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엔 ‘별들의 향연’ 낮엔 ‘고요의 천국’…영양서 2박3일 '느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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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운철기자
  • 20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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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천문대에서 바라다본 천체.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린다는 말이 여기처럼 어울리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음식디미방의 전경. <영양군 제공>
대티골 소재 외씨버선길. 바람소리에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걷다보면 어느새 더위는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영양군 제공>
수하계곡 여름날의 모습. 아무리 뜨거운 햇살과 폭염이더라도 계곡에 발을 담그면 얼음장 같은 물이 더위를 날려준다. <영양군 제공>
‘은자(隱者)의 고장’ 영양은 전역이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이곳에선 교통체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차량 경적 소리는 먼나라 얘기다. 구석구석이 밤하늘 보호공원이어서 밤엔 별들의 향연에 넋을 잃는다. 그야말로 ‘조용함이 지배하는 곳’이다. 곳곳에서 휴가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즈음, 가족·친구와 함께 영양으로 떠나보자. 밤하늘 별을 보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려 보자. 오늘 밤 꿈 속에선 우물 속에 담가 둔 수박을 한 쟁반 내어오던 어머니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믿고 즐길 수 있는 ‘영양 2박3일 나들이’를 소개한다.

#첫날 밤의 ‘별’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중략)’ (조지훈 ‘승무’ 중에서)

오지(奧地)로 알려진 영양은 예로부터 ‘고은(古隱)’이라 불려 왔다. 영산인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한반도 등줄기인 백두대간이 강원도 태백 구봉산에서 갈라져 동쪽 해안을 따라 흘러내린 낙동정맥의 산줄기에 둘러싸여 고즈넉하다.

인구는 전국 최저 수준이다. 서울보다 조금 더 큰 면적에 1만7천여명이 살고 있다. 조용하고 교통체증이 없다. 큰 공장이 없으니 공기도 맑다. 인구밀집지역이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으니 사람의 시신경을 자극하는 빛 공해 또한 없다.

그 속 깊숙한 북쪽에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이 있다. 영양 수비면 수하리 일대 390만㎡에 걸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은 국제밤하늘협회(IDA)로부터 2015년 10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지정됐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등 6개국 28곳뿐이다.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등급은 빛이나 대기 오염이 없는 사막지역에 해당되는 최고 등급인 골드(Gold) 아래 ‘실버(Silver)’다.


서울보다 조금 크고 인구는 전국 최저
큰공장 없어 공기 맑고 빛공해도 전무
아시아 최초 제정‘국제밤하늘공원’은
우리나라 포함해 전세계 6개국 28곳뿐
왕피천은 마지막 남은 비경구간 꼽혀

이황·김성일·장흥효 이어진 영남학파
학통에 직·간접 관여한 ‘문향의 고장’
음식디미방은 문화브랜드로 자리잡고
일월산 주실 숲은 ‘아름다운 숲’ 대상


밤하늘 밝기 측정값이 탁월하고 밤하늘 투명도가 세계적으로 뛰어나 은하수·유성의 흐름 등을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다. 이곳의 밤 풍경은 ‘깊고 푸른 밤’이라 불린다. 조지훈은 시 승무에서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고 노래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빛나는 이치와 같다.

영양군 자연생태공원관리사업소가 이곳에 있다. 청소년수련시설과 펜션동·텐트 40여동 규모의 야영장, 반딧불이천문대가 자리한다. 최근 청정수역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기념물 수달과 반딧불이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붐빈다. 물 흐르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적막한 새벽엔 운무(雲霧)가 서서히 걷히면서 계곡은 무채색 산수화 비경을 펼쳐낸다. 이곳에서 아침을 맞는 사람의 행복이자 특권이다. 사계절 내내 조용함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영양군청소년수련원 인근 옛 수하분교 자리에 천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반딧불이천문대가 있다. 천문대에선 매월 한차례 별자리를 관측하는 1박2일 가족천문캠프가 열린다. 건너편 반딧불이공원에선 6월 중순∼7월 중순 애반딧불이, 8월 중순∼9월 중순 늦반딧불이가 천지를 메운다. 반딧불이가 나오는 이 시기에 ‘아빠 반딧불이 보러가요’라는 반딧불이캠프가 1박2일씩 열린다. 많은 피서객은 하늘의 별이 내려온 듯한 반딧불이에 이내 동심으로 빠져든다.

왕피천 상류인 장수포천을 끼고 난 길을 따라 물소리와 은하수를 보며 걷노라면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 밤하늘보호공원 주변은 환경부가 지정한 왕피천유역생태경관보전지역과 반딧불이특구여서 경관이 아주 뛰어나다. 특히 왕피천은 트레킹족에겐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골과 더불어 마지막 남은 비경구간으로 손꼽힌다. 그 시작점이 왕피천생태경관보전지역인 수비면 수하리 오무마을이다. 오무마을에서 하천을 따라 10시간가량 걷노라면 울진 근남면 굴구지 산촌마을에 닿는다.

#둘째 날의 ‘인문학’

‘창 밖에서 소록소록 비 내리는 소리(窓外雨蕭蕭), 소록소록 그 소리는 자연의 소리러라(蕭蕭聲自然) 내 지금 자연의 소리 듣고 있으니(我聞自然聲), 내 마음도 또한 자연으로 가는구나(我心亦自然).’ (여중군자 장계향의 소소음)

영양은 예로부터 육지 속 섬으로 불렸다. 요즘엔 항일시인 오일도, 청록파 시인 조지훈, 소설가 이문열의 영향으로 ‘문향(文鄕)의 고장’이라 한다. 조선시대엔 지리적으로 경상좌도에 속했다. 학문적으로는 퇴계 이황의 영향을 받은 영남학파의 학문을 대대로 이어갔다. 퇴계의 학통으로 보면 영양은 이미 17세기 이후 문향의 고장이라 불릴 만했다. 퇴계 이황-학봉 김성일-경당 장흥효(장계향의 부)-갈암 이현일(장계향의 자)-밀암 이재(장계향의 손)-대산 이상정(장계향의 외현손)으로 이어지는 학통에 직·간접적으로 영양이라는 지역이 관여하고 있다.

