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리포트] 보강증거 없으면 자백해도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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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6 07:43  |  수정 2018-06-16 09:48  |  발행일 2018-06-16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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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법학박사)

지난 13일 대구지방법원은 아동 돌보미 A씨의 아동학대죄 재판에서 자백이 있었지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생후 10개월의 아동이 보채자 막말과 욕설을 했다고 한다. 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아동을 방치하고 전화통화, TV시청을 했다고 하니 정서적 아동학대가 맞다. 이러한 사건에서 대구지검의 기소결과가 무죄로 돌아갔다니, 매우 뜻밖이다. 수사, 기소, 공소유지 중 문제가 발생한 곳은 어디였을까.

이 사건 수사의 단서이자 주요 증거는 아동의 모(母)가 A씨 몰래 설치한 녹음기의 녹음내용이었다. 명백한 물증이 있다고 보고 A씨는 수사 및 재판에서 정서적 학대를 인정했다. 다만 신체적 학대는 부인했다. 이제 법원은 녹음과 A씨의 자백을 토대로 유죄를 선고하면 되지 않을까. 답은 ‘No’다. 바로 통신비밀보호법 때문이다. 통비법은 제14조에서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하는 것을 금지하고(제1항), 불법녹음을 재판·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제2항). 심지어 제16조에서는 불법녹음행위를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과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청기가 적발되어 미리 뜯겨도 제18조에 따라 미수범으로 처벌되니, 타인 간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중대 위법임이 분명하다.

아기 어머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고, 되레 자신만 처벌될 상황이다. 결국 수사를 잘못한 것이다. 편리한 수사를 좇다가 불법증거만 들고 법원에 쫓아간 셈이다. 특이한 것은 재판부가 아기와 피고인 간에 대화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아기는 울음소리 등의 방법으로 A씨에게 의사전달했고, A씨는 화내는 방식으로 화답을 해 대화가 있었다는 거다. 만약 아기의 행위를 의사전달로 볼 수 없거나 A씨의 욕설이 독백일 경우 타인 간 대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통비법이 적용되지 않고, 사인이 수집한 위법수집증거의 문제가 된다. 대법원은 공익이 사익보다 우월할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한다(대판 2010도12244 등).

녹음파일이 증거능력을 잃은 후 이제 남은 증거는 피고인의 자백이다. 자백한 사건에서 왜 무죄가 나왔을까. 피고인의 자백이 유일한 증거가 됐기 때문이다. 보강증거 없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 제12조 제7항과 형사소송법 제310조다. 이는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에 대한 예외이고, 허위자백으로 인한 오판방지, 자백편중 경향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피고인이 경찰, 검찰, 법원에서 계속 자백해도 보강증거가 없다면 소용없다. 이들 자백은 증거능력이 제한돼 있고, 그 어느 것이나 독립해 유죄증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피고인의 자백을 모조리 합쳐도 그것만으로는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대판 66도 634).

보강증거의 예로는 공범의 진술, 목격자 진술, DNA 증거, 통신내역, 금융내역, 진단서, CCTV, 압수물이 대표적이다. 또 간접증거, 정황증거가 모두 보강증거가 될 수 있다(대판 2005도8704). 따라서 정 급하면 동의에 의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해 그 결과를 보강증거로 쓰면 된다. 법원이 허용하는 정황증거이므로 보강증거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대판 83도3146). 이 사건은 신체학대는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해당 검사가 부적합하지 않다. 수사방식을 다양화했다면 자백과 불법녹음에 의존하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자백과 보강증거가 서로 어울려 전체로서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면 유죄가 나왔을 것이다(대판 2007도1419). 한편 평소 피고인이 작성한 업무용 수첩이 피고인의 자백과 별개의 증거로 보강증거가 된다는 점은 특이하므로(대판 94도2865), 사업가들은 평소 조심해야 한다.

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법학박사) www.broth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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