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영철 화가

  • 김수영 이지용
  • |
  • 입력 2018-06-01   |  발행일 2018-06-01 제41면   |  수정 2018-06-01
“병든 어머니·혜민스님, 행복하게 바라보는 세상 알려줘”
20180601
이영철 화가가 창녕 부곡문화예술센터에 있는 작업실에서 마무리 중인 작품을 배경으로 섰다.
20180601
사랑-그대 속의 달.
20180601
오월 소풍.
20180601
봄 소풍 꽃랑이.

이영철 화가(59).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데 그의 눈빛과 미소는 해맑다. 그의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멋진 동화 한편을 보고 난 것처럼 마음을 맑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예쁜 그림’이다. 그림이 예쁘면 좋을 법한데 작가들은 이에 대해 약간의 부정적 견해를 가진다. 많은 화가들처럼 그 역시 예쁜 그림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예쁜 그림을 ‘팔리는 그림’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정신보다는 팔려는 생계형 작가로 비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생각을 많이 떨쳤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혜민 스님의 스테디셀러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삽화작가로 전국적 지명도를 쌓아가고 있는 그는 예쁜 그림, 잘 팔리는 작가에 대한 스스로의 편견도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혜민 스님 덕분에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그는 그 유명세보다 혜민 스님으로부터 더 값진 것을 얻었다. 세상을 좀더 행복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혜민 스님과의 만남이 그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줬다.

▶요즘 지역출신 작가 중 가장 핫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혜민 스님과의 인연 덕분에 뒤늦게 조명을 받고 있어 행복할 따름입니다. 그동안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최근에는 전국 여러 곳에서 초대전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전국의 여러 아트페어, 초대전 등으로 인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변변찮은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가져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혜민스님 책과 인연 덕 뒤늦게 조명
전국 여러곳에서 많은 관심받아 감사
전깃불도 없는 어릴적 김천 고향 풍경
달·별·꽃·새·논·개울가 그리움 담아
병실 계신 어머니 위해 그린 예쁜 그림
행복해 하시는 것 보며 작업에 큰 영향
일상적·소박한 것에 대한 소중함 배워”

“3년전 창녕예술센터 입주작가로 선정
상설 전시·다채로운 기획전 바쁜 나날
길고양이 돌보느라 대구작업실도 찾아
타지로 함께 온 아내, 늘 고마운 존재”



▶혜민 스님과의 인연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2012년 혜민 스님과 처음 만났습니다. 그 당시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100만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큰 인기를 얻고 있었지요. 출판사와 스님이 개정판을 준비하며 새로운 화가를 찾다가 저와 인연이 된 것입니다. 그 책은 300만부 이상 팔려나갔고 현재는 세계 26개국에서 판매 중입니다. 보통은 각 국가에서 별도로 삽화를 넣지만 현지 출판작 모두 저의 작품을 삽화로 쓰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에서 책에 대한 반응이 좋은데 그림에 대한 문의도 제법 들어옵니다. 판화 위주로 작품들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창녕 부곡문화예술센터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천이 고향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대구로 와서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안동에서 대학(국립안동대 미술학과)을 나왔으나 창작활동을 비롯한 모든 생활을 대구에서 해왔지요. 하지만 2015년 말 창녕 부곡온천 안에 있는 문화예술센터에 입주작가로 초대를 받아 그 곳으로 집과 작업실을 모두 옮겼습니다. 제가 입주작가 대표로 있는데 센터의 총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현재 정광화·허필석·이상식(이상 서양화), 이민한(한국화), 정운식(조각) 등의 입주작가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부곡문화예술센터는 어떤 곳인지요.

“연면적 4천950㎡(1천500평) 규모에 지상 2층으로 이뤄진 부곡문화예술센터는 2011년 작가 레지던시 지원과 국제적인 기획전시 개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 구축 등을 목표로 문을 열었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신진작가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이곳에서는 중견작가를 대상으로 합니다. 상설전은 물론 다채로운 기획전으로 여러 장르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은 물론 전국에서 부곡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을 보여주려 노력 중입니다.”

