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세이보리’ 김홍욱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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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0   |  발행일 2018-04-20 제41면   |  수정 2018-04-20
비프스테이크·랍스터파스타 ‘가성비 갑’…손님 60%가 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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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애버딘 앵거스 초이스급 갈비살로 만든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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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코 등심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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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터파스타

최근 경북대병원 동문 근처에 캐주얼 레스토랑 하나가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세이보리(Savory)’이다. 서른을 앞둔 김홍욱 오너셰프. 그는 서울에서 손발이 잘 맞던 김승규 셰프, 그리고 채용한 편창준·윤동일 셰프와 전투 진용을 짰다. 현재 손님군은 500여명, 이 중 60%가 단골이다. 손님이 늘어나자 주방도 2층으로 올렸다. 1층에 주방을 갖추면 매캐한 연기가 식사를 방해할 것 같았다. 그는 프랑스요리를 중심으로 음식을 굴려왔고 거기에 한식은 물론 이탈리아·일본·미국풍의 요리 라인까지 시의적절하게 포개왔다. 퓨전이면서 가격 부담이 없는 캐주얼 스타일. 문을 연 지 채 1년이 안 됐지만 얼마 전부터 대기하는 손님까지 생겨났다. 홍보한 것도 아니다. 그냥 단골이 입소문을 내줬다. 중년과 신세대가 함께 단골이다. 커피도 로스팅하우스급이다. 일손이 너무 없어 식전빵 정도만 아웃소싱했다. 그는 요리를 잘하는 것 이상으로 가장 이상적인 가격, 그리고 식재료 확보에 대한 안목, 적절한 식재료 리스트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 오너셰프는 요리와 함께 식당경영에 달통한 경영자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념해야 될 사안 하나. 요리 잘하는 근육만 갖고 있으면 곤란하다. 음식 외적 요인이 경영에 너무 많은 영향을 주는 세상, 결국 파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리학과에 입문할 때만 해도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호텔·유학 거치며 새로운 음식 탐험
세계기능올림픽 사슴스테이크 우수상

맛좋은, 향긋한, 즐거운 뜻담아 오픈
저렴하면서 고퀄리티 메뉴라인 개발

국내산 고집보다 스페인·美 고기 선택
한우 못지않은 질감·적당한 가격 절충
시행착오 거친 오곡깨드레싱 샐러드
伊보다 농밀하고 진한 랍스터파스타


◆우연하게 시작된 요리인생

요리를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다. 고교시절 진로에 대한 부담감이 과중했다. 부진한 성적 때문이다. 누나가 개입했다. “너 먹는 거 좋아하니깐 요리 배워봐라”고 권유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요리를 시작하게 된다.

대학 조리학과 인연도 소중했지만 지역에 있는 세화요리학원(원장 박성숙)과의 인연은 결정적이었다. 이후 자릴 잡기까지 무려 10개의 요리대회에 출전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기능올림픽대회. 모두 33개국이 참여했다. 그는 우수상을 받았다. 이 대회에 출전했을 때 요리 주제는 ‘Game meat’. 이는 사냥 등을 통해 얻는 꿩, 토끼, 사슴 등을 이용한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요리할 사냥육은 사슴이었다. 2주 전 그걸 알았다. 한국에서는 사슴고기를 구하기 어렵다는 걸. 그래서 무척 애를 태웠다. 문제는 사슴스테이크의 냄새가 짙다는 것. 초콜릿소스를 가미했다.

졸업 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입사했다. 호텔 내 여러 레스토랑을 옮겨 다니면서 기본기를 다져나갔다.

“요리사로서의 정체성 찾기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인으로 양식을 요리하지만 과연 양식이 주식인 서양에서는 어떻게 음식을 하는지 그게 늘 궁금했습니다.”

새로운 음식을 탐험하고 싶은 생각 때문에 제대 후 캐나다로 1년간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한국인이든 서양인이든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은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캐나다에 있을 때 ‘Forage’라는 식당에서 일할 때였다. 그 식당은 항상 계절이 느껴졌다. 식자재마트 같은 데를 거치지 않고 가능하면 그 지역의 농부와 직거래 방식으로 제철 농산물을 확보했다. 너무 좋은 식재료 앞에서 그는 잠시 아득해진다. 셰프로서의 자세를 다시 성찰하게 된다. 갈수록 반처리 식재료에 의존하는 한국의 셰프들. 제철 식재료에서 자꾸 멀어지는데 그래선 안 되겠다는 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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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기능올림픽대회에서 사슴스테이크 등으로 우수상을 차지한 캐주얼레스토랑 ‘세이보리’의 오너셰프 김홍욱. 그는 제철을 느낄 수 있으면서 가성비 좋은 캐주얼 메뉴라인의 신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세이보리 창업기

1년간의 캐나다 유학을 끝내고 대구로 돌아왔다. 그는 다른 친구들보다 관찰력과 응용력이 더 풍부했다. 호기심은 무한대로 팽창하고 있었다. 자꾸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현실을 봐야만 했다. 세상의 모든 요리, 모든 레스토랑을 다 경험할 수는 없었다. 이미 지난 요리경연 때 요리는 단순히 레시피에서 나오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셰프는 세상의 흐름과 동행해야 하고, 현재 식재료 트렌드, 계절 농수산물의 추이, 식품파동의 흐름까지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 흐름에 맞춰 자신이 만들고 싶은 요리를 그 지역 정서에 맞춰 순발력 있게 해낼 수 있을 때 창업해야 된다고 봤다.

