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식감 별별 곤충푸드·땅속 옹기에서 숨쉬는 천연발효 식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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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7   |  발행일 2018-08-17 제35면   |  수정 2018-08-17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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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식초협회장 이기도 한 한상준 초산정 대표는 종일 빛이 들지 않는 숙성실에 파묻혀 숙성 중인 식초 항아리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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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도시 예천군. 한국 곤충푸드의 신지평을 연 지보면 소화리 덕유당 덧재한과가 개발한 고소애로 만든 떡·유과·정과·약과류. 작은 사진은 곤충푸드의 대표 식재료인 고소애.

예천군은 세계곤충엑스포를 열 만큼 전국에서 곤충 밀도가 가장 높다. 1천300여종의 곤충이 존재한다. 1997년 최경 팀장, 권천락 농촌지도사, 이수진 농업연구사 등에 힘입어 국내 첫 예천곤충연구소가 지보면 소화리에서 개소된다. 2014년은 특별한 해다. 그해 국내 첫 ‘곤충푸드 고장’에 예천이 등극했기 때문이다. 메뚜기튀김이 고작이었던 국내 곤충푸드시장. 거기에 신지평이 열린 셈이다. 그해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제1회 곤충요리 경연대회와 시식체험행사가 열렸다. 지보면 양미순씨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파트너는 곤충영농조합 예천곤충나라 백순화 대표. 둘은 곤충을 원료로 식품을 개발해 출품했다. 곤충요리 주재료는 식품원료로 등록된 고소애(갈색거저리), 메뚜기, 누에번데기, 흰점박이꽃무지(굼벵이) 유충, 장수풍뎅이 유충, 귀뚜라미 등 6종. 2004년 한과에 입문한 양미순 덧재한과 대표는 8년 전 전통한과를 직접 만들고 시식할 수 있는 체험형 한과 전문 한옥카페 ‘덕유당’을 오픈했다. 그곳의 브랜드는 ‘덧재한과’. 차와 커피에 가장 어울리는 간식은 역시 곤충쿠키. 덧재한과에는 고소애와 흰점박이꽃무지를 갈아 만든 분말 5%가 함유되어 있다. 한과 특유의 달콤함에 새우과자 같은 고소한 곤충의 풍미가 더해져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양 대표는 “곤충은 슬로푸드 예찬자, 미식가 등에겐 최상의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곤충을 혐오스럽게 보는 이들도 적잖다. 곤충푸드도시 예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다양한 테이블세팅을 통해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천 고소애 스토리

예천에 오면 ‘고소애’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고소애는 식용곤충으로 대표적인 절지동물 딱정벌레목에 속한 갈색거저리의 별명. 예천에는 고소애를 키우는 전문 사육 농가가 50여 군데가 된다. 이놈은 유충일 때 마치 쌀벌레처럼 생겼다. 길이는 3㎝ 정도. 원통형의 몸을 꿈틀거리는 모양이 딱 그렇다. 이 녀석을 입에 넣고 꼭꼭 씹으면 새우만큼 고소한 맛이 나기 때문에 갈색거저리 애벌레는 고소애로 불리게 된다. 고소애는 약방의 감초다. 별별 곤충푸드에 다 들어간다. 고소애를 덩어리째로 넣어 조리한 고소애 전, 고소애 튀김, 고소애 가루를 넣은 삼계탕과 고소애 국수, 심지어 고소애 아이스크림도 개발되었다.

누에 역시 고소애와 더불어 대표적인 식용곤충이다. 특유의 비릿한 맛이 섞여 있어 진액으로 만들어 마시거나 환 또는 분말 형태의 식품보조제로 활용된다. 누에는 고소하면서 쌉쌀한 맛을 낸다. 한때 지보면에 가면 곤충음식을 판매하는 식당과 카페도 있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인 것 같다. 대중화에 애로를 먹고 있다.

◆소나무바위 정기를 담은 초산정 식초

용궁면 송암리. 송암(松岩), ‘소나무바위’를 가진 동네다. 이 마을은 얼마 전부터 ‘식초촌’으로 불린다. <사>한국전통식초협회 회장 겸 서울식초학교장으로 있는 한상준씨 때문이다. 육군 포병대위로 제대한 그는 한때 서울에서 전도가 양양한 IT회사 기술자였다. 하지만 식초유전자 탓인지 그는 서울생활에 쉬 지쳐버렸다. 그런 그가 고향으로 내려온다. 12년 전이다.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식초를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집에서 술을 담그지 못하게 한다. 광복 후에는 경제가 어려워 우리 고유의 가양주 상당수가 사라지면서 술을 근본으로 한 식초마저 멸종될 위기였다. 그는 그걸 자기 식으로 복원하고 싶었다.


갈색거저리 애벌레 ‘고소애’재료 사용
새우과자 맛의 달콤한 한과·곤충 쿠키
전·튀김·삼계탕·국수·아이스크림 개발
환·분말 형태 누에, 식품보조제로 활용

용궁면 ‘식초촌’ 귀향 한상준씨
간 해독·당뇨 도움 자연발효 식초 눈떠
숙성실 510개 항아리…1∼3년생 포진
지역 생산된 오곡으로 만든 ‘오곡미초’
전통식초 12가지 보급…신지식인 인정



용궁면으로 내려오기 전 제일 먼저 생각한 게 있다. 부모와 이웃들이 힘들게 지은 농산물을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우연히 자연발효 식초를 접하게 됐다. 농산물로 몸에 좋은 식초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4년간 식초를 공부했다.

