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스노우피’이진경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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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5   |  발행일 2018-10-05 제41면   |  수정 2018-10-05
미국식 ‘롤’ 본연의 맛 살린 셰프의 ‘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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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빛 연어가 고명으로 올라간 알래스카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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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연어, 참치, 광어, 숭어 등 5가지 신선한 생선이 두툼하게 올려진 가성비 좋은 모둠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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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와 게살, 오이 등이 가미된 캐터필라롤과 참치가 올라간 하와이안롤.

화식(일본요리)의 대명사가 된 ‘스시(壽司)’. 이게 미국(캘리포니아)에선 ‘스시롤(누들김밥)’이란 이름으로 명성을 떨친다. 그 변화과정이 궁금할 것이다.

스시가 롤로 변하기 위해선 몇 가지 제약조건이 필요했다. 일본에선 날생선을 좋아한다. 하지만 미국인은 멀리한다. 특히 김에 초밥을 올리고 손으로 만, 우리의 김밥 같은 ‘데마키즈시’는 더욱 천대받는다. 미국인은 김을 ‘바다잡초’로 멸시했다. 일본 조리사들은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했다. 김은 물론 날생선 등을 초밥 속으로 감춘 것이다.

1963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동경회관. 여기서 스시의 팔자가 확 달라지게 된다. 동경회관 오너인 오다카 다이키치로가 당시 스시 책임자에게 미국인이 좋아할 수 있게 새로운 노리마키(김초밥) 말이법을 제시한다. 초밥과 잘 어울리는 특산물인 아보카도, 거기에 마요네즈를 섞은 ‘마키즈시’를 고안해낸다. 이게 바로 ‘캘리포니아롤’의 출발이다. 롤은 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역으로 파고든다. 그 흐름을 탄 부부가 미국에서 고생해가며 롤을 전수했고 그 레시피를 품고 지난해 대구 동성로 3가로 잠입했다. 그 롤 전문점 이름은 ‘스노우피’.

8년전 아내와 무작정 미국행 이민
중식 거쳐 일식 경험…요리팁 터득
美 스시전문가에 100여가지 롤 배워

대구 동성로에 롤 전문점 오픈
미국인 먼저 반응·유학파에 입소문
단골이 반이상, 40%가 외국인 손님
20여종 롤, 모둠덮밥 가성비 좋아
캐터필라롤·하와이안롤 세트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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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서 컴퓨터프로그램교육 전문가, 다시 막막한 삶을 반전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롤 전문 셰프로 변신한 이진경씨. 그가 종일 아내와 지키고 있는 중구 동성로 스노우피는 일본의 스시와 미국의 롤이 대구에서 어떤 울림을 주는가를 먹음직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교사·IT맨에서 셰프로 점프

남편은 이진경, 아내는 안여진. 남편 이씨의 고향은 경기도 성남이다. 이씨 부모는 평생 농사꾼이었다. 셰프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음식 만드는 걸 솔선수범했다. 약초 위에 식은밥을 깔고 거기에 고추장과 된장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케첩처럼 발라주었다. 삼겹살에도 버섯류를 매칭시켰다. 10년 정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다. 그런데 학교가 지루해졌다. IT회사로 옮겼다. 8년간 컴퓨터프로그램교육 전문가로 살았다. 중국, 호주, 싱가포르, 남아공 등 여러 대륙으로 출장가면서 세계 각국의 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셰프의 길에 한발 더 바짝 다가서게 된다. 그때 카페를 품고 살던 아내를 만나 결혼한다. 카페 운영도 별로였고 직장생활에 대한 환상도 바닥이 났다. 부부는 멍한 나날을 보낸다. 아내가 주먹을 먼저 거머쥔다. 미국에 이모가 살고 있으니 일단 미국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민 가자고 했다. 남편도 좋다고 했다. 8년전 무작정 이민을 떠난다. 그의 처이모는 오스틴에서 중·일식을 결합한 레스토랑(스노우피)을 꾸려가고 있었다. 거기 메뉴 중 하나가 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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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로 이민생활 시작

미국행 비행기에 타기 전에는 미국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니었다. 설거지, 세탁소 잡부 정도가 전부였다.

그는 설거지에서 벗어나 일단 요리라도 배워야 겠다고 다짐한다. 중식부터 배웠다. 맨처음 배운 건 채소 썰기였다. 2개월간 그짓만 했다. 그들이 중식용 채도를 들고 무당 작두놀음하듯 채소를 써는 광경을 보면서 그 실력에 혀를 내두른다. 일단 믿을 건 실력밖에 없었다. 툭하면 손에 상처가 났다. 그들은 강산성 레몬즙으로 소독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오전 10시에 나와 밤 10시에 퇴근했다. 하체 근육이 버티지 못해 툭하면 주저앉았다. 다음은 고기썰기. 닭, 돼지, 소…. 마지막엔 볶음밥. 100인분, 50인분, 10인분, 2인분…. 인분이 달라지면 볶는 강도도 달라진다. 그걸 알려주는 요리책은 없다. 시행착오가 스승이었다.

1년 뒤 대망의 중식용 프라이팬인 ‘웍’과 대면할 수 있었다. 손목 힘이 없으면 음식물이 웍에서 잘 분리되질 않고 그럼 불맛이 시들해져 버린다. 순간적으로 짧게. 마치 스타카토처럼. 그는 중식이 맞지 않았다. 체력 때문이었다.

