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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 연꽃단지에 활짝 핀 홍련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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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 신무동에 있는 신무동마애불좌상(대구시 유형문화재 제18호).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에는 위와 아래를 향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
상징에는 수백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이겨낸 힘이 축적되어 있다. 하나의 상징이 만들어지려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하고, 왕관은 왕위의 상징인 것처럼.
불교와 힌두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은 연꽃이다. 신성함을 상징하는 연꽃은 브라흐마(창조의 신), 시바(파괴의 신)와 함께 인도 힌두교의 세 주신(主神) 중 하나로 우주의 질서와 인류를 보호하는 신(神) 비슈누의 배꼽에서 피어났다고 전해진다.
연꽃은 불교의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뿐만 아니라 사찰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석가모니가 태어나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을 때 그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하며, 극락세계를 나타내는 꽃이기도 하다. 사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문양이 연꽃문양이다. 불·보살이 앉아 있는 연화좌(蓮花座), 불전을 구성하는 불단과 천장, 문살뿐만 아니라 탑, 부도 등에도 연꽃이 장식되어 있다.
경주 남산이나 팔공산을 산행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애불의 연화좌에서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연화좌의 연꽃은 꽃잎의 끝이 위로 향한 앙련(仰蓮)과 아래로 향한 복련(覆蓮)으로 표현되고 있다. 앙련 또는 복련의 어느 한 가지만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두 가지가 아래위로 배치되기도 한다. 하나의 연꽃만으로 연화좌를 구성할 때는 일반적으로 앙련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고, 불상이 입상으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복련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연화좌가 두 개의 연꽃으로 구성된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하대는 복련, 상대는 앙련으로 표현된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불자들은 사찰을 찾아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등을 다는데 여러 모양의 등 중에서도 연등을 가장 선호한다.
불교의 진언 중 일반인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옴 마니 반메 훔’이다. 이는 관세음보살의 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으로 육자진언(六字眞言), 본심진언(本心眞言) 등으로 불린다. 이 진언은 ‘온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될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옴’은 태초 이전부터 울려오는 우주의 소리(에너지)를 의미하고, ‘마니’는 여의주(如意珠)로 깨끗한 지혜를 의미하고, ‘반메’는 연꽃으로 무량한 자비를 뜻한다. ‘훔’은 우주의 개별적 존재 속에 담겨 있는 소리를 의미한다.
석가모니 극락세계, 심청전 같은 환생 상징성
많은 열매 맺어 풍요·다산…꿈에 연꽃, 딸 태몽
상주 민요 공갈못 노래, 연밥따는 노동의 힘겨움
속담 ‘연꽃은 흙탕물 속 핀다’빈천한 집안 인재
이집트-태초의 꽃인 탄생·재생, 그리스-장례 꽃
진흙 속 자라지만 청결·고귀한 식물로 사랑받아
비슷한 모습 가진 수련꽃…못이나 늪에서 자라
연꽃은 환생(還生)이라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우리 고전인 ‘심청전’에서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에 빠졌는데 심청의 효심에 감복한 용왕이 심청을 연꽃에 실어 물 밖으로 보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민간에서는 연의 많은 열매 때문에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꿈에 연꽃을 받으면 딸을 얻을 태몽이라고도 한다.
상주 민요인 ‘공갈못 노래’에도 연이 나온다. 공갈못은 삼한시대 또는 고령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우리나라 4대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이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가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줌세/ 백 년 언약 맺어다오/ 백 년 언약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간다.’
연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민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 노래는 일명 ‘채련요(採蓮謠)’로 사랑의 아름다움과 연밥 따는 노동의 힘겨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핀다’는 말이 있다. 이는 빈천한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연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사랑을 받았다. 이집트에서는 태초에 물에서 태어난 최초의 꽃이며, 불사조처럼 탄생과 재생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연꽃을 장례식의 꽃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 북송 시대의 학자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내가 오직 연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폼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한다”고 칭송했다.
조선 시대 문신인 강희안은 원예서 ‘양화소록’에서 화목구등품론(花木九等品論)으로 꽃의 품종을 품평하며 연(蓮)을 정우(淨友)라 해 국화와 대나무, 매화와 함께 1등으로 분류하고 높고 뛰어난 운치를 취한다고 했다.
연(蓮)은 연과의 여러해살이 수초로 아시아 남부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가 원산지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식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이집트 등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식물로 사랑받았다. 연못에서 자라고 논밭에서 재배하기도 한다. 잎은 뿌리줄기에서 나와서 높이 1∼2m로 자란 잎자루 끝에 달리고 둥글다. 또한 지름 40㎝ 내외로 물에 젖지 않으며 잎맥이 방사상으로 퍼진다. 꽃은 7~8월에 붉은색 또는 흰색으로 피며 꽃줄기 끝에 1개씩 달린다. 종자는 꽃받침의 구멍에 들어 있는데, 종자의 수명은 길어 1천 년 이상 묵은 종자가 발아한 예가 있다. 잎은 연잎차, 연잎 밥의 재료로 사용하며 열매는 벌집처럼 꽃받침의 구멍에 씨가 검게 익는데 까서 먹기도 한다. 땅속줄기는 연근(蓮根)이라고 하는데 비타민과 미네랄의 함량이 높아 요리에 많이 이용한다.
연꽃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식물이 수련(睡蓮)꽃이다. 수련은 수련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수초로 못이나 늪에서 자란다. 꽃은 흰색, 홍색이다. 밤에 꽃이 오므라들어서 수련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불볕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 활짝 핀 연꽃을 보면 한줄기 소나기가 내리고 지나간 후의 맑고 깨끗함, 순수함이 느껴진다. 연꽃은 종교적인 의미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기품 있는 꽃이다.
글·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참고문헌 = 한국의 꽃문화, 송홍선, 문예산책, 1996년, Flower & Tree,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을유문화사, 2002년 , 양화소록, 이병훈 옮김, 을유문화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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