.

아귀요리는 맑은탕, 매운탕, 찜, 수육, 튀김, 불갈비, 불고기, 해물볶음, 포 등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 제맛인 아귀. 부위별 맛을 퍼즐 조각 맞추듯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역에도 숨은 아귀요리 맛집이 여럿 있다.

▶꽃잔디식당(아귀찜)(053-585-3368)

서로 다른 맛을 보이는 아귀의 여러 부위들이 콩나물과 매콤한 양념에 촉촉하게 범벅되어 있다. 양념과 큼직하게 썬 고기가 서로 겉돌지 않는다. 매콤하면서 달콤한 맛이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중독성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야 될 정도의 매운맛은 아니다. 질깃하기도 하고 쫀득하게 씹히는 아귀. 콩나물을 씹을 때 아삭아삭한 소리에 톡톡 터지는 미더덕 맛도 함께 어우러진다.

아귀찜은 지역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그 조리법이 다르다. 당연히 맛도 다를 수밖에. 이 집은 아귀찜 요리 하나밖에 없다. 콩나물이 잔뜩 들어간 콩나물찜이 아니고 다양한 부위의 아귀가 제법 풍성하게 들어가는 아귀찜 스타일이다.

매콤하고 쫄깃한 맛의 비법은? 요리과정에서 재료를 넣는 순서와 숙성된 양념의 배합기술에 적절히 불을 조절하는 방법에 있다고 한다. 콩나물향이 강하지 않도록 ‘거두절미’한 것만 쓴다. 좋은 고춧가루로 요리해서인지 그 매콤함은 착하고 순하다. 밑반찬도 인상적이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 샐러드와 즉석에서 구운 따뜻한 부추전이 먼저 차려진다. 입구에 ‘아내에게 바치는 아귀찜’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인 이 집. 도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주변 환경이 공원 같은 느낌을 들게 하며 실내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카페 같은 분위기다. 마무리 식사는 바지락칼국수나 나물·땅콩·호박·버섯 등을 넣고 백철솥에 지은 즉석밥 중에 선택하면 된다. 대구 달성군 다사읍 달구벌대로 750.

▶다복식당(아귀수육)(053-644-7543)

씹으면 씹을수록 달고 감칠맛이 느껴진다. 부드럽게 녹아들어 혀에 고소함이 엉긴다. 살이 차지고 약간의 단맛도 있다. 무게는 가장 맛있다고 하는 3~5㎏ 정도. 아귀는 동해에서 잡힌 놈이다. 수족관에 살아 있는 아귀로 수육을 낸다. 활 아귀가 없으면 그날 장사는 끝. 불판 위에 올려진 내열 도자기 접시에 머리, 꼬리, 날개, 몸통, 배포, 간 등 아귀 한 마리가 모두 해체돼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배포도 제법 크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아귀의 애(간)도 어른 손바닥만 하다. 흐물흐물할 것 같은 껍질은 쫀득한 맛이다. 아귀의 뽀얀 속살은 부드럽고 달달하다. 간혹 떠먹는 국물은 애가 녹아 스며들어서인지 고소하고 짭짤하다. 뒷맛이 칼칼하기도 하다.

아귀 본연의 맛에 충실하기 위해 채소는 콩나물, 팽이버섯, 미나리 등을 조금밖에 넣질 않는다. 별도의 뚝배기에 담아내는 맛국물을 보충해가면서 수육을 먹는다. 이 집 맛의 절정은 아귀를 다 건져먹고 남은 국물에 추가 국물과 아껴 두었던 간도 조금 넣고 특별할 것이라고는 없는 밥을 넣고 푹 끓여 내는 죽이다. 아귀와 채소에서 우러난 국물 맛, 거기에 탱탱하게 밥알이 살아 있는 쌀밥의 어우러짐. 그 황홀한 맛을 못 잊는 단골이 겨울이면 줄을 잇는다. 대구 달서구 월배로 38길 12.

▶영덕횟집(아귀매운탕)(053-745-4752)

직장인들이 점심 메뉴로 많이 찾는 아귀매운탕. 이 집의 주메뉴다. 주방에서 끓여 1인분씩 담아낸다. 먼저 콩나물을 건져 집에서 담근 고추장에 참기름 한 방울 넣고 밥 반공기 정도를 비벼먹는다. 고추장으로 비빈 밥의 빛깔이 곱다. 짜지도 마냥 맵지도 않은 부드러운 맛이다.

아귀매운탕은 주문을 받는 즉시 수족관에 살아 있는 아귀를 잡아내 해체 작업을 시작한다. 탕도 질감 유지를 위해 오래 끓이지 않는다. 살짝 익을 정도로만 끓인다. 너무 오래 끓이면 살이 부서지고 맛도 떨어진다. 고춧가루만 넣어서인지 지나치게 맵지 않다. 그냥 칼칼한 맛이다.

아귀 자체의 맛에 충실하기 위해 별도의 육수를 내는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 두툼하게 장만한 아귀. 그 자체에서 우러나는 구수하고 짭조름한 육즙이 천연조미료 구실을 한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한 부드러움이 있다.

매운탕 한 그릇에 7가지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아귀의 여러 부위가 고스란히 들어차 있다. 음식의 맛은 같은 재료라도 신선도와 솜씨에 따라 달라진다. 고춧가루와 쌀은 주인 고향인 영덕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것만 쓴다.

매일 새벽 감포 등 동해로 가서 직접 아귀를 구입해 온다. 활 아귀만 쓰기 때문에 저녁이 되기 전에 아귀가 동이 나는 경우가 잦다. 그럼 아귀탕은 맛볼 수가 없다. 맑은탕 또한 살코기가 푸짐하다. 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아귀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집은 자연산 회와 아귀수육도 입소문이 꽤 나있다. 대구 수성구 국채보상로 162길 44.

음식칼럼니스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