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영의 시중세론] 판문점선언의 대의와 당리당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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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4   |  발행일 2018-09-14 제22면   |  수정 2018-09-14
경계선 안에만 머문 정치권
당리당략 벗어나는 게 중요
판문점선언은 비준동의를
비핵화 프로세스 진입 위해
강력한 제도적 기반 갖춰야
[최철영의 시중세론] 판문점선언의 대의와 당리당략
대구대법학부 교수·대구시민센터 이사장

로마가 말하면 논쟁은 끝난다. 이 말은 종교국가시대였던 중세 유럽에서 교황의 최종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교황의 한마디는 시중세간의 엇갈리는 주장과 헛소리들을 정리하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 민주사회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러한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의를 앞세운 백가쟁명(百家爭鳴)과 시기와 질투가 깔린 당리당략적 발언이 여기저기에 질펀하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다.

며칠 후면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국가수반의 바쁜 일정을 고려하면 남북정상의 만남이 일상화 수준이다. 북미 간의 추가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올 연말 이전에 또 한 번의 만남도 예상된다. 한반도의 평화를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희망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평양 방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판문점선언의 국회비준동의 문제 때문이다. 정부는 국회에 판문점선언의 비준동의를 요청했다. 여당은 신속하게 처리하고 싶어 하고 야당들은 아예 비준동의 반대를 외치거나 신중론을 펼친다. 그 와중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추석민심을 노린 정략적 정치이벤트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종의 ‘북풍’이라는 거다.

여당에서 국회비준동의는 단지 법적인 절차라는 주장은 야당이 당연히 동의해주어야 한다는 압박이다. 정부여당의 오만과 야당에 대한 무시가 풍겨져 나온다. 정치적 논의와 법적 절차 사이의 무분별도 문제다. 제1 야당은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한 비준동의는 어불성설이라는 태도다.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에 관한 여야 간의 답답하고 객쩍은 논쟁은 정상회담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남북간의 합의는 그 법적 성격이 모호하다. 국제법상 조약이라면 상호간에 국가성을 인정하게 되고 이는 우리 헌법과 판례 그리고 그동안의 남북간 합의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이를 정치적 합의로 치부해 버린다면 합의에 당사자들이 구속되지 않게 된다. 합의에 대한 부담감이 약하니 정권이 변하면 합의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거나 합의를 깨버리게 된다. 실제로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한반도 평화번영선언은 이명박정부에 의해 무효화선언이 이루어지고 남북관계는 파탄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문제 때문에 남북관계발전법은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거나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간의 합의에 대해 국회비준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담보해서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규정이다. 정부 일각과 청와대의 대북정책을 자문하는 학자들의 정치적 주장과 달리 판문점선언은 법적으로 국회비준동의 대상이 되는 합의인 것이다. 하지만 판문점선언이 국회의 비준동의 대상이 되는 남북간 합의라는 법적 판단 때문에 야당이 반드시 동의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의 조약도 국회의 비준동의 과정에서 부결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큰 실체로서 북한과의 합의에 대하여 치열하게 논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비준을 부동의하여 국회가 정부에 대한 견제권을 행사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문점선언에 대하여 국회는 비준동의를 해줘야 한다.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를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와 상호 교환하겠다는 것은 비핵화의 프로세스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동결, 신고, 사찰, 검증, 폐기라는 과정이 필요하고 각각의 단계에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긴 프로세스에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단 비핵화의 프로세스에 진입하게 되면 이를 거스르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비핵화 프로세스 진입을 결심하기 위한 정치적 또는 경제적 큰 한방이 필요하다. 국회의 비준동의는 판문점선언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향후 이행을 위한 강력한 제도적 기반으로 역할하게 된다.

한반도는 새로운 그리고 담대한 평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와 여야 정당은 각각의 경계선과 벽 안에 머무른 채 지금까지 해왔던 당리당략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화를 위해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대구대법학부 교수·대구시민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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