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시골 장터 이야기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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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1   |  발행일 2018-08-21 제31면   |  수정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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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이 농촌이라선지 시골장터 가기를 즐긴다. 평일보다는 한가한 주말이나 휴일에 가는 경우가 많다. 살고 있는 지역 인근에는 아직도 오일장이 선다. 4일과 9일이 하양장이고 2일·7일이 영천장, 3일·8일이 자인장이며 5일·10일이 경산장날이다. 오래전에는 1일과 6일도 장이 열렸는데 지금은 파장된 진량장이나 압량장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한가한 날에 맞는 장터를 따져보고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무작정 들른다. 딱히 무엇을 사러 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온 적도 없다.

봄날에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산과 들에서 장만해온 나물을 다듬는 모습으로 장터 시작부터 도란도란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여름에 들어서면 옥수수 삶는 구수한 냄새가 침을 삼키게 한다. 즉석 어묵집은 시장 내에서 인기 품목이라선지 여러 노점이 있고, 순대나 족발 가게에서도 주인 부부의 손길이 늘 분주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들렀던 국밥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여느 시장이나 좋은 위치에 자리하는 생선가게 주인은 비릿한 장갑을 끼고 생선을 손질하여 주고 돈을 받는 손길이 그 옛날과 다름이 없다. 시장과 붙어 있는 화장품 가게 아가씨는 봄 장날에 가게 앞에 노점을 열고 꽃씨와 여러 채소 씨앗을 팔며 눈길을 끈다. 동네 치킨 집과는 다른 시장표 통닭집은 시장 유람의 마지막 코스가 된다. 튀김 닭과 소주 한 병을 먹고 1만2천원을 지불할 땐 만족과 미안함이 함께 스며 나온다. 양손에는 이미 가볍지 않은 비닐 꾸러미를 들고 있고 그 속에는 행복과 추억이 들어있다.

가끔 가족의 손에 이끌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도 간다. 물론 장터에 가는 횟수에 비하면 매우 적다. 일년에 2~3회 정도다. 대개 식구들이 데려가지 않으려 하고 나도 전혀 가고 싶지 않다. 쇼핑이 끝나고 식사를 함께해야 할 경우에 부득이 동행하는 정도라고 생각된다. 넓은 주차장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탈 때부터 가족에게 끌려온 티를 내며 뭘 살 거냐, 몇 분 만에 쇼핑을 마칠 거냐고 묻는다. 옷 가게에 형식적으로 따라 들어가서는 한번 둘러봐 주는 흉내를 내고는 이내 나와서 딴짓을 한다. 식료품 가게는 그나마 구경거리가 있어 함께 카트라도 밀어주지만 한계 시간은 10분 정도를 넘지 못한다. 카트를 끌고 미리 계산대에 와 버리기 일쑤이고 식구들은 미처 담지 못한 우유랑 빵, 채소를 들고 쫓아온다. 쇼핑을 마치고 들른 퓨전 일식집의 모듬 초밥과 우동에 곁들인 정종도 시장표 통닭과 소주에 비해 그리 달지 않다.

오래전 대형마트가 없고 백화점은 큰 도시에 한두 개 있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에도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아니고 구멍가게라 하는 작은 소매점이 있을 뿐이었다. 부모님은 오일장을 기다려 과일과 곡식을 내다팔아 옷가지와 생선을 샀으며, 명절에는 차례용품과 아이들 설빔을 장만하는 곳이 시골 장터였다. 주름진 할머니의 손길로 손자들의 용돈을 마련하는 곳도 그곳이었다. 그 시절의 장터는 분명히 그 지역의 소비뿐 아니라 서민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시대가 변해가면서 우리의 생활 방식도 바뀔 수밖에 없다. 소득이 변하고 소비의 방법이 변했다. 대형마트의 다양함과 인터넷쇼핑몰의 편리함을 우리의 전통시장이 이기기는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장 현대화사업을 통하여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활성화가 쉽지 않다. 중년이 넘는 우리 세대들은 대부분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향에서 태어나 타향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골 장터는 우리의 또 다른 고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끔씩 우리 도시 주변에 있는 장터 유람을 권하고 싶다. 그곳에는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 삼촌, 이모가 아직도 계신다. 그분들이 계실 때까지라도 가끔 찾아뵈었으면 한다. 물론 앞으로도 그분들이 계속 계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홍표 (홍성건설 대표 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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