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리포트] 수사의 특성과 변호의 필요성

  •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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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7 07:25  |  수정 2018-09-21 14:35  |  발행일 2018-08-17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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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는 범죄혐의를 입증하고 범인을 발견·확보하는 국가기관의 특수한 활동이다. 그러나 수사는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장래의 형사재판에 필요한 인적·물적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의 출석을 담보하는 일종의 예비절차다. 뒤늦게 법원이 재판과정에서 증거를 압수한다거나 증인과 피고인의 신문을 통해 진실을 밝혀보겠다는 야무진 생각은 신기루와 같다.

이와 같이 재판에 앞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수사는 행정작용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은밀성, 강제성, 인권침해적 성질은 수사의 문제점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특성이기도 하다. 왜 수사는 은밀해야 하는가. 그리고 강제적이며, 인권침해적인 성질을 띠는가. 피조사자의 반대편에는 피해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피의자의 곁에는 그를 두둔하는 협조자가 있다. 그러므로 수사는 은밀히 진행되며 상당한 보안을 요하게 된다. 쉽사리 수사정보가 공개될 경우 이를 누설이라고 한다. 수사기밀 누설은 도주·증거인멸의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위해, 증인 및 증거의 변질을 초래하기 때문에 수사는 은밀성을 띠게 된다. 한편 피의자는 수사기관의 신사적인 출석요구와 신문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벌수록 증거는 산일될 가능성이 높고, 운이 좋으면 피해자나 참고인이 사망해 혐의소명이 불가능해지거나 혹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피의자 중에서 도주하는 사람이 많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가치를 훼손시키는 사람도 많다. 피해자에 대한 위해는 특가법에서 보복범죄로 가중처벌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수사는 일정부분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인권침해는 5·18 민주화운동에서와 같이 군이 침해세력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같이 수사기관이 주체가 되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수사의 특성이 비밀스럽고 강제적이라면 이제 피의자는 장래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심한 공포와 좌절에 빠질 수 있다. 수사와 재판은 1대 1 싸움이 아니다. 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多) 대 1의 싸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때 피의자가 비밀을 털어놓고 범죄사실의 이면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가족과 변호인뿐이다. 변호인은 기본권 보장을 위한 헌법상 기구 또는 중요수단이면서 한편으로는 통치작용의 정당화 수단이다. 정부에 소속돼 있지는 아니하나 독립해 자유롭게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동서를 불문하고 어느 시대에나 재판 없는 처형과 몰수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로마 원로원 의원 상당수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 법과 재판, 변호사의 역사는 매우 길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수사 적법성의 한계점에서 변호의 필요성은 시작되고, 변호인은 다음 호에서 소개할 구체적 수사변호절차를 이해하고 피의자의 효과적인 조력자가 돼야 한다.

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법학박사) www.broth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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