◆일식에 입문하다

그때 그의 눈에 보인 게 바로 ‘스시바’다. 숱한 롤이 깔려 있었다. 기름 범벅이고 체력이 중요한 중식보다 스시바는 스킬이 더 중시되는 것 같았다. 중식이 블루칼라라면 일식은 화이트칼라로 보였다. 초창기 스시바를 맡았던 한국인과 친해지게 된다. ‘미스터 한’으로 불렸던 그가 요리 사부가 된다. 미스터 한도 유학파 셰프다. 강원도 출신인데 유학왔다가 요리 때문에 눌러 앉아버렸다. 스시에서 롤까지, 관련 레시피를 알뜰살뜰 전수했다. 지금도 그와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있다.

롤의 기본을 배운 뒤 근처 롤 전문점인 ‘이즈미’로 옮겨간다. 거기서 한 단계 격상된 요리팁을 익힐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롤은 게살과 아보카도, 필라델피아롤은 크림치즈, 알래스카롤은 연어, 하와이안롤은 참치가 메인 식재료가 된다. 일본에서 스시를 다 알 수 없듯 미국의 롤도 가게마다 재료 배열이 다르다.

미국내 스시 전문가들은 밥알갱이를 밖으로 올리고 대신 김은 밥 밑으로 깔리도록 배치한다. 밥이 먼저 씹히고 나중에 김맛이 따라오도록 했다. 스시가 천동설이라면 롤은 ‘지동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게에서 100여가지 롤을 배웠다. 생선류의 경우 연어·참치·방어, 알류는 날치알·연어알 등이 많이 사용된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흰살 생선도 광어, 도다리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선호되지 않는다. 채소류는 양배추·양파·무순·무채, 과일류, 소스는 스파이시마요네즈·데리야키소스·핫소스 등이 보편적이다.

롤의 선배격인 스시의 세계로 넘어가자 용어부터 낯설었다. 초밥용 밥인 ‘샤리(舍利)’, 초밥용 비빔통인 ‘한다이(板台)’…. 촛물이 묻은 밥알갱이를 한입 크기로 적당한 압력으로 쥐어 모양을 내는 건 도공이 절정의 도자기를 빚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내공이었다. 롤은 대다수 발 위에 적당량의 초밥을 올려 말아주는데 그때 어느 정도의 힘으로 마느냐가 맛의 승부처. 적당한 강도. 중용의 도는 요리에서도 적용된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하면 짓물러지기 쉽다. 가스를 사용해서 밥을 짓는다. 반나절 쌀을 불리고 40분 밥을 짓는다. 밥을 할 때 바닥에 천을 깐다. 눌러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밥이 눌러붙으면 화근내가 밥에 스며들어 식감을 망친다.

◆롤 품고 대구에 입성

기술을 배우니 월급이 껑충 뛰었다. 편해지니 내 가게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때 장모로부터 러브콜이 들어왔다. 미국에서 어느 정도 고생했으니 이제 대구로 와서 롤 전문 식당을 차려보라는 권유였다. 지난해 6월 오픈을 했다. 처음엔 이자카야식이었다. 일식라인을 밑에 깔았지만 전체적인 운영 방식은 미국식이었다. 그런데 맘대로 되지 않았다. 카페, 레스토랑, 초밥집, 와인하우스 등이 혼재된 스타일. 이게 대구사람들에겐 정체불명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느긋하게 대화하는 식당을, 공간을 원했다. 그런데 대구사람은 너무 서두르고 성급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빨리빨리’를 외쳐댔다. 미국은 정말 디테일하게 주문하는데 대구는 아니었다. 메뉴판도 보지 않고 그냥 ‘알아서 메뉴’를 시켰다. 알아서 달라니? 뭘 어떻게 해달라는지 도통 간파할 수가 없었다. 내 맘대로 해서 내면 그게 아니라고 투덜댔다. 툭하면 추가 서비스였다.

작심하고 ‘손님물갈이’에 돌입. 가게도 롤 전문으로 변화를 주었다. 어느 날부터 대구 거주 미국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엔 젊은 유학파들. 제대로 된 현지 롤을 맛본 그들이 SNS에 소문을 냈다. 이젠 단골이 50% 이상이다. 40%가 외국인이다.

여기서 파는 롤은 모두 20여 종. 모둠덮밥은 특별히 가성비가 좋다. 새우, 연어, 참치, 광어, 숭어가 뭉텅뭉텅 들어가 있다. 회덮밥 같아 초장을 찾는 이도 있는데 여긴 초장이 없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주기 위해서다.

노르웨이산 연어는 식감을 위해 피하층을 말끔히 제거한 뒤 사케와 천일염을 섞어 숙성한다. 활화산처럼 생긴 캐터필라롤과 참치가 고명으로 올라간 하와이안롤은 궁합이 좋아 세트로 시키는 단골이 많다.

맛 이전에 위생이다. 툭하면 손을 씻는다. 도마도 하루 2번 소독한다. 결벽증에 가깝다.

지그시 눈을 감고 롤 한 점을 어금니 위에 올렸다. 질지도 않고 꾸덕하지도 않은 적절한 습도의 초밥 알갱이가 여러 식재료의 식감을 잘 감싸주면서 혀 위에서 원무를 그린다. 재고관리에 성공한 착한표 식재료. 그 놈들이 제 역할을 하기에 입은 한없이 평화롭다. 이에서 혓바닥, 그리고 목구멍으로 쑥 넘어가는 절차가 ‘유수(流水)’ 같다. 예식장 뷔페 롤의 식감이 장난감 칼 같다면 여기 롤은 진짜 칼같은 포스다.

아무튼 그의 좌우명은 ‘음식갖고 장난치지 말자’. 중구 동성로 3가8. (053)472-424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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