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 순대·연탄 석쇠 오징어 불고기·청포묵·토끼간빵 ‘용왕님도 반한 맛’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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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7   |  발행일 2018-08-17 제34면   |  수정 2018-08-17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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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직접 냉동시킨 선동오징어에 연탄불의 화근내가 스며든 ‘단골식당’의 오징어즉석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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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막걸리와 가장 궁합이 맞는 배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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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 순대보다 두꺼운 게 특징인 용궁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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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과 달리 매끈하고 부들부들한 청포묵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전국을달리는청포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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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복어’는 국내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맵지 않은 복어불고기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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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간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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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까지 내 명성을 떨치고 있는 600여년 수령의 석송령 자태.

한때 가장 큰 명성을 가진 소나무는 속리산 ‘정이품송’이었다. 하지만 2012년 태풍 볼라벤 때문에 적잖은 가지를 잃어버려 정정한 옛 자태를 볼 수 없게 됐다. 이후 정이품송의 자존심은 석송령이 살려준다. 높이 10m, 둘레 4.2m, 동서 길이 32m의 위용이다. 600여년전 홍수 때 마을로 떠내려 온 어린 소나무를 나그네가 건져내 개울 옆에 심어준 게 이만큼 자라났다. 호적에 등기되어 재산까지 갖게 된 건 1927년 8월부터. 그 사정이 퍽 흥미롭다. 당시 석평마을의 이수목은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죽으면서 재산의 절반 상당인 토지 5천588㎡를 주면서 영험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란 이름으로 등기토록 유언한다. 이후 토지관리대장에 엄연한 고유번호를 가지게 됐고 납세의무도 갖게 된다. 재산세는 10만원 남짓. 주민들이 토지를 공동경작해 재산세를 대납하고 있다. 당산목이라서 여러 고사 직후 주민들이 막걸리를 석송령 뿌리 주변에 뿌려준다. 그렇게 석송령이 1년에 받아먹는 막걸리가 10말 정도.

1년간 막걸리 열말 받아먹는 석송령
금당실 마을 토박이 맛집정평 백반집
대심정미소자리 문화와 호흡 백석카페

용궁시장 터줏대감·핫플인 단골식당
순대국밥·오징어·돼지·닭발구이 별미
토박이가 인정한 참기름집 시장제유소
설화 모티브 개발 토끼간빵·별주부빵

고춧가루 처음 뺀 한국관복어 복불고기
예천공항·방송 소개되면서 이름 알려

묵집으로 유명‘전국을 달리는 청포묵’
채 썬 청포묵, 갖은채소 함께 섞어 먹어


석송령과 동고동락하는 송림을 보려고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十勝地) 중 한 곳인 예천 용문면 금당실 마을로 간다. 예부터 마을에 금광이 있었다 하여 ‘금당실’. 전국에서 가장 긴 7.4㎞의 돌담길을 갖고 있다. 마을에서 ‘쑤’라고 부르는 소나무 방풍림은 상흔이 있다. 1892년 마을 뒷산인 오미봉에서 몰래 금을 채취하던 러시아 광부 두 사람을 마을 주민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 주민들은 고심 끝에 마을의 공동 재산이었던 소나무를 베어 러시아 측에서 요구하는 배상금을 충당했다. 그렇게 베어내고 나니 길이 2㎞가 넘는 송림이 800m 정도로 확 줄어들었다.

금당실은 2006년 생활문화체험마을로 선정돼 고택의 보강공사가 진행됐다. 10년전 고향으로 돌아온 사진쟁이 박정호가 일역을 했다. 서울에서 20여년 광고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귀향해 현재 금당실마을보존회 총무로 있다. 그는 슬로푸드에 관심이 많아 된장도 만들고 사진 찍는 법도 알려준다. 그가 금당실 마을의 숨은 맛집을 소개한다. 35년전 점촌에서 온 임옥자씨. 금당실의 대표 백반집인 ‘목마식당’을 운영한다. 이 집은 그의 단골 밥집. 경북 북부 지역의 대표 술안주인 태평추 같은 울림을 주는 김치찌개는 퍽 인상적이었다. 묵은지·돼지고기·두부의 앙상블 때문에 토박이한테 엄청 사랑받는다. 백반값은 아직 5천원. 그래서 주위 식당주로부터 눈총(?)을 받는다.

