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마산 임항선 그린웨이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36면   |  수정 2018-03-09
철길따라 들어선 시장…상인들과 ‘同苦同樂’
20180309
20180309
철길시장. 철길은 가판대며, 물품 보관소며, 할머니들의 의자다(위). 철길시장의 끝머리인 회원천. 천변에 천막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20180309
북마산역. 옛 역사 자리에 새로 지은 것으로 마산 철도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20180309
마산 가도교 위 옛 철길이 보존되어 있다.

철길은 마산역에서 마산항 제1부두까지 이어져 있었다. 항구에 부려진 짐들을 곧바로 기차에 실어 재빨리 운송하는 것, 그것이 그 철길의 임무였다. 마산의 속살을 파고들어 역과 바다를 이은 8.6㎞의 철도 임항선(臨港線). 영어로 ‘Boat-Train Line’이라 명료하게 표기되는 이 철길은 더 이상 배와 기차를 잇지 않는다. 기찻길은 이제 사람의 길이다. 소나무와 주목, 왕벚나무와 애기동백, 사철, 코스모스, 원추리 등이 녹슨 레일을 따라 늘어선 푸른 길이다. 낮은 담벼락과 낮은 창을 스치고, 고층 아파트 아래를 지나고, 도로와 하천을 건너 천천히 달리는 그것은 마산 역사의 역로이기도 했다.

1905년 개통, 배와 기차 잇던 임항선
폐선 후 철길 안쪽 메워 산책로 조성
레일 바깥쪽으로 침목 드문드문 남아

철길 주변으로 사람 몰리며 시장 형성
철길은 가판대며 할머니 의자로 활용

아파트 아래 뻗어나가 닿은 북마산역
옛역사 자리에 대합실…철도 역사 전시
日 기마대 마구간 자리 회원동 판자촌
철길 구간 구간마다 지난 시간들 정차


◆ 임항선 그린웨이

마산역에서 삼호천을 건너 남쪽으로 향하는 임항선 철길은 철거되었다. 그래서 철길은 석전동 석전네거리 개나리아파트 앞에서부터 문득 시작된다. 철길 안쪽은 시멘트로 메운 평평한 산책로다. 레일 바깥쪽으로 낡은 침목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네거리 고가교에서 역 쪽을 돌아본다. 도로는 넓고 건물들은 높다.

고가교를 건너면 회원동이다. 풍경이 달라진다. 철길 옆으로 낮은 집들이 바짝 다가와 있다. 작은 창들이 이어진다. 창들은 눈높이보다 낮고 때로는 무릎보다도 낮아 정강이에 닿아 있다. 철창을 덧댄 창들이 많다. 작은 방 한 칸에 쪽문 하나를 둔 집은 산책로가 마당이다. 철길로 향해 난 문들과 문 앞의 화분들, 철길 옆 담벼락에 널린 이불이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임항선은 1905년 개통하여 80년대까지만 해도 마산항 부두에서 화물을 실어 나르던 노선이었다. 폐선이 된 것은 2011년 혹은 2012년으로 기록이 여러 가지다. 이후 철길에는 잡초만이 무성했다. 옛 마산시 시절인 2009년, 폐선을 산책로로 만들자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2010년 마산이 창원에 통합되었지만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철길에 쇄석 등을 깔아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조성했고 철길 양쪽에는 나무와 꽃을 심었다. 그리고 2015년 개나리아파트에서 옛 마산세관까지 4.6㎞ 철길이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임항선 그린웨이다.

◆ 철길시장

낮은 지붕들 너머 키 큰 건물의 등허리가 보인다. 지붕 위 수건과 내복 따위가 널린 빨랫줄도 흔하다. 오래된 상가 건물과 가림막을 세운 공사장을 지난다. 장바구니 수레를 끄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그러자 곧 철길이 시장 안을 파고든다. 마산 철길시장이다. 시장은 철길 따라 길게 들어서 있다. 생선, 채소, 과일, 떡, 육류 등 없는 게 없다. 철길은 가판대고, 물품 보관소며, 할머니들의 의자다. 낡은 탁자와 의자가 턱 하니 철길 위에 앉아있기도 한다.

