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버들식당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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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4   |  발행일 2018-09-14 제41면   |  수정 2018-09-14
반세기 동안 끓여온 ‘대구 곱창전골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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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보다 곱창전골에 치중한 버들식당. 사골육수에 쌀뜨물을 섞어 천연적인 단맛을 낸다. 초창기엔 놋쇠 용기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돌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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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당시 성당못 도축장 근처에서 영업을 시작해 지역의 곱창전골 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달서구 성당동 버들식당. 1대 사장 박옥자, 2대 유희옥, 3대 채병두, 그리고 증손자 채현서까지 곱창패밀리가 모처럼 한 자리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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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부터 2시간 브레이크 타임을 가질 때 사장이 휴식을 취하는 방. 여닫이 방문이 눈길을 끈다. 반세기 이상 수리 한번 하지 않고 1960년대 디자인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곱창전골의 리더 대구 버들식당

현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막·곱창집은 달서구 성당1동 이월드 남쪽 끄트머리 바로 옆 골목 안에 있는 지역 곱창전골의 리더인 ‘버들식당’. 영남이공대 맞은편에 있던 ‘황금막창’도 지역의 터줏대감이었는데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구역별로 나름대로의 단골층을 형성한 고수급 식당이 수두룩하다.

두류공원 네거리에서 이월드 방향으로 직진하자마자 첫 골목에서 예수병원 쪽으로 우회전. 오른쪽에 버들식당이 보인다. 2층 적벽돌조로 지은 건물은 거의 반세기를 맞이해 아주 퇴락한 모습을 보인다. 꼭 일제강점기 유명 청요리 집 같은 느낌이 든다.

올해 미수(88)를 맞았지만 여전히 가게를 지키고 있는 박옥자 여사. 일에서 완전 손을 뗐지만 그 편한 아파트도 마다하고 2층을 고쳐 살고 있다. ‘일이 곧 자신’이었던 시절을 산 억척인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누추한 곳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1969년 4월18일 현재 북구 유통단지에 있는 ‘신흥산업’이 조금은 재래식이었던 성당못 도축장을 대체하면서 지역 도축산업의 리더로 등장할 무렵 선산 출신인 그녀는 67년 현재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한다.

성당못 도축장시절 부산물 전문상권
1代 박옥자씨 곱창확보에 억척스러움

밀가루 대신 천일염으로 3∼4번 세척
젊은층 위한 ‘환상의 맛전골’시리즈
곱창·대창·불고기 ‘삼합전골’ 개발
남은 국물에 밥볶는 곱창볶음밥 별미
초창기때 모습 보존…방송에도 소개
손자 채병두씨 물려받으며 3代 가업


◆성당못 상권과 동고동락

두류산, 대구문화예술회관과 맞물려 있는 성당못. 후에 주변에 여러 시설이 증설되는 바람에 원래 규모보다 많이 축소됐다. 롤러스케이트장, 철거된 도축장 자리에 들어선 두류수영장 등도 모두 성당못권이었다. 성당못은 수성못과 함께 시민의 유원지였다. 그래서 행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발생적으로 못 주변에는 행상은 물론 유원지 특수를 노린 식당이 매운탕촌처럼 무차별적으로 들어선다.

버들식당은 성당못과 동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 뒷고기 역사는 ‘성당못 도축장’에서 시작된다. 81년 현재 중리동 퀸스로드 쪽으로 이전되고 재차 2000년대 들어 유통단지로 옮겨간다. 이젠 ‘도축장’도 ‘금기어’. 언어순화의 대상이다. 대다수 무슨 축산, 무슨 산업 정도로만 표기한다.

이곳은 당연히 싱싱한 가축 부산물이 매일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부산물 전문식당이 입점하기 좋았다. 그렇지만 60년대만 해도 막·곱창 요리는 일반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안지랑곱창골목도 79년쯤 충북집의 등장으로 시작을 알렸고 붐을 일으킨 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다. 상대적으로 불고기, 육개장, 동인동 찜갈비 등이 막·곱창보다 더 강세였다. 막·곱창은 식도락가형 주당의 인기 안주였다.

당시 성당못은 둘레가 수성못 반 정도 되었다. 그래도 둘레가 1㎞ 남짓. 못주변에 20여 그루의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식당업은 상호도 불분명하고 영업신고 개념도 없었다. 앞산 안지랑 닭도리탕촌처럼 다들 무허가였다. 제대로 된 건물도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버들집은 영업한 지 얼마 안돼 신축을 한다. 식당에서 살림까지 할 요량으로 규모있게 지었다.

당시 못 주변에는 봄날 알르레기의 주범으로 악명이 높았던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도 그 나무를 보고 ‘버들집’이라 영업신고를 하게 된다. 지금 주차장에 있던 버드나무는 꽃가루 때문에 베어져 버렸다.

◆구이보다 전골에 치중

남편은 교편을 잡고 있었다. 우후죽순으로 식당이 들어서던 거칠기만 한 성당못 상권에 그녀도 가세했다. 아침이 되면 리어카에 고무 다라이를 싣고 도축장 경매구역으로 달려갔다. 늦게 가면 곱창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위생이 설자리가 거의 없었다. 50년대는 자가 도축시절. 위생을 거론할 계제가 못됐다. 서성로 돼지골목도 다 자가도축을 했다. 5·16 이후 비로소 근대적 도축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하지만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식당 관련 행정이 정립되지 못했다. 주먹구구 행정이 난무할 수밖에. ‘빽’이 난무했고 입김이 세고 완력이 센 사람이 더 빨리 더 많은 부산물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억척스러움과 가족을 살리려는 일념으로 그녀도 그 대열에 섰다.