영양은 지조를 지켜온 지역이다. 갈암 이현일(1627~1704)의 어머니는 정부인 안동장씨(1598~1680)다. 경당 장흥효 선생이 그녀의 아버지로 퇴계 이황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서애 류성룡·한강 정구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그녀는 아버지의 제자인 석계 이시명에게 출가했다.

이조판서를 역임한 아들 이현일이 쓴 ‘정부인 안동장씨 실기(貞夫人安東張氏實記)’를 보면 부인의 행실과 덕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자애로움과 엄격함으로 자녀들을 훈도했다. 서화와 문자에 뛰어나 훌륭한 필적을 남겼다. 흉년과 기근으로 민생이 참혹할 때엔 굶주린 사람의 구휼에 정성을 다해 인덕과 명망이 자자했다. 숙종 6년에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장계향은 영양 석보면 원리의 석계고택에서 말년을 보냈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족보에 관향만이 기록됐다. 정부인 안동장씨의 이름이 계향이란 사실은 2002년 지역 사학자인 배영동 교수(안동대 민속학과)가 장씨의 사당을 학술적으로 조사하다가 신위 뒤에서 우연히 그녀의 이름이 ‘계향’인 것을 발견하고 알려졌다. 조선 양반집 여인이 당호(堂號)가 아닌 당당한 이름 세 글자로 등장하게 된 순간이다. 그녀의 생(生)을 돌아보면 스스로의 뛰어남을 감추고 평생에 걸쳐 아버지와 남편, 아들들을 돕는 조선여자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73세(1670년)의 어느 날 내놓은 한글로 된 요리 레시피 한 권은 340여년이 지난 후 그녀를 역사적인 ‘유명(有名)’ 인사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음식디미방’에서 디미는 지미(知味)의 옛 표현으로 음식디미방은 ‘마시고 먹는 것의 맛을 이해하는 노하우’로 풀이된다. ‘음식디미방’은 그녀가 살았던 영양의 대표적인 문화브랜드로 떠올랐고, 정부 지원을 받아 지역 관광사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석보면 두들마을엔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이 있다. 교육원에선 각종 단체를 대상으로 음식디미방아카데미와 예절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을 찾아 옛 전통음식을 맛보며 선현들의 슬기로움을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

#셋째 날의 ‘자연’

일월산(해발 1천219m)은 그 넉넉한 품만큼 뭇 생명들이 어울려 산다. 그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인문학의 편린들이 일월산 자락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퇴계 이황은 “예로부터 명산의 절경이란 반드시 고인(高人)과 일사(逸士)가 은거하며 노니는 곳이었다”라면서 명산은 명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일월산 자락의 일월산 자생화 공원은 일제강점기 때 제련소와 선광장(選鑛場)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제련한 후 버려진 광미(鑛尾)로 뒤덮인 땅은 30여 년간 방치돼 있었다. 일월산 용화리 뿌리샘에서 발원하는 반변천의 지천인 문상천은 중금속으로 오염돼 물고기가 살지 못했다. 2001년 정비된 후 64종의 야생화와 1만여 그루 향토수종의 조경수를 심으면서 이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공원이 됐다. 하늘말나리 같은 희귀한 꽃과 고산 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일월산 ‘대티골 아름다운 숲 길’은 청송~영양~봉화~강원 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의 일부다. 총연장 240㎞ 13개 구간으로 연결된 길의 모양이 조지훈의 시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과 닮았다고 해서 ‘외씨버선길’이라 붙여졌다. 솔잎이 내려앉은 부드러운 길을 걷노라면 은은히 들리는 대티골을 흐르는 물소리와 숲 바람소리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길은 옛 국도를 따라 복원됐다. 대티골 사람들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자연은 본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티골 숲길은 2009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부문 어울림상을 수상했다.

일월산 자락의 주실마을은 350여 년 전 호은공(壺隱公) 조전 선생이 입향조인 한양조씨(漢陽趙氏) 집성촌이다. 같은 가문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축출되자 한양을 떠나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1630년쯤 조전 선생이 가솔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주실마을은 산골등짝이가 서로 맞닿아 이뤄진 마을이라 하여 주실 혹은 주곡이라 부른다.

실학자들과의 교류로 일찍 개화했고 일제강점기엔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한 지조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엔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재불차(財不借), 집안에 양자를 들이지 않는다는 인불차(人不借),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문불차(文不借)의 전통이 있다. 조지훈이 지조론으로 유명한 이유가 짐작된다. 마을 어귀의 주실 숲은 2008년 ‘제9회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았다. 수령 100년의 소나무와 25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느릅나무가 풍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주실마을을 찾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지훈문학관’이다. 조지훈을 후세에 길이 기리기 위해 2007년 5월 처음 문을 열었다. 문학관 내에는 지훈의 소년시절 자료, 청록집 관련 자료, 격정의 현대시 속에 남긴 여운, 지훈의 가족 이야기 등이 전시돼 있다. 조지훈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해마다 지훈예술제가 열린다. 올해는 조지훈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영양=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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