철길시장은 70년대 후반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 회원동은 마산에서 유명한 판자촌이었다. 철길에는 많은 사람이 지나다녔다. 젊은 새댁은 아기를 업고 다라이를 이고 사람 많은 철길로 나가 물고기 몇 마리를 팔았다. 그렇게 시장은 시작되었다. 근처에 북마산시장이 있지만 시장 사람들이 난전 장사꾼을 몰아내면서 되레 시장 안은 썰렁해졌고, 오히려 철길을 따라 선 난전장이 더 커졌다. 기차가 올 때면 호루라기 신호에 맞춰 노점상들이 물건을 싹 치우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시장의 끝머리에 회원천이 흐른다. 천변을 따라 천막 노점들이 줄지어 있다. 생각보다 큰 시장이다. 지금은 철길시장 상인이 300명 가까이 된다. 철길 아래 굴다리는 회원동 주민과 상인들의 주요 통로다. 이곳을 통과해 학교를 다니고, 시집을 오고, 장례 행렬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지금도 굴다리 기둥에는 전·월세 전단 등 온갖 동네 정보가 가득 붙어 있다. 철길시장은 앞날을 알 수 없단다. 재개발이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 그들도 모른다. 그래도 주민들과 지역 단체는 철길시장 옆에 천일홍과 금잔화, 깨꽃을 심었다.

◆ 회원동 재개발지역

철길시장을 지나면 철길은 잠시 고층아파트 아래를 쭉 뻗어 나가 북마산역에 닿는다. 옛 역사 자리에 기차 대합실 모양으로 새로 지은 건물이다. 내부에는 마산의 철도 역사가 전시되어 있고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계신다. 주변에는 공중화장실과 운동기구들도 갖춰져 있다. 북마산역을 지나면 완벽하게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회원동 재개발 지역 철거 현장이다. 회원동 판자촌으로 불렸던 곳, 최근까지도 공용 화장실이 있던 동네다. 마을은 조선시대부터 ‘회원리’였고 일대는 모두 논이었다.

동네사람들은 ‘회원동 500번지’라는 명칭으로 기억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기마대 마구간이 있던 자리다. 광복 후 마구간은 사람들의 집이 되었다. 벽만 있고 천장은 높았다. 사람들은 가마니나 함석 같은 것을 가져다 바둑판처럼 한 칸 한 칸 나누어 가구를 구분했다. 그렇게 줄지은 모습이 하모니카를 닮아 하모니카촌이라 불렀다. 60년대에 들어 마산에는 한일합섬, 한국철강, 수출자유지역 등이 들어선다. 일자리가 넘쳐났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회원동 500번지 주변 판자촌에는 빈집이 없었다. 70년대를 지나며 마산 시내에는 논밭이 거의 사라졌다. 그 시기에 생긴 것이 철길시장이었다. 이제 회원동 판자촌 혹은 하모니카촌은 사라지고 있다.

◆ 마산 가도교에서

회원동 지나 성호동으로 들어서며 군데군데 우뚝 솟은 목욕탕 높은 굴뚝을 본다. 물 좋은 마산의 상징이다. 성호동 구간은 철길 양쪽으로 대부분 축대가 이어져 아늑하고 고요하다. 벽화들과 철도 역무원 조형물도 만난다. 성호초등학교 벽면의 그림 타일도 정겹다. 추산 정수장 안내판을 보며 어느새 추산동으로 넘어온 것을 알게 된다. 허물어져 가벽만 남은 건물과 옛 영화 포스터로 장식된 옹벽을 지난다.

곧 큰 도로를 가로지르는 마산 가도교가 나타난다. 가도교 위에 옛 철길이 보존되어 있다. 가도교 아래로 고려 말 충렬왕 때의 우물로 추정되는 몽고정(蒙古井) 지붕이 내려다보인다. 그 맞은편에는 ‘3·15의거 기념탑’이 서있다. 60년 3월15일 이른바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를 기념하는 탑이다. 그날도 기차는 달렸을까. 옛 마산세관이 가까워질수록 작은 창은 사라진다. 대신 양쪽에는 고층 아파트가 하늘 높이 서있다. 임항선 그린웨이는 구간 구간마다 다른 삶을 보여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철길의 구간 구간마다 마산의 지난 시간이 정차해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마산 임항선 그린웨이는 회귀하는 코스가 아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 마산역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을 것 같다. 마산역을 나와 서쪽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개나리 아파트가 보인다. 마산역 앞 큰 도로에서 서쪽으로 가 석전네거리 쪽으로 올라가도 괜찮다. 옛 마산세관까지는 4.6㎞, 편도 2시간 가까이 걸린다. 마산합포구청에서 가까운 마산 어시장을 들러도 좋겠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