▶작업실을 옮긴 뒤 작업내용에도 변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최상의 환경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으니 완성도를 높일 수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 전깃불이 들어올 정도로 촌구석에 살았던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도시로 오면서 고향마을을 자주 가볼 수 없었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가득했고 그 마음을 그림으로 풀어냈습니다. 제 그림 속 풍경들은 제가 고향에서 어릴적 봐왔던 모습들이지요. 하지만 도시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했습니다. 이 곳에 온 뒤로는 제 기억의 모습과 이 곳의 풍경들을 섞어서 작업을 합니다. 고향에서 봐왔던 밝고 둥근 달, 빛나는 별, 이름 모를 크고 작은 꽃들, 논과 밭, 개울 등이 다 있으니까요. 제 작업실에서 이런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보니 사물을 좀더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고 좀더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작업실이 대구 작업실보다 크고 밝습니다. 햇볕이 많이 들어오니 세상 전체가 더 밝아 보입니다. 그림도 자연스럽게 밝아지는 듯합니다. 특히 색감이 더욱 밝고 맑아졌다고나 할까요.”

▶대학, 학원 등의 강의도 전부 그만두고 완전히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가장이다보니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대학, 학원 등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늘 바삐 움직였지만 작업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지요. 요즘은 특강 외에 다른 강의를 모두 그만두고 작업에만 매진하고 있습니다. 창녕에 와있다보니 만나는 사람도 많이 줄어들어 좀더 오랜시간 작업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1~2회 대구에 나가는 것 외에는 모든 시간 작업을 합니다.”

▶대구에 아직 옛 작업실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언젠가는 다시 대구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곳에서 길고양이 대여섯 마리를 키우는데 이들에게 밥을 주기 위해서 작업실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2008년 남문시장 상가에 작업실을 마련했는데 거기서 우연한 인연으로 길고양이를 돌보게 됐지요. 길고양이를 돌본다는 핑계로 대구에 와서 이런저런 볼일도 보고 갑니다. 길고양이는 저에게 아주 고마운 존재입니다. 생명의 고귀함을 가르쳐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혜민 스님과 함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내(최선영)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창녕에서 생활하면서 새로운 행복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라는 제의가 왔을 때 아내가 반대했다면 아마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흔쾌히 허락해주었고 창녕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저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이 많은데 주변의 길고양이, 유기견을 돌보며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어 제가 심적으로 훨씬 안정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화가와 결혼해 힘든데도 별다른 투정없이 내조해주는 아내가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습니다.

“젊었을 땐 존재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구하다보니 무겁고 어두운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제 그림이 이렇게 밝고 따뜻해진 것은 어머니 덕분입니다. 1997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40여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였습니다. 5인실에 어머니 침대는 벽쪽에 있었지요. 어머니가 전혀 움직이질 못해 답답하실 것 같아 물감 박스에 그림을 그려 어머니가 바라보는 벽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불교신자인 어머니를 위해 부처를 처음 그렸는데 이후로 꽃, 새 등을 그려서 붙였지요. 밝고 예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간호를 하다보니 작업할 시간이 없어 병실에서 소품을 만들려는 생각도 있었지요. 그런데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그 그림을 보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예쁜 그림에 대한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이것이 현재의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작품에 꽃과 달, 사람이 등장합니다.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까.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이 빼곡히 피어있고 보름달이 두둥실 떠있는 그림이 많습니다. 여기에 연인들의 모습이 작게 등장하지요. 초록색 들판에 핀 꽃들은 작고 화려하지 않습니다. 자잘하고 소담스럽게 피어있고 사람들의 모습도 작은데 아마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나이가 들고 아버지, 어머니, 형제를 잃어가면서 작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박한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 그림을 보면서 즐거움,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랄 뿐입니다.”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서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누군가는 저를 인기작가라고 말하는데 인기작가가 아니라 저와 저의 그림에 대한 인지도가 달라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특강을 가면 작가 프로필 등을 요구했는데 요즘은 이런 게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제가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열심히 작업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작업할 것입니다. 그 나머지 일들은 순리에 맡길 뿐입니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개인전이 잡혀있는데 매 전시 최선을 다하는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게 작가로서의 소망입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이영철 화가는 국립안동대 미술학과, 계명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신라미술대전 대상, 경북도미술대전 최고상, 대구미술발전인상 등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등에 소장돼 있다. 힐링화집 ‘사랑이 온다’, 작품집 ‘그린꽃은 시들지 않는다’등을 펴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