파고들어보니 모르는 것투성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자연발효 식초가 사람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간 해독과 당뇨 등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몸에 좋은 식초인데 한국에서는 음료보다는 부엌 찬장 안의 여러 가지 조미료 중 하나로 쓰이고 있어 그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잠자리 머리맡에 작은 수첩을 두고 꿈에서라도 식초 정보를 만나면 자다가 일어나 메모했다. 누군 그를 식초교의 교주로 보기도 했다.

일단 집 한쪽에 식초를 담을 예전 초두루미(전통 식초항아리) 같은 8말(160ℓ)짜리 옹기를 하나씩 나무처럼 심어나갔다. 종일 그늘인 숙성실에는 무려 510개의 식초 항아리가 머리만 드러내고 앉아 있다. 1년생부터 3년생까지 다양하다.

“TV드라마 대장금을 보면 장금이 모친이 땅에 묻어둔 식초 항아리에서 식초를 떠 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장식 식초가 아닌 천연식초인 만큼 예전 방식대로 식초를 관리하기 시작했죠.”

10년 전만 해도 전통 항아리 하나가 30만원이 훌쩍 넘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물론 관리하기도 힘들어 항아리도 여러 독 깨먹었다. 이후 관리하기 쉽고 온도 조절하기도 쉬운 스테인리스 통으로 바꿨는데 아니었다. 항아리에서 숙성시킨 것보다 맛과 향이 덜했다. 다시 항아리로 돌아왔다.

좋은 식초는 좋은 누룩에서 온다고 생각해 누룩실, 누룩발효실, 알코올발효실, 초산발효실을 하나씩 특화시켜나갔다. 식초는 술에서 시작된다. 술이 잘 쉬면 식초가 되는 거다. 옛날 할머니들은 요리에 사용하는 식초를 슈퍼에서 사지 않고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막걸리를 따뜻한 부뚜막에 올려두면 얼마 안 지나 시큼한 식초로 변한다. 초산균이 막걸리의 알코올을 산화시켜 식초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맛이 난다고 해서 다 식초는 아니다. 부패된 음식에서 신맛을 내게 하는 부패균이나 젖산균이 아닌 초산균이 번식해 발효해야만 건강한 식초를 만들 수 있다.

그가 식초의 종류를 알려준다.

“식초는 크게 합성식초, 양조식초, 천연식초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합성식초는 석유에서 뽑은 빙초산을 물에 희석하거나 초산균으로 발효한 에틸알코올과 섞어 만들죠. 여기에 당질, 물엿 등으로 단맛을 내면 하룻밤 만에 식초가 만들어집니다.”

가공이 쉽고 원료도 저렴하다는 이유로 일본과 독일 등에서는 공업용으로 쓰이고 있다. 양조식초는 다시 주정식초와 천연식초로 나뉜다. 우리가 가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주정식초는 에탄올에 초산균을 넣어 하루 이틀 만에 속성으로 발효시켜 만든다. 사과식초는 에탄올 희석액에 사과농축액을 첨가해 만든다. 에탄올로 만든 주정식초에는 초산은 있지만 식초의 또 다른 주요 영양성분인 비타민과 유기산은 매우 적다는 것이 단점으로, 원료 자체만으로 발효하는 천연식초보다 영양가가 많이 떨어진다. 그에 비해 천연식초는 유기산을 비롯해 다양한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고 잘못된 식습관으로 생긴 질병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는 지역에서 생산된 오곡(현미, 찹쌀, 보리, 차조, 기장)만 갖고 ‘오곡미초’를 만든다. 특히 현미는 ‘백진주’라는 품종의 반찹쌀 종으로, 이것으로 식초를 만들면 맛이 훨씬 좋다고 한다. 보급종은 아니기에 그가 3년에 한 번씩 직접 모종을 만들고 인근의 농부들과 계약 재배를 통해 친환경 곡물을 구입해 식초를 만든다. 식초를 만드는 과정은 먼저 오곡을 가볍게 세척한 뒤 한나절 동안 깨끗한 물에 불려둔다. 불린 오곡은 한 시간 정도 쪄 따뜻한 기운이 약간 남을 정도로 식힌다. 식힌 오곡에 누룩곡과 엿기름을 일정한 비율로 넣어 섞은 뒤 따뜻한 곳에서 하루 정도 숙성시켜 식혜를 만든다. 완성된 식혜를 이용해 일주일 이상 발효시켜 술을 빚는다.

이렇게 완성된 술을 두 달 이상 발효시켜 식초를 만든 후 다시 땅속에 묻은 항아리에서 1년 정도 숙성시키면 부드러운 식초가 완성된다. 식초를 항아리에 넣어 숙성시킬 때에는 공기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항아리 입구를 랩으로 꼼꼼하게 막아두어야 한다. 식초가 공기와 접촉하면 맛은 독해지고 색도 진해진다.

12가지 각종 식초를 보급했다. 덕분에 2008년에는 농림수산식품부 및 한국식품연구원과 함께 한국의 전통식초 규격을 만들어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으며 직접 만든 식초는 품질을 인정받았다. 이렇게 좋은 우리 식초인데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중국은 1인당 식초 소비량이 우리나라의 4배, 일본은 200년 이상 식초를 만들어온 양조장도 꽤 많다. 아직 우리의 전통발효식품은 갈 길이 멀다. 그도 마찬가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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