곱창 세척도 도축장 한 편에서 해결했다. 지하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몫의 내장을 받으면 자체 지하수를 갖고 기본 세척을 하고 다시 다라이에 담아 가게까지 갖고 온다.

곱창 껍질은 지방에 감춰져 있다. 칼질을 통해 그걸 걷어내야 한다. 예전에는 너나없이 먹을 게 없었다. 기름도 버리지 않고 거의 활용했다. 냄새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곱창은 적당히 구린내가 나야 정석이라고 믿고 먹었다. 하지만 우지파동, 내장 세척제 유해성 논란 등으로 인해 점차 내장 기름은 구석자리로 밀려나간다. 이젠 상대적으로 조금 질깃한 곱창의 씹힘성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적당한 양만 붙여놓고 나머지 기름은 떼어낸다.

곱창을 씻을 때 무슨 세척제를 사용할까. 어떤 미식가들은 곱창 안에 ‘하이타이’를 넣어 세척하는 줄 아는데 이는 와전된 거짓 정보다. 그들이 봤다는 거품은 밀가루 거품이다. 밀가루의 세척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상당수 업주가 그걸 사용하는데 이 집은 밀가루를 넣어 너무 치대면 고유의 맛을 잃기 때문에 가능한한 천일염만 갖고 씻어낸다. 한 번만 씻는 게 아니다. 3~4번 씻어야 한다.

식기도 예전에는 불고기용 놋쇠 불판을 사용했는데 이젠 돌판을 쓴다. 10년 전부터는 젊은 커플이 많이 찾는다. 무조건 곱창만 고집할 수가 없었다. 달라진 세상의 흐름을 메뉴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돌판도 2인, 3인, 4인, 5인, 7인분용 짜리를 구비해 놓았다. 15년 전부터 메뉴 구성에 변화를 줬다. ‘환상의 맛전골’ 시리즈를 냈다. 곱창·대창·불고기를 통영의 우짜(우동과 짜장면의 합작품)처럼 하나로 합쳤다. 33년 전 2대 사장이 된 유희옥씨가 그렇게 결정했다. 단골들이 수시로 ‘각기 떨어져 있는 별도 음식을 한꺼번에 먹고 싶다’며 섞어 달라 했다. 지역에서 처음으로 ‘삼합전골’을 개발하게 된 것. 밥을 다 먹고나면 꼭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먹게 한다. 이 ‘곱창볶음밥’이 이 집의 별미로 정착했다. 모친의 영업전략만 고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육수의 파워는 일단 20시간 고아낸 사골육수에서 발원된다. 여기에 쌀뜨물을 반 정도 섞는다. 시크릿이다. 맛의 균형을 위해 한때 넣어주던 당면, 가래떡 등도 넣지 않는다. 단맛을 위해 설탕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대파, 양파가 기본 육수와 어우러지고 끓으면서 나오는 내장의 지방질이 자연스럽게 천연 당분을 형성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에서 한번 슬쩍 끓여준다. 너무 오래 끓여도 덜 끓여도 맛의 균형은 사라진다. 곱창은 여느 집보다 더 오래 씹어야 된다. 몇번 씹으면 문드러지는 곱창은 토종닭과 공장닭의 육질만큼 차이가 난다. 곱창 속에서 스며나오는 곱창의 곱은 기름 덩어리라기보다 동물의 소화액이다.



◆버들식당 후기

처음부터 곱창전골에 치중했다. 여긴 소 내장만 사용한다. 부위로 보면 곱창과 대창. 당시 주당들은 국물이 있는 요리를 선호했다. 하지만 2000년대로 넘어서면서 젊은 층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어 구이가 압도하기 시작한다.

예전 성당못 도축장으로 가던 동서방향 도로는 두류공원로에 의해 두 동강으로 끊겨 버렸다. 전성기 때는 버들, 송강, 해성, 아담 등 20여 업소가 밀집해 있었다. 지금은 버들식당과 부산식당만 남았다. 그래도 이월드 상권과 맞물려 외지에서 소문을 듣고 온 미식가가 심심찮게 찾아든다. 건물은 노후해도 아직 대표메뉴 곱창전골의 기세만은 정정하다. 초창기 이 건물은 꽤 근사했다. 다들 무슨 여관인 줄로 착각했다. 입구에서 볼 때 건물은 ㄱ자 구조. 하지만 지금 본채에서 뻗어나온 별당은 사용하지 않는다. 1층의 방은 모두 5개, 그 시절 자취방 같은 모습이다. 다른 방문은 리모델링했는데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한 개 방문은 개업할 때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JTBC 연예오락 프로그램 ‘밤도깨비’에도 소개됐다.

가업은 이제 3대 사장인 손자 채병두(40)한테로 이어졌다. 1대 사장의 증손인 채현서(20)는 현재 캐나다 유학 중인데 그가 4대 사장이 될지 궁금하다. 달서구 성당1동 118-1. (053)656-1991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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