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화와 고용의 변화] 4차 산업혁명의 긴 그림자…임시직 경제 ‘긱 이코노미’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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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1 08:05  |  수정 2018-10-11 08:06  |  발행일 2018-10-11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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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화(無人化)는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이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 이용자 편의 등을 내세우는 무인화는 급격한 인건비 상승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을 감안하면 반드시 필요하다. 생산의 극대화를 꾀하는 기업부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까지 무인화·자동화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무인화가 가속화되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무인화 과정에서 사람이 시스템 유지의 보조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혜택이 많은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는 사라지고, 수입이 박하고 처우는 나쁜 임시직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곧 우리 사회에 닥쳐올 무인화와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의 빛과 그림자다.

전세계 일자리 500만개 감소 위기
맥도날드 등 전국 패스트푸드점
이미 매장에 무인주문기 운영 중
2년후 고속도로 스마트톨링 적용
2200명 요금수납원 실직할수도

고용형태 임시직 확산으로 변화
유연한 근무시간 장점 꼽히지만
소득 일정 안해 고용안정성 하락


◆약 500만개 일자리 소멸 전망

“제3차 세계대전은 ‘일자리 전쟁’이 될 것이다.”

여론조사기업인 갤럽의 최고경영자(CEO) 짐 클리프턴이 던진 경고다. 그는 2015년 펴낸 저서 ‘일자리 전쟁’을 통해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 직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갤럽이 6년간의 조사를 거쳐 얻은 결론에 근거한 것이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전문가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약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우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이미 무인화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맥도날드는 전국 430개 매장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0개 매장에 무인주문기를 설치했다. 롯데리아 역시 전국 1천350개 매장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610개 매장에 무인주문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시범도입 단계지만 직원이 아예 없는 무인 점포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세븐일레븐은 업계 최초로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무인 편의점을 선보였다. 이마트24 역시 직영매장을 무인 편의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출입구 앞에 부착된 단말기에 신용카드를 찍고 들어간 뒤 무인계산대에서 셀프 결제하는 방식이다.

비단 유통업계만이 아니다. 2년 뒤면 톨게이트 수납원이라는 일자리도 점차 줄어들 예정이다. 달리는 차량의 번호판을 무선통신 안테나와 영상인식 기술로 자동인식해 요금을 결제하는 ‘스마트톨링 시스템’이 2020년 전국 모든 고속도로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도로공사의 중장기계획에 따르면 스마트톨링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2천200여명의 일자리가 줄어든다. 스마트톨링이 본격 시작되는 2020년에는 과적차량 단속, 영상데이터 보정, 콜센터 등으로 3천800명을 전환시킬 예정이지만 나머지 인력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

◆기술 발전할수록 일자리 소멸 공포

무인화로 줄어드는 일자리는 대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구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무인운행되는 3호선(역사 30개)의 근무인원은 235명(역사 인력 134명, 운행관리인력 101명)으로 유인운행 중인 1호선(역사 32개) 근무인원 422명(역사 인력 267명, 기관사 155명)과 2호선(역사 29개) 근무인원 351명(역사 인력 200명, 기관사 151명)보다 각각 187명, 116명 적다. 지하철 운영에 사람의 역할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결국 일자리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사람의 일자리는 무인시스템 유지의 보조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점도 일자리의 질을 위협한다.

1, 2호선의 경우 전문직종으로 구분되는 기관사가 운행하지만 3호선은 관제실에서 디지털로 운행을 원격으로 조종한다. 이 때문에 사람의 업무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운행관리원도 전동차 운행 자격증은 있지만 직접 운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 서울에서는 전동차 무인운전이 도입되자 노조가 직원들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무인화가 인건비 절감 전략의 하나인 탓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한 기술 발전이 빨라질수록 인간의 일자리 소멸에 대한 공포 역시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모종의 변화가 노동시장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미 패스트푸드점에선 기계가 주문을 받고, 주차비 정산도 자동으로 이뤄진다. 예전엔 사람들이 했던 업무들이다.

동시에 ‘긱 이코노미’로 불리는 임시고용 형태를 확산시키며 전통적인 일자리 개념 역시 빠르게 바꿔나가고 있다.

긱 이코노미란 그때그때 발생하는 필요에 따라 임시직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를 말한다.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즉석으로 섭외해 공연을 하는 ‘긱(gig)’에서 유래한 말이다.

임시직의 등장은 한쪽에선 찬사를, 다른 한쪽에선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맥킨지는 2025년까지 긱 이코노미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전 세계 GDP의 약 2%에 해당하는 2조7천억달러에 달하고, 전 세계 5억4천만명 정도가 실업기간 단축이나 추가 소득 확보 등의 혜택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일자리가 가지는 근로시간의 유연성 덕에 경력단절 여성이나 주부, 은퇴자들에게 노동시장 재진입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유연한 근무와 비정규직 ‘명암’

긱 이코노미에 대한 시각은 두 갈래다. 자유롭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유연한 근무시간이 필요한 근로자에게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소득이 일정하지 않고 비교적 낮은 편이어서 경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단기직을 전전하는 이들이 긱 이코노미를 채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에서 내몰린 이들이 생계를 위해 단기 일자리로 나오면서 이제 긱 이코노미는 비정규직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긱 이코노미 근로자는 정기휴가·병가·출산휴가·육아휴직·건강보험 같은 복지 혜택이 없다. 퇴직금·연금도 없어 노후 대책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도 단점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긱 이코노미가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고 고용 안정성을 해쳐 노동시장을 뿌리부터 뒤집으면서 수많은 ‘긱’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물론 4차 산업혁명, 로봇과 AI가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도 있다. 인류 역사에서 기술의 발전은 생산 방식의 혁신, 생산량의 증대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무인화에 따른 충격파는 예측불허다. AI와 로봇의 ‘대체 노동’ 앞에서 사람이 일을 해서 재화를 생산하고, 그 재화로 일상을 꾸리는 삶의 방식은 용도 폐기될 운명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래 사회에 대한 구상에서 사람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요금수납원의 일자리가 위협받지만, 앞으로는 소멸되는 일자리가 각 산업 전반으로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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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Gig) 이코노미=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연주자를 즉석으로 섭외하는 ‘긱(Gig)’에서 유래한 경제 신조어다. 필요할 때마다 단기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를 고용해 일을 맡기는 형태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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