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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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3   |  발행일 2018-07-13 제40면   |  수정 2018-10-01
자연이 깃든 ‘바람의 옷’ 세계에 흩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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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프레타포르테 쇼에서 선보인 바람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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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독도의 날’에 독도에서 열린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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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故 이영희

대구 출신…주부로 지내다 40세에 한복의 色 빠져
어릴적 어머니가 꽃·열매로 염색, 천연의 색 깨달아
韓 첫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선보이며 유명세
저고리 없는 드레스형 한복치마 국내 비판일기도
美 뉴욕 맨해튼 한복 박물관·독도 패션쇼 큰 감동
독창적 디자인·파격 패션쇼…절대적 美·가치 전파

그녀의 한복은 자연의 ‘바람’과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바람’을 담은 우리네 옷이다. 여기에 자유와 기품이 한데 모여 있는데 그래서 그의 옷을 ‘바람의 옷’이라고도 한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40세의 늦은 나이에 한복의 색에 푹 빠져 한복을 자신의 운명이라 말했다. 바람처럼 전 세계에 한복(HANBOK)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죽는 날까지 한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했다. 그러했던 우리 시대의 장인이 지난 5월 하늘의 부름을 받고 영원한 잠에 들었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는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이영희의 어머니도 집에서 직접 옷감을 염색하며 철마다 가족들의 옷을 손수 지어 입히셨다. 어머니의 솜씨가 정평이 나 있던 터라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어머니의 생활을 보고 자란 이영희는 자연스럽게 솜씨를 물려받게 된다. 여고를 졸업한 후 결혼하여 삼남매의 어머니가 된 이영희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우연한 계기로 인해 자신의 운명인 한복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 명주솜 공장을 하던 친척 언니의 권유로 이불솜을 팔면서 이불도 함께 만들었는데 강하고 원색적인 이불 대신 만든 은은한 홑청이불이 생각지도 않게 많은 주문을 받게 된다. 그러다 이불을 만들고 남은 뉴똥(실크의 일종)으로 지어 입은 한복이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1977년 서울 마포구에 ‘이영희 한국의상’이라는 매장을 열고 꽤 늦은 나이에 한복 디자이너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한복점을 연 이후 기존에 없던 독창적인 디자인과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복 패션쇼를 성황리에 개최하면서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늘 색(色)에 대한 아쉬움이 자리했다. 전문서적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허전한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던 이영희는 전통복식학자 석주선 박사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만의 색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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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파리 오트 쿠튀르에서 선보인 한산모시.

석주선 박사는 일찍이 일본에서 양재공부를 하였으나 광복 후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나라 전통복식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평생 수집한 수천 점에 달하는 한복과 유물을 단국대의 기념박물관에 기증하여 우리나라 전통복식의 고증과 보존에 큰 기여를 한 분이다. 색에 대한 갈증이 가시지 않던 어느 날 이영희는 단국대의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고 박물관에 전시된 기녀복(짙은 빛바랜 초록색 저고리, 먹자주색 고름, 홍화색 치마)과 마주하면서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꽃과 열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염색하던 천연의 색들이 바로 자신이 찾고 있는 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이후, 자연에서 유래한 원단과 아름다운 색에 대한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누구든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영희는 한복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나하나 쌓아갔다.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는 보편적이라 우리 눈에 아름다우면 외국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통할 것이라는 일념 하나로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프랑스 파리의 유명 기성복 전시회인 프레타포르테에 참가, 한복 패션쇼를 열었다. 당시 이영희는 패션쇼에서 저고리 없는 드레스형의 치마 한복을 선보였는데 파리 유명 잡지사의 기자가 바람을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데 모은 옷이라 칭찬하게 되면서 이영희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이영희를 상징하는 ‘바람의 옷’은 그렇게 파리에서 탄생하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저고리 없는 드레스형의 치마 한복을 놓고 전통 한복이 아닌 국적 없는 옷이라는 혹평을 받고 맨발로 한복을 입고 패션쇼를 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반대로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복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파리에서 패션쇼를 개최한 이듬해인 1994년에 이영희는 파리에 매장을 열었고 2004년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박물관을 여는 등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비며 달렸다. 또한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21개국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하였는데 보통 맞춤옷이라 하면 입는 사람의 치수를 재고 만드는 것이 정석이지만 계측 없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맞고 훌륭하다는 평가로 각국 정상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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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그녀의 행보는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열정으로 한복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다. 단순히 한복을 만들고 팔아서 수익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한복을 알리고 한복이라는 고유명사를 전 세계인이 알고 애장하는 브랜드로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 2010년에는 파리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패션쇼)에 한산모시로 만든 한복을 출품하여 우리 원단과 우리 옷,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자 하였으며 최초의 독도 패션쇼를 기획하여 크나큰 감동을 선사하였다. 2011년 8월15일 광복절에 우리의 땅 독도에서 우리 옷을 세계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패션쇼는 기상 악화로 인해 울릉도에서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해 10월25일 독도의 날에 ‘바람의 옷’을 선보이며 잊지 못할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였다.

이영희의 한복은 고운 선과 아름다운 형태, 한국의 색을 담고 있어 동양의 모든 미학이 존재한다고 평가된다. 한복의 세계화와 현대화를 위해 이영희가 그동안 선보인 한복은 철저하게 전통복식을 재현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현대적인 치마 드레스를 선보이기도 하며 매번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없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복을 바라보며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한복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한국의 문화선양에 앞장서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장인인 이영희를 회상하며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한복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rh0405@kri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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