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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남 화순 창랑·물염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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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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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이 자주 들러 詩 읊던 곳…물염정 배롱나무는 기억할까

창랑적벽. 적벽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응회암질의 단애다. 창랑리 창랑마을은 동복댐의 건설로 수몰되었다.
물염정의 배롱나무 기둥. 1981년 중건 때 마을사람들이 아꼈던 나무를 기증해 다듬지 않고 썼다(위). 물염정 아래에 있는 김삿갓 시비와 동상. 그는 이곳을 자주 찾아 시를 읊었고 동복천변에서 세상을 떠났다.
경남을 지나는 내내 비는 제멋대로 흩날리더니 전라도 땅에 들자 거짓말처럼 햇빛이 쨍하다. 뒤척이는 계절이다. 길가 가로수, 배롱나무가 흔하다. 남도의 여름은 배롱나무 꽃이라더니. 어린 나무는 일찍 꽃을 피우고 늙은 나무는 늦게 꽃 핀다는데, 오늘의 배롱나무 꽃은 여름의 마지막 얼굴인 듯하다. 한길을 벗어나자 좁은 천을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진다. 천과 길 사이는 철망으로 엮은 담이 서 있어 어쩐지 삼엄하다. 내가 지나가면 천은 일제히 철망으로 달려들어 내다본다. 그리고는 씨줄과 날줄에 걸려 수천의 조각으로 부서진다. 길섶 수풀에 숨어있던 산새가 푸득 달아난다. 어디선가 나타난 꿩이 텅빈 길을 유유히 가로지른다.

◆창랑적벽

길이 날듯이 상승하는 천변에 제법 으리으리한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아래에서부터 솟구쳐 오른 배롱나무 꽃들이 일제히 그 자그마하고 풍성한 얼굴을 흔들고, 그 너머로 저편의 절벽이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연다. 창랑적벽(滄浪赤壁)이다. 대단한 충동이 한 번에 정지되어버린 듯한 요지부동의 단애다. 그것은 물과 불과 바람의 폐허 위에 기울어진 신전, 초석은 물에 잠기었다.

천은 창랑천,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는 뜻이다. 창랑. 혀 끝이 입천장을 스치며 명랑한 소리를 낸다. 창랑천 굽이 따라 크고 작은 태고의 절벽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창랑, 물염(勿染), 장항(獐項, 노루목), 보산(寶山)적벽으로 이들을 ‘화순적벽(和順赤壁)’이라 통칭한다. 1519년 기묘사화 때 화순 동복에 유배되었던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가 ‘적벽’이라 이름 붙였다. 소동파가 선유하며 노래했던 중국의 적벽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창랑천 굽이따라 크고작은 태고의 절벽
동복댐 건설로 창랑마을 등 15곳 수몰
적벽 응회암 기울어진 단층면 푸른생명

창랑적벽 크게 한 굽이 도니 물염적벽
붉은 꽃사이 헤쳐나와 선 정자 ‘물염정’
다듬지 않은 배롱나무 정자 기둥사용
물에 비치는 청산 노래한 수십개 편액
수많은 객들, 정자·적벽 찬하며 詩文



창랑천은 무등산에서 발원한 영신천(靈神川)과 만나 동복천(同福川)이 된다. 1985년 동복천에 댐이 들어섰다. 15개 마을이 수몰됐고, 창랑마을도 그중 하나다. 물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담에 둘러싸였다. 가장 아름답다는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도 담 안에 갇혔다. 일주일에 세 번, 예약된 사람들만이 정해진 차를 타고 들어가 볼 수 있지만 100만 명 이상이 이 물에 기대 산다. 고립된 아름다움은 아쉬워함이 부질없다. 전망대 앞에 창랑적벽의 옛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천변은 너른 들이었다. 배롱나무는 들의 가장자리 혹은 마을의 언덕진 곳에서 자랐을 것이다. 낮은 들은 물에 잠기었고 키 큰 나무는 수몰되지 않았다. 물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천은 소리가 없다.

