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층민의 궐기’ 동학농민운동은 촛불집회의 시초였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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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4   |  발행일 2018-03-24 제16면   |  수정 2018-03-24
위대한 봄을 만났다
‘기층민의 궐기’ 동학농민운동은 촛불집회의 시초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16차 대구 시국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 전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레드카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저자는 “나는 지난 촛불문화제를 바라보면서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라고 느끼며 감격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남일보 DB>

평생에 걸쳐 동학을 연구한 역사학자
촛불시위에서 느낀 민중시위의 기록
女 인권유린 사례·日교과서 왜곡 등
韓역사 발자취 담은 역사기행 보고서

1960년 4월19일, 부정부패와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민들이 서울 경무대 앞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들은 이들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았다. 시위대에 있었던 한 문학청년은 민족운동과 민중항쟁을 연구하고 이를 쉽게 풀어 대중에게 알리는 재야 사학자가 되었다. 나이 쉰이 넘은 1987년 6월에도 거리에 나와 전경들에게 “할아버지는 빨리 들어가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 문학청년은 어느덧 여든이 넘었고,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 책은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촛불 거리에서 느낀 역사학자 이이화의 가슴 벅찬 감격과 감회의 기록이다. 그리고 민중의 변혁운동 및 인권운동의 역사, 겨레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역사기행 보고서다.

책 제목 ‘위대한 봄을 만났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시작해 대통령 탄핵으로 마무리된, 2017년 봄에 이뤄진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촛불 시위 현장의 한복판에 서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거리의 풍경을 원로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담아내면서도, 근현대사 속에서의 광화문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촛불을 들고 나선 원로 역사학자의 눈에 비친 평화적 시위현장은 19세기 말 러시아에 이권을 팔아먹은 비자주적 외교에 성난 시민들이 서울역과 남대문을 지나 황제가 있는 경운궁 대한문으로 몰려가 장작불을 피워놓고 밤새 시위를 벌였던 만민공동회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기층민의 궐기’ 동학농민운동은 촛불집회의 시초였다
이이화 지음/ 교유서가/ 500쪽/ 2만원

“시민들이 돈을 모아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주위에서 장사를 하던 군밤 장수들도 돈을 모으기 위해 나섰다. 북촌에 사는 찬양회 여성들은 주먹밥을 날랐으며, 부녀자들은 김밥을 싸거나 물통을 들고 나와 나눠주었다. … 조정에서는 보부상 패거리를 모아 황국협회라는 이름으로 어용단체를 조직했다. 황국협회에 소속된 보부상 패거리는 권총과 몽둥이를 들고 나와 광화문 만민공동회 집회를 습격했다.”

2017년 촛불 집회에 대한 맞불로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종종 양쪽이 충돌을 빚기도 했다. 태극기 집회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는 보도 내용을 보면 같은 장소에서의 집회가 한 세기 전과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동학농민혁명에 관해 평생에 걸쳐 연구한 학자다. 제2부 ‘한국 휴머니즘의 좌절과 희망’ 첫 장에 나오는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동학농민혁명이 역적의 무리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재해석·재평가 작업을 해왔다. 저자가 찾은 답은 ‘기층민의 변혁운동’이라는 것이다. 동학은 한국 역사에서 민중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대된 첫 사례이자 신분제도 철폐, 독점적 토지제도 혁파, 비리 척결과 이권을 앗아가는 외세의 배격이었다. 비록 일제에 의해 좌절한 역사지만 불의에 맞서는 저항정신이고 민의를 표출하는 민주주의 정신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과 4·19혁명, 6월 민주항쟁과 2017년 촛불시민혁명의 시발이자 실마리의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한다.

소수자의 인권, 전쟁에서의 양민학살 등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제3장 ‘한국 인권의 역사’는 그러한 바탕 위에서 썼다. 저자는 가부장제 아래에서 씌워진 여성의 굴레를 신라 초기부터 행해진 순장, 유교 윤리에서 비롯된 삼종지도·칠거지악과 열녀에 대한 강요, ‘화냥년’ 등이 우리의 역사에서 벌어진 대표적 여성 인권 유린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이 밖에도 ‘겨레의 발자취를 찾아’ 국내 각지는 물론 중국·연해주·시베리아를 샅샅이 뒤지고 다닌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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