목마 지척에 있는 등대식당. 30년 구력의 보신탕집이다. 등대와 목마, 꼭 박인희가 낭송하는 박인환 시인의 시 ‘목마와 숙녀’를 연상시키는 식당골목 같았다. 이런저런 식당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용문식당은 중화요리 전문이고 오복식당은 농번기 ‘들밥’으로 유명하다. 젊은 토박이들은 심심하면 용문당구장으로 간다. 좀처럼 카페문화가 들어오기 힘들었던 금당실. 하지만 최근 사회복지재단에서 ‘백석카페’를 차렸다. 이 카페는 예천읍 대심정미소 자리에 들어선 대심 복합문화공간과 호흡을 같이한다. 거기를 지키는 서수원 대표는 박정호 총무와 계명문화대 사진영상학과 선후배 간. 죽이 맞을 수밖에.

◆용궁면의 미각을 찾아서

용궁면에 오면 다들 용궁순대를 먹고 간다. 용궁순대 발상지인 용궁시장 인근에 무려 11개의 이런저런 순대집이 포진해 있다. 터줏대감은 ‘단골식당’. 20년전에 작고한 초대 사장 김대순 할매의 손맛을 김정애, 박지은, 박철휘, 박경원 등 혈족이 이어받았다. 얼추 관련 업소가 6개 정도로 불어났다.

용궁순대가 전국구로 알려진 것은 2000년 9월18일부터 방영된 KBS2 월화 드라마 ‘가을동화’ 때문이었다. 이때 회룡포가 전국적 관광지로 떠올랐고 송혜교 등 출연진과 스태프가 자주 들렀던 단골식당은 졸지에 핫플레이스가 된다. 단골식당은 39년전에 처음 영업신고를 한다. 실제 장사를 시작한 건 56년전. 단골식당의 오징어불고기가 어쩜 순대국밥보다 더 별미로 보인다. 석쇠를 다루는 구석 조리실은 선풍기·에어컨 바람을 거부한다. 그런 바람은 맛을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연탄불 석쇠에서는 3가지 메뉴를 굽는다. 오징어·돼지·닭발이다. 초창기에는 조금 탄 듯해야 좋다 했지만 이젠 ‘탄음식=암’이란 등식 때문에 덜 태우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고수가 석쇠를 잡아야 된다. 오징어는 선동오징어가 좋다. 선동은 선어오징어·냉동오징어와 다르다. 잡는 즉시 배에서 급랭시킨 것이다. 냉동오징어를 사용하면 물이 많이 형성돼 졸깃한 맛이 덜해질 수밖에 없다.

용궁순대는 다른 곳보다 두껍다. 단골식당은 매주 화요일 순대를 충전한다. 당면, 파, 숙주, 부추, 선지, 생강 등이 들어간다. 단골 다음으로 인기 있는 데는 바로 옆에 있는 ‘두꺼비식당’이다. 이 식당은 한때 폐업했다가 재개업했다.

◆해묵은 참기름집과 토끼간빵

오징어불고기와 용궁순대를 뒤로하고 바로 지척에 있는 용궁면에서 가장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가게로 갔다. 바로 토박이가 가장 엄지척하는 해묵은 참기름집인 ‘시장제유소’다. 용궁면에서는 참기름가게를 ‘제유소(制油所)’라 한다.

참기름집 안은 빛이 안드는 북향집 마루 밑 같은 정경이다. 유독 여주인 임숙자씨의 눈빛만 초롱거린다. 착유기 옆에서 참·들깨를 볶고 있는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깨볶는 기기. 워낙 두꺼운 쇠로 솥을 만들어놓았기에 일반 가스불로는 제대로 화력이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다. 석유를 화력으로 사용한다. 참깨 한 주머니(3되) 3.6㎏ 공임은 아직도 5천원. 워낙 양심적으로 기름을 짜주기 때문에 심지어 서울에서까지 주문이 온다. 5년전 39세의 아들이 서울의 복지 관련 일을 그만두고 미래지향적일 것 같은 기름집으로 귀향 했다.

