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용기자의 ‘우리곁의 동식물’] 장미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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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5   |  발행일 2018-05-25 제39면   |  수정 2019-03-20
오~사랑하는 그대여! 메이 퀸의 '붉은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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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서구 이곡장미공원에 여러 종류의 장미가 활짝 피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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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동로 옹벽에 빨간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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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의 한 아파트 담장에 곱게 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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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한 건물 옆 자투리땅에 심긴 장미가 꽃을 활짝 피어 시민들에게 진한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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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한 아파트에 활짝 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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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이곡장미공원에 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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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장미공원의 활짝 핀 장미와 인근 아파트 외벽에 그려진 장미가 어우러져 아름답다.

5월은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의 여왕’이자 꽃의 여왕이라 할 수 있는 ‘장미’의 계절이다. 장미는 카네이션, 국화, 튤립과 더불어 세계 4대 절화(切花, cut flower)로 꼽힌다. 절화는 화훼의 이용상 분류에 의해 꽃자루, 꽃대 또는 가지를 잘라서 꽃꽂이, 꽃다발, 꽃바구니, 화환 등에 이용하는 꽃을 의미한다.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할까? 노천명 시인이 ‘푸른 5월’이라는 시에서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라고 했던 데서 연유되었다고도 하고, 녹음이 짙어지면서 자연이 눈부실 만큼 아름답고 날씨도 사람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장미가시 찔린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흘린 피가 흰색뿐인 장미 붉게 물들여
사랑·순결함·질투…색깔별 꽃말 달라
亞 원종 유럽 도입, 다양한 품종 개량
단독주택·아파트·학교담·자투리 땅
오월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 볼거리
연인·고마운 사람에게 애정담긴 선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장미는 원종(原種·어떤 품종에 대해 본래의 성질을 가진 종자)만도 200여 종에 이르고, 개발된 원예종은 2만종이 넘는다고 한다. 현존하는 품종만 해도 수천 종이나 된다. 우리나라의 찔레나무, 해당화, 생열귀나무 등도 식물학적으로는 장미에 속한다.

이런 장미의 사랑 때문일까. 장미와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서양에서 내려오는 전설은 그리스 신화의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연관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의 낫에 잘린 우라노스(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의 성기가 바다에 떨어져 생겨난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때 장미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붉은 아네모네와 붉은 장미가 생긴 이야기도 아프로디테와 연관이 있다. 아프로디테가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와 잘생긴 아도니스를 차지하려고 다투자 제우스가 중재했다. 제우스는 두 여신에게 아도니스와 함께 보낼 시간을 균등하게 배분해 주었다. 1년 중 3분의 1은 아프로디테와 보내고, 3분의 1은 페르세포네와 보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러자 아도니스는 1년의 3분의 2를 아프로디테와 보냈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그를 질투하는 전쟁의 신 아레스가 변신한 멧돼지의 이빨에 찔려 죽은 후 영원히 페르세포네의 차지가 되었다. 이때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서는 붉은 아네모네 꽃이 피어났고, 그를 구하려 다급하게 달려가다 가시나무에 발을 찔린 아프로디테가 흘린 피는 그때까지 흰색뿐이었던 장미를 붉게 물들였다고 한다.

장미에 대한 찬사는 예부터 끝없이 계속됐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시인 아나크레온은 장미를 “꽃의 영광과 마력, 봄의 기쁨과 근심, 신의 환희”라고 읊었고,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괴테는 장미를 “우리 기후 풍토에서 대지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함”이라 칭송하기도 했다.

조선 초기의 문신 강희안은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 서적인 ‘양화소록’에서 화목(花木)을 9품(品)으로 분류했는데 장미를 아름다운 친구를 의미하는 ‘가우(佳友)’라 부르며 번화함을 취하는 5등으로 분류했다.

장미는 장미과 장미속의 관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높이는 2~3m이며, 잎은 어긋나고 깃 모양이다. 줄기에는 가시가 있고, 꽃은 보통 5~6월에 붉은색·분홍색·노란색·흰색 등이 피는 관상 꽃나무로 향기가 좋다. 북반구의 온대와 아한대에 주로 분포한다.

18세기 말에 아시아의 장미 원종이 유럽에 도입돼 유럽과 아시아 원종 간의 교배가 이뤄져 꽃 모양이나 색 등이 다른 다양한 장미가 만들어졌다. 품종에 따라 꽃이 피는 시기와 기간의 차이가 크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5월부터 9월까지 꽃을 볼 수 있다.

18세기 이전의 장미를 고대 장미(old rose), 19세기 이후의 장미를 현대 장미(modern rose)라 한다. 현재 우리가 보는 장미는 서양에서 개량된 것이다.

수많은 품종의 현대 장미가 탄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다마스크장미와 월계화(중국 장미)라고 한다. 기원전 3천 년경부터 중동지역에서 재배됐다는 다마스크장미는 향기가 좋아 고급 향수나 화장품을 만드는데 원료로 쓰이고 있다.

원예종이 많다 보니 장미의 색깔도 여러 가지고 의미도 다양하다. 장미의 대명사라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빨간 장미는 ‘열렬한 사랑·아름다움·욕망’, 흰 장미는 ‘순결함·청순함·존경’, 노란 장미는 ‘질투·우정·영원한 사랑’, 분홍 장미는 ‘맹세와 단순·행복한 사랑’을 의미한다.

장미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자기 주변에 장미를 심어 늘 가까이 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독주택의 정원이나 울타리, 아파트, 학교의 담, 골목의 자투리땅 등에서 5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치단체에서도 큰 규모의 장미공원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볼거리가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의 이곡장미공원에는 루지메이양 외 122종, 1만4천여 그루의 장미가 5월이면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론 꽃시장이나 화원 등에서는 사계절 언제라도 장미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장미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전쟁도 있다. 1455~1485년 영국에서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랭커스터가(家)와 요크가(家)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랭커스터가는 붉은 장미, 요크가는 흰 장미를 각각 문장으로 사용한 데서 ‘장미전쟁’이라 불린다. 전쟁은 랭커스터계의 튜더가(家) 헨리 7세가 즉위해 튜더 왕조를 시작하면서 끝났다. 헨리 7세는 화합을 위해 요크가의 딸을 왕후로 맞이하고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합쳐 왕가의 표시로 삼았다. 이후 장미는 영국의 국화가 됐다.

사랑과 애정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장미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런 상징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장미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 축적돼 만들어진 것이다. 5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웠던 분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장미 한 송이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을 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을 뜻깊게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글·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참고문헌=Flower & Tree(마리안네 보이헤르트, 을유문화사, 2002년), 여신女神(다카히라 나루미, 들녘, 2002년),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강판권, 글항아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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