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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꿈속에서 첫 만남 30년간 山川 헤매다 찾은 두꺼비 바위,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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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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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옥계 솟대공원 조성 송산 이광웅

성스러운 바위 위해 정자 ‘마암루’ 세워 고유제

자연 훼손하지 않고 둘레묶는 작업 5년이상 걸려

적잖은 가산 모두 처분 ‘솟대공원’에 쏟아부어

삶 성찰하는 많은 사람에게 힐링동산 되길 바라

자신이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두꺼비바위를 위해 제단을 만들어 주었고 방문객이 오면 반드시 들러 참배토록 권유한다.
쏟아진 물컵처럼 사방으로 뻗치던 욕망. 그게 삶의 어느 시기부터 바짝 말라들어가기 시작한다. 온갖 가능성이 ‘제로’로 귀결될 때 사람들은 그걸 ‘늙었다’고 말한다.

늙음의 시절? 그건 무엇을 말함인가. 생각만 하고 실천은 없는 거겠지. 영광이란 게 실은 ‘허물’임을 자각하기도 하고.

이제 나도 늙었다. 나는 대한민국이 가장 모순 가득했을 때 청년기를 맞았고 한강의 기적이 일어날 땐 포항에서 약국을 차렸고, 국민 모두가 고학력에 목을 맬 때 사고뭉치의 한 여고를 인수해 나름대로 기사회생시켜 보기도 했다. 맘만 먹었다면 이런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거기서 유턴해 자연으로 가버렸다. 천명(天命)이란 것, 인간의 그 어떤 계획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걸 지금은 너무 절감한다.

내 삶의 화두는 ‘두꺼비바위’다. 50년 전 처음 꿈에서 본 그 바위를 찾아 30년 이상을 산천을 헤맸다. 약국 상호까지 두꺼비로 정해버렸다. 그 바위는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 무릉도원 같은 옥계계곡 한편에 성스럽게 앉아 있었다. 26년 전 그 바위를 처음 친견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내 삶의 그 모든 파편은 두말할 필요 없이 두꺼비바위로 귀일됐다.

난 65그루의 고송이 군락져 있는 언덕에 둥지를 틀었다. 일단 두꺼비바위를 위해 ‘마암루’란 정자부터 만들어 고유제를 지냈다. 그 지척에 내가 머물 송산재(松山齋)를 지었다. 2008년 어름이었다. 내 아호도 송산으로 정해진다. 설악산의 공룡능선 같은 팔각산, 그리고 병풍 같은 산세를 가진 할아버지 바위산과 그 속을 손금처럼 파고든 할머니 계곡이 절묘하게 엮인 마암루 둘레를 하나로 묶는 작업은 5년 이상이 걸렸다. 이것이 바로 옥계 솟대공원이다.

절경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다. 그런데 난 두꺼비바위 때문에 황당무계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산신령은 여러 방식으로 날 괴롭혔다. 아파트 입주야 계약만 성사되면 늘 가능하지만 선경(仙境)에 들어가려면 까다로운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 나도 그랬다. 그곳은 거주권만 인정되는 자연보호구역이라서 더더욱 자릴 잡기 어려웠다. 아무튼 솟대공원은 크고 작은 사건·사고 끝에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돌탑을 쌓는 마음으로 버텼다. 자연을 가장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1㎞ 남짓한 힐링탐방로를 만들었다.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 모두 사비였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보자면 가장 어리석은 투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꺼비바위 때문에 천금도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날 측은하게 바라보는 가족들에겐 언어도단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인생인 것을. 땅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에서 불러들인 맷돌 3천개를 탐방로에 징검돌처럼 깔았다.

아내와 자식에게는 솟대공원이 한갓 부동산의 연장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내겐 그렇지 않다. 누구나 죽음이 임박할 땐 사회에서 캐온 걸 제자리로 돌려주어야 된다. 그걸 본인이 정리 못 하면 자식에겐 그게 되레 화(禍)가 된다. 난 자식에게는 가급적 적은 재산을 물려줄수록 좋다고 믿는다. 대신 견문과 안목은 많을수록 좋겠지. 이 나라는 아직 그 본말이 전도됐어. 그래서 난 적잖은 가산을 모두 처분해 솟대공원에 다 쏟아부었어. 비록 내가 이 공간을 만들었지만 이건 우리 집안 소유가 아니지. 결국 사회의 몫이 될 것이다. 삶을 정리하는 뜻있는 이들에게 삶을 성찰하는 힐링의 동산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안개비가 암봉과 고송 가지를 핥고 가는 날엔 종일 고독의 흔적을 좇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두 눈 감고 동요를 부른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난 통일동요가 된 ‘고향의 봄’을 제일 좋아한다. 그 동요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여기다. 그 공원 초입에 ‘고향의 봄’을 위한 시비도 세웠다. 그리고 평생 맘고생만 한 아내와 나, 둘만을 위한 부부목도 심었다. 동절기를 제외하곤 난 항상 송산재에서 머문다. 누군 날 보고 천년송과 사랑에 빠진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며 부러워한다.

원래 남의 사정이란 늘 그렇게 쉽게 판단하는 법. 가도 가도 생은 고독한 것. 그들은 내 구석진 그늘을 알 도리가 없다. 물론 나 역시 그들의 그늘을 모른다. 서로 서로를 모른다. 자기를 제대로 이해만 해도 그 삶은 성공적이다.

내 삶을 독백하자니 자꾸 숨이 가쁘다. 심하면 송산재에 비상대기 중인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된다. 절경 속에서 이 무슨 이율배반 같은 말인가?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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