적벽은 중생대 백악기에 무등산(無等山) 일대에서 분출한 화산의 산물이라 한다. 이때 분출된 화산재 등 쇄설물이 주변에 차곡차곡 쌓여 바위가 됐는데 그것이 곧 응회암(凝灰巖)이다. 보통 응회암은 잿빛이지만 적벽의 응회암은 과거 지하에서 열수(熱水)의 영향을 받아 붉어진 것이라 한다. 나는 왜 적벽이 붉게 보이지 않을까. 듬성듬성 드러난 빵 빛깔은 태양에 그을린 기미 같다. 화산재가 켜켜이 쌓인 과정은 적벽에 고스란하다. 층리는 물속으로 미끄러지듯 기울어 있는데 수평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힘을 받아 어긋난 정단층이다. 기울어진 단층면에 푸른 생명들이 자라나 있다.

◆물염적벽과 물염정

창랑적벽에서 크게 한 굽이를 돌면 물염적벽이다. 길 따라 들어서면 먼저 아우성인 것이 역시 배롱나무 꽃이다. 장밋빛 꽃들 사이를 헤쳐 들면 정자 하나가 서있다. 물염정(勿染亭)이다. ‘물염’은 조선 중종과 명종조에 성균관전적 및 구례, 풍기군수를 지냈던 송정순(宋庭筍)의 호로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마라’는 뜻이다. 그는 몇 번의 관직생활 뒤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은거했다. 그리고 외손인 나주나씨(羅州 羅氏) 무송(茂松)과 무춘(茂春) 형제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다. 현재의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건물로 1966년과 1981년에 중수하고, 1996년에 지붕을 교체한 것이다. 전면의 기둥 하나가 특이하다. 다듬지 않은 그대로의 배롱나무다. 정자를 중건할 때 마을사람들이 아꼈던 나무를 기증해 썼다 한다. 어느 날 잔가지가 뻗어 나와 꽃이 필지도 모르겠다.

정자 내부에는 수십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나무송이 지은 원운(原韻)을 비롯해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과 동생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단암(丹巖) 민진원(閔鎭遠), 사애(沙厓) 민주현(閔胄顯),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매천(梅泉) 황현(黃玹) 등 수많은 객들이 정자와 적벽을 찬하여 남긴 시문들이다. 정자 아래쪽에는 김삿갓이라 불린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의 시비와 동상이 있다.

‘네다리 소나무소반에 한 그릇의 죽/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그렇다고 주인은 무안해 하지를 말게/ 나는 청산이 거꾸로 물에 비치는 것을 사랑하니.’ 이곳을 자주 찾아 시를 읊었던 그는 동복천변 구암리에서 객사했다.

물염정이 내다보는 물염적벽은 우거진 식물들에 뒤덮여 청벽이다. 청산이 거꾸로 물에 비치는 것을 보고자 하나 흡족할 만큼 다가서지 못한다. 바라보는 것도 단애, 서 있는 발밑도 단애다. 나무송의 시에 ‘아이들은 낙엽 모아 붉은 밤을 굽고/ 아내는 국화 따 술에 띄우네’라는 구절이 있다. 훗날 매천은 ‘단풍 든 깊은 산촌엔 가을 탁주가 그만일세’라고 차운했다. 김삿갓은 ‘장유적벽(將遊赤壁) 탄유객무주(歎有客無酒)’라 하여 적벽에서 노닐다 술이 없음을 한탄했다.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도장에는 ‘유주학선(有酒學仙) 무주학불(無酒學佛)’이라 새겨져 있다.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는 뜻이다. 신선을 배우면 훨훨 날아 적벽을 탐할 수 있을까.

나룻배를 타고 적벽 가까이에 코를 대고는 까마득한 벼랑을 올려다보거나 물결에 배 맡기고 탁주에 취하여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너른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거나 천렵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신선되기가 훨 쉬웠을 듯도 하다. 뜨거운 돌의 맛, 차가운 물의 맛, 달콤한 숲의 맛에 취하나 쓰러지지는 않는다. 오늘날 적벽 앞에 서는 것은 부처를 배우는 일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방향으로 간다. 순창IC에서 내려 27번 국도를 타고 곡성, 화순 방향으로 남하한다. 곡성 옥과의 평장 삼거리에서 우회전, 연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5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다 화순 다곡리 다곡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물염로다. 창랑적벽이 먼저 나타나고 곧이어 물염정과 물염적벽을 만날 수 있다. 적벽 앞쪽에 주차 공간이 있다. 2014년 개방된 노루목적벽은 현재 일주일 세 번(수, 토, 일) 예약한 사람만 관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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