대구로 내려와 지역 레스토랑 분위기부터 탐색했다. 많이 먹어보고 분석도 많이 했다.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것은 하나의 왕조를 개창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어떤 콘셉트의 음식을 어떤 가격에 어떤 서비스로 낼 건지 정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죠.”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레스토랑부터 차리고 싶었다. 상호는 세이보리(Savory). ‘맛 좋은’ ‘향긋한’ ‘즐거운’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성격이 다르듯 그들이 좋아하는 맛도 제각각. 셰프는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손님의 입맛에서 ‘공통점’을 발견해야 한다. 문제는 가격. 비싸도 안 되고 싸도 안 된다. 비싸면 손님이 거부하고 지나치게 싸면 영업이 안 된다. 균형감각을 가르쳐주는 데는 없다.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터득해야 된다.

특히 생애 첫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셰프들은 자신이 정한 메뉴라인과 가격에 대해 항상 불안해한다. 초창기엔 음식의 맛에 대해 고민하지만 프로는 가격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고급 버전인 파인 다이닝도 생각해 봤지만 무리수인 것 같았다. 그래서 부담 없는 캐주얼 스타일로 가기로 했다. 대구에는 초저가 파스타부터 고가의 파스타까지 다 존재한다. 어떤 파스타가 정답일까. 본토 버전으로 갈까. 아니면 대구 정서에 맞도록 갈까. 고민 끝에 세이보리 4인방 파스타가 차출된다. 명란파스타, 봉골레파스타, 토마토파스타, 랍스터파스타. 저렴하면서도 고퀄리티 메뉴를 주고 싶었다.

스테이크는 식재료를 진공포장해서 일정한 온도의 물 속에서 장시간 조리하는 방식이다.

◆세이보리 메뉴 스토리

무조건 국내산 고기를 고집하는 데서 한발 뺐다. 시중에서 잘 보기 힘든 스페인 흑돼지 ‘이베리코’를 선택했다. 4월부터 전국 이마트에서도 판매되는 이베리코. 사료와 방목 기간 등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10개월간 축사에서 고급 사료를 먹여 키우는 ‘세보’와 축사에서 10개월간 키운 후 2개월 동안 방목해 기른 ‘레세보’. 상수리나무 숲에 3개월 이상 방목하며 도토리를 먹여 키운 것은 최상등급인 ‘베요타’. 그는 베요타 등심 부위를 낸다. 언뜻 바비큐 육질의 톤을 갖고 있다.

비프스테이크는 미국산 ‘애버딘 앵거스(Aberdeen angus)’를 수비드 방식으로 요리해 낸다. 그가 앵거스 등급판정에 대한 정보를 준다. 미국은 우리처럼 등급판정에 대한 의무가 없다.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등급을 판정받지 못한 건 ‘언그레이디드(Ungraded)’로 분류된다. 보통 미국 소는 최상급이 ‘프라임(Prime)’, 중급이 ‘초이스(Choice)’, 하급이 ‘셀렉트(Select)’로 불린다. 그는 초이스급 부채살을 선택했다. 한우 못지않은 질감, 적당한 가격이 절충됐다. 1990년대만 해도 지역 대다수 레스토랑의 소고기는 호주산이었다. 그건 너무 부드러워 꼭 찹쌀떡 같은 육질. 한우에 비하면 너무 차진 게 흠이란 평가도 받았다. 초이스는 돼지고기 식감을 준다. 대신 이베리코 등심은 소고기의 식감이 전해진다.

세이보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부챗살스테이크와 명란파스타. 명란파스타는 오일베이스의 파스타. 저염 명란을 이용하여 전혀 짜지 않고 담백하다. 부챗살스테이크는 1인분에 220g이나 되는 두툼한 스테이크로 타지 않고 육즙도 풍부해 여성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샐러드.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다. 처음에는 치즈를 이용한 샐러드를 냈다. 그런데 ‘너무 무겁고 텁텁하다’는 지적이 잦았다. 계속 밀고 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상큼한 샐러드를 위해 레몬드레싱샐러드로 갔다. 그런데 투명한 오일이 바닥으로 다 흘러내려 이젠 ‘너무 싱겁다’란 반응이 돌아왔다. 요리하면서 이렇게 갈등을 느낀 적도 별로 없다. 그렇게 해서 절충한 방식이 ‘오곡깨드레싱’이다. 고명으로 아몬드와 말린 크랜베리를 올렸다.

랍스터파스타는 1만9천800원. 소형 랍스터 원가만 7천원. 그런데 소스가 이탈리아 본토보다 몇 배 더 농밀하고 진하다. 걸쭉한 조개 육즙 같은 헤비한 보디감. 딱 대구 스타일이다. 물론 그걸 흠으로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 입에는 맞았다. 면은 스파게티보다 조금 가는 것을 사용해 4분30초 정도 삶아 낸다. 양갈비스테이크는 2만1천800원. 그만의 ‘레몬드레싱 레시피’는 이렇다. 레몬주스 125g, 소금 3g, 올리브오일 250g, 화이트 와인 50g, 설탕 30g. 이 모든 걸 믹서에 넣고 갈면 된다.

계절마다 메뉴를 교체할 거란다. 이번 하절기엔 문어파스타, 유자드레싱이 감도는 시푸드샐러드 개봉박두. 중구 삼덕동 3가 35-2. (053)253-0376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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