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시골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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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2


평균수명이 100세인 시대

탈도심 입농촌족은 급증세

성공적인 귀농귀촌되려면

농사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토박이 마음 이해가 우선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도시인이 촌놈 되는 것. 우주선이 지구를 벗어나는 것만큼 어려울 것 같다. 시골풍경은 희극이지만 시골생활은 사실 비극적 요소가 다분하다.

예전에는 시골이 가난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은 점차 ‘여유’의 상징이 되고 있다. 요즘 그런 도시인의 일탈욕구를 부추기는 각종 ‘탈도심 입자연(脫都心 入自然)’ TV프로그램이 붐이다.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가 가장 강력한 반향을 준다. 멍하니 그것만 뚫어지게 보면 ‘언젠가 나도…’라며 독백하는 막막한 중년이 적잖다.

2010년부터 탈도심을 결행한 귀촌(귀농)인이 많아지고 있다. 군위에는 그런 사람을 위한 6개월 과정의 경북농민사관학교도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별장이 도시인의 시골누리기 교두보였다. 대다수 왜곡된 파티, 로비 장소 등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젠 권위주의적인 별장도 한물갔다. 별장 자리에 소담스러운 통나무집, 노출콘크리트조로 지은 모던한 갤러리 같은 집, 그리고 펜션 등이 피어났다. 착한표 말년의 공간이랄까.

요즘 귀촌인과 현지인 사이에 깊은 갈등의 골이 패어 있다. 최근 봉화군 소천면에서 발생한 한 귀농인의 엽총난사 사건. 과수원에 물 대는 문제로 이웃과 불화를 일으켰고 결국 살인사건으로 번졌다.

아무도 오지 않는 첩첩산중에 사는 자연인이야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문제는 토박이가 밀집된 시골로 들어갈 경우다. 숙지하면 이득이 되는 ‘귀촌인 필살기 에티켓’이 있다. 어르신 대다수는 평생 생존을 위협받으며 지금 터전을 일구며 살아온 분들이다. 그래서 극도로 보수적이며 평당 가격 앞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을 정도로 이재에도 예민하다. 도시인에 대한 피해의식도 있다. 그러면서도 다들 정에 굶주려 있다.

대다수 어르신은 가방끈이 짧다. 하지만 세상 읽는 안목은 프로9단. 도시인이 거두절미하고 이들을 가르치려 하는데 그럼 정 맞는다. 그들을 먼저 존경하는 맘이 없으면 어르신은 맘을 닫아 버린다. 그때부터 시골살이가 깜깜해진다. 평소 인사 한 번 없이 혼자 잘난 척하며 다니다가 명절이나 복날 때 면피용으로 수박 한 덩이 내밀어도 그걸 진심으로 보지 않는다.

시골에 도시인이 무임승차해선 안된다. 거기 살기 위해선 토박이 어르신 이해하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텃세도 인정해야 된다. 그래야 귀촌에 성공할 수 있다.

시골에선 논리적 이성보다 감정(정)이 몇 배 더 중요하다. 소통은 곧 ‘밥통’. 토박이와 자주 밥을 나눠야 된다. 말보다 맘의 소통이 더 빛을 발한다. 여행하듯 시골에 살려면 자칫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또한 나름 보스적 기질을 가진 이장과도 공감대를 가져야 된다. 내 돈 주고 시골가서 살려는데…. 그런 욱하는 심정이 들면 그냥 도시에서 살아라. 차라리 도시에서 살며 한 번씩 시골에 놀러가는 게 백 번 더 낫다.

시골에선 할머니·할아버지보다 ‘할매·할배’가 더 정감있다. 그냥 데면데면 인사하는 것보다 어르신 손을 한번 잡아줘보라. 읍내 나갈 때 담 너머로 ‘필요한 물건이 없냐’며 살갑게 물어봐주라. 차도 한 번씩 태워주고. 어르신은 부리나케 내 편이 될 것이다. 한 개 주면 열 개 돌아오는 데가 시골이다. 어르신은 농사의 달인들. 책에 없는 온갖 비법, 맘이 통하면 아낌없이 그 비법을 전수해 줄 것이다.

시골은 독락(獨樂)보다 ‘동락(同樂)’해야 된다. 어르신들은 새벽같이 경운기 몰고 논밭으로 나가고 밤 9시만 되면 다들 꿈나라로 간다. 귀촌인이 도시 친구 불러모아 자정 넘어 바비큐 파티하고 늦잠 자는 식으론 눈총받기 십상이다. 심야 색소폰 연주는 흉물이고 당장 민원감이다. 도시에선 필요한 물건을 수시로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시골은 아니다. 동고동락해야 될 게 지천이다. 고고하게 폼 내려면 시골에 안가는 게 상책. 그냥 팜스테이 정도에서 멈춰야 된다. 도시인은 시골에서 폼잡지 마라. 폼은 곧 ‘덫’이다.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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