용궁순대가 급부상하자 예천군과 지역 이장들이 머리를 맞댄다. 예천군 대표 빵 만들기에 착수한다. 그렇게 해서 6년전 개발된 게 ‘토끼간빵’. ‘별주부전’ 설화를 모티브로 해서 토끼간빵을 개발한다. 브랜드빵 맛이라는 게 다들 이름뿐인 경우가 많은데 이 빵은 좀 다른 맛이다. 당분 조절에 성공했다. 경주 황남빵 계열의 맛이다.

처음 기술을 전수해준 기술자는 현재 용궁시장에서 별주부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제과제빵 전문가 박기수 사장. 그는 40년 구력의 빵 전문가. 그렇게 해서 현재 별주부빵집 맞은편에서 토끼간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새로운 토끼간빵 시대를 열려는 투자자가 나타났다. 예천은 물론 전국적으로 식초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사>한국전통식초협회장인 예천 초산정 한상준 대표다. 그가 토끼간빵 푸드스토리텔러로 나선다. 경북선(김천과 영주시를 잇는 115.2㎞ 노선으로 1931년 완공)의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인 용궁역은 이야기 있는 역으로 치장된다. 토끼간빵을 파는 빵집과 커피류를 파는 자라카페를 양편에 세팅했다. 용궁면에 가면 별주부빵과 토끼간빵을 다 먹어보시라.

◆복불고기 & 청포묵

대구십미 중 하나인 복어불고기. 원조업소는 미성복어다. 그런데 그 미성복어의 원형은 대구가 아니고 예천에 있다. 예천읍 노하리에 있는 ‘한국관복어’. 국내에서 복어불고기를 처음 개발한 업소다. 미성복어는 그 복불고기를 응용해 고춧가루가 들어간 복불고기 시대를 연다.

처음부터 복어는 아니었다. 2대 사장 김지훈씨의 모친 박영숙씨가 1987년 현재 자리에서 허름한 한정식을 오픈한다. 처음에는 국수에 쌈밥을 곁들인 ‘쌈장국수’를 유행시켰다. 그러다가 부부가 일본여행 중 복어샤브샤브를 접하게 된다. 당시 예천은 소불고기가 유행했다. 부부는 소고기 대신 복어를 베이스로 불고기를 만들면 괜찮을 것 같았다. 고춧가루와 고추장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그냥 채소가 넉넉하게 들어간 복불고기를 개발했다. 당면은 식감을 방해하기 때문에 뺐다. 처음엔 반응이 별로였다. 비싼 가격이 토박이한테는 부담이 됐다. 그런데 순풍이 불었다. 때맞춰 예천공항이 들어서고 1993년엔 한국관복어가 KBS ‘전국은 지금’에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진다. 평범해 보이지만 먹어보면 식감이 폭증한다. 쇠비름나물·마늘초무침·명이나물장아찌가 느끼함을 잡아준다.

예천과 문경은 의외로 ‘청포묵’이 강하다. 여긴 중부와 남부의 묵문화가 충돌하는 구역이다. 예천에서 가장 유명한 묵집은 예천읍 남본리 ‘전국을달리는청포묵’이다. 문경에서 청포묵으로 유명한 문경새재 초입의 ‘소문난식당’은 묵조밥 스타일이다. 예천의 이 집은 스타일이 좀 다르다. 갖은 채소류에 채를 썬 청포묵을 잡채처럼 섞어 먹도록 한다. 문경의 청포묵은 예천보다 투박하다. 여기는 매끈거린다. 그리고 무색무취라서 향미를 가진 다른 식재료와 잘 섞인다. 그래서 ‘탕평채’란 이름을 갖게 된다. 유래도 있다. 조선조 정조가 당쟁을 일삼는 대신을 조정에 초대해 청포묵 요리를 대접했다. 이 요리는 관리들이 합심의 정치를 해줄 것을 기원하는 ‘탕탕평평채(蕩蕩平平菜)’였다. 줄여서 탕평채. 1954년 문을 열었고 1996년 김호근·양종례 부부가 가업을 잇는다. 아직도 녹두를 삶아 거피하고 맷돌에 갈아 앙금을 얻어 40분가량 솥에서 끓여 식히는 전과정을 아내가 감당한다. 청포묵을 먹었다면 마지막으로 곤충요리도 맛봐야 